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바다에 다녀온 이후로 귀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고막을 긁어내는 소리. 걸어 다닐 때마다 고막이 들썩들썩 움직이는 소리.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일요일, 임시공휴일이었던 월요일까지. 병원에 갈 수 없었던 덕분에 소리들은 온전히 나와 함께였다. 하루 대부분 끼고 생활하던 에어팟도 사치였다. 한 번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하니 계속 신경 쓰이긴 하는데, 또 계속 듣게 되는. 그런 아이러니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바닷물에 빠졌었다. 훅 하고 바닷물에 입수했을 때 수압에 의해 무언가 들어갔나 보다. 지인들은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며 허언을 건네 왔다. 왜? 냐고 되물으니 '옛날에 친구도 바다 갔다 와서 귀 수술했다'며 근거 없는 말을 해온다. 별 거 아니라는 듯 흘려들었지만 매일 밤 잠자리에서 포털사이트를 뒤졌다. 바다, 귀에서 이상한 소리, 만 넣고 검색하니 오만가지 증상들이 등장한다. 바다에 사는 생명체가 알이라도 깠나. 알이 부화해서 벌레 같은 것들이 움직이나. 상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화요일, 날이 밝자마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의사가 말한다.
"아, 이거였구나. 자, 보여드릴게요. 저 앞에 있는 화면을 보세요."
침이 꿀꺽 넘어간다. 차갑고 뾰족한 쇳덩이가 내 귓덩이에 들어와 있다. 낯선 감촉에 의자를 꽉 쥔 손에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보이시죠? 모래예요. 나뭇가지도 있네. (웃음) 뭐하신 거예요?"
"... 바다 갔다 왔어요"
자글자글한 모래들이 고막에 달라붙어있는 상태였다. 금방 빼낼 수 있다며 날 안심시켰다. 왜 들어갔는지 모를 나뭇가지는 도통 떨어지지가 않아 꺼내는 데 애를 먹었다. 치과에만 있을 줄 알았던 석션이 등장했다. 고막이 빨려 들어가는 건 아닐지 걱정했다. 외마디 비명이 나와도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게 고막에 붙어있어서 잘 안 꺼내지네요. 거의 다 됐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몇 번의 석션, 쇠고랑으로 긁어내는 듯한 소음이 오간 끝에 대부분의 이물질은 빠져나갔다. 잔여물이 조금 보이지만, 걱정 말란다. 귀지도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습성이 있거든요. 저 안에 모래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빠져나올 거예요. 우리 몸이 밖으로 뱉어내려고 하는 게 있어요. 걱정 마세요.
한순간에 평화가 찾아온다. 일어나 걸어보니 더 이상 날 괴롭히던 소리들이 사라져 있다. 행복이란 게 별 거 아니었다. 온전한 나의 상태로 있는 게 행복이었다.
손톱에 껴있어도 모를 정도로 작은 모래들이다. 그 모래들이 어디에 존재하냐에 따라 나의 고통을, 기분을, 컨디션을 좌지우지한다. 몸이라는 건 이렇게 신비로운 거였다. 들어가 있으면 안 되는 곳에 들어가면 끊임없이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며 신호를 보내는 것. 이물질은 열심히 밖으로 빼낼 수 있게 설계 되어 있는 것. 이 몸뚱아리라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똑똑하고 아름다운 체계를 갖춘 존재였다.
모래들이 사라진 다음날, 일상으로 돌아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더우면 짜증 나고, 마스크 껴서 답답하니 짜증 나고, 살이 쪄서 몸이 찌뿌둥하니 짜증이 난다. 이렇게 또 금방 잊는다. 그래서 사람인가 보다. 건강에 겸손함을 좀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