brunch

기억에 남는 인턴 다섯 명

by 알로

여러분한테 가장 와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희 회사에도 인턴 친구들이 정말 많이 와요 언론사 지망생도 많고 방송국에 대해 궁금한 친구들도 많고요. 2014년부터 제가 봐온 인턴들이 한 백 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정말 다양한 매력을 가진 친구들이라 한 명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요. 한 번 오면 짧게는 4주 있었던 친구도 있고 길게는 3개월 가까이 있거든요.


매일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는 사이죠. 현장에 나갈 때 빼고는 사무실에 있으니까. 이야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종종 회식자리에서 술 한 잔도 같이 하고요. 생각해보면 그동안 참 많은 친구들이 다녀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떠올리면 딱 다섯 명 정도예요.


그 당시엔 분명히 이름도 불렀을 거고, 사진도 찍었을 거고, 같이 현장에 나가기도 했고, 서로 힘들 때 토닥토닥해주기도 했는데요. 누구 생일이다, 하면 케이크 사들고 와서 다 같이 파티도 하고 그랬거든요. 나름 밀접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올리려고 하면 생각이 안 나요. 워낙 많기도 하니까 가물가물한 거죠. 그 와중에 유독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 있어요. 한 다섯 명 정도가 그래요.


저만 그 친구들을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어쩌다 사무실에서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맞아 맞아, 그래요. 그 친구 참 괜찮았지. 신기하죠. 사람에 대한 호불호라는 게 각자 다 다를 텐데.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똑같은 마음일까? 그 친구들이 가진 매력이 뭘까? 그래서 생각해봤어요. 그들의 공통점이 뭘까?


작가님이랑 코드가 제일 잘 맞았던 거 아니에요? 아님 잘생겼나?


물론 외모가 특출 나게 훌륭하면 기억에 남을 순 있겠지만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나잇대 친구들은 머리가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대로 그저 예뻐요. 뭘 해도 예쁜 나이잖아요. 그래서 딱히 외모가 기억에 남진 않아요.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장기를 가진 친구였는지도 기억도 희미해요.


이름과 얼굴이 딱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어요. 공통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적극성이었어요. 적극성이라는 게 센스를 만들기도 하고, 때론 활력을 심어주기도 하잖아요. 결과적으론 그 사람만이 가진 무기가 되더라고요.


들어오는 친구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점점 스펙들이 높아진다는 거예요. 점점 기대가 커지거든요. 과연 어떤 친구일까. 근데 막상 들어오면 다 까먹어요. 물론 이 친구들을 직접 평가하는 분들은 또 관점이 다를 수 있어요. 저는 그냥 같은 팀에서 일을 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는데, 그 친구들의 스펙이 머리에 늘 들어있지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좀 각인을 시킬 순 있지만 일할 때마다 그걸 기억해내는 건 쉽지 않아요. 이 친구가 뭘 전공했는지, 대외 경력이 많은지, 관심이 갈 순 있지만요. 정말 잠깐 영향을 미칠 뿐이고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인 거랑은 별개 이야기더라고요. 물론 이건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요. 연대 나온 친구라고 해서 우와 연대가 나한테 말을 건다, 난 지금 연대와 같이 일을 한다, 이런 생각 안 하거든요.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이 친구가 어떻게 행동을 하고 말하는지가 중요하죠.


인턴 친구들이 들어오면 처음엔 굉장히 긴장한 상태예요. 뻣뻣하게 있어요.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을 거고, 내가 어떻게든 마이너스가 되는 모습을 보이기 싫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말을 안 해요. 안녕하세요, 하고 끝이에요.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는데.


저는 그게 처음에 좀 신기했어요. 내가 뉴스를 만들고 싶고, 어떤 걸 취재하고 싶다, 해서 온 거잖아요. 반년이란 시간을 투자해서 이 공간에 온 건데, 궁금한 거 닥치는 대로 물어볼 것 같거든요. 평소에 관심을 뒀던 보도물이나 기자가 있으면 궁금할 거란 말이죠. 어떻게 취재했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하다못해 ENG 카메라랑 6mm 카메라는 뭐가 다른 거며 왜 별도로 구분하는 건지. 궁금한 게 분명히 많을 텐데 그걸 꾹 누르고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조용히 물어보면 아, 안 그래도 그거 궁금했다고 속사포로 랩 하듯이 터져 나와요.


아이템은 어디서 찾는지, 어떤 걸 봐야 하는지, 궁금한 게 많을 텐데요. 그걸 인턴들이 인수인계를 한다고 매뉴얼을 만들어놨더라고요. 그걸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느라고 물어볼 필요는 못 느꼈던 거예요. 시키는 걸 하고, 눈치로 가늠하는 것에 익숙해진 거죠. 정해진 매뉴얼이 있으니까 그 외 것만 궁금하고 나머지는 그 안에서 해결하는 거예요. 생각 같아서는 그 매뉴얼 없애버리고 싶어요(웃음). 이미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적힌 종이를 달달 외우면 내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근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꼭 다른 친구들이 있었어요. 저는 이렇게 배웠는데 이건 왜 이런 거죠?라는 질문을 참 많이 했어요.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도 많이 해요. 그걸 궁금해할 수 있구나 싶은 엉뚱한 질문도 많아요. 그런 질문이 반가워요. 왜?라는 질문이 나와야 맞거든요. 그러면 같이 생각해요. 이 친구 입장에서 이게 왜 궁금할까? 저도 같이 고민하게 돼요. 그러면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그들만이 가진 시선이 있는데, 저는 그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린 이미 보도물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안 보이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잖아요. 그 친구들이랑 툭툭 던지면서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됐으면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은 거죠. 근데 꼰대가 될 순 없었어요(웃음). 최대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그 친구들을 이해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하나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있어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야구를 사랑했던 소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