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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너머 보이지 않는 얼굴

by 알로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지금 이 순간 말씀드려서 매우 송구합니다만, 만약 정말로 힘든 상황이 온다면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간이 바로 오늘일 겁니다.


-8월 25일 중대본 브리핑-


이틀 뒤였던 어제,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441명. 휴대폰을 보자마자 헉소리가 절로 나왔다. 매일 일어나자마자 뉴스를 확인했던 지난 3월. 낮 10시 중대본 브리핑이 끝남과 동시에 날아드는 확진자 속보에 한숨이 쏟아지던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참담하다.


그 참담한 나날 속에서도 여전히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이 있다. 누군가는 하계휴가 -다른 말로 집콕 휴가- 를 떠났다. 대타로 한참 후배인 기자가 왔다.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그와 내가 마주 본 지 벌써 2주가 넘어가는데, 나는 그의 얼굴을 모른다. 촬영할 때도 사무실에서도 마스크를 끼기 때문이다. 둘 다 눈만 껌뻑 껌뻑 거리며 대화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통성명을 하고도 얼굴을 모를 수 있구나.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해도 얼굴을 모를 수 있는 세상이 왔구나. 새삼스럽지만 신기한 경험이다. 어쩌면 우리가 인간 대 인간으로 호감을 가지는 데엔 얼굴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 걸 수도 있겠다. (이성적인 호감이 아닌 인간적인 호감이라는 걸 강조하겠다) 일단, 그는 매우 젠틀하고 성실하며 열정적이다. 말할 때 (요즘 시국엔 당연하겠지만) 눈을 마주칠 줄 안다. 행동이 날렵하다 (가끔 커피 마실 때 마스크를 살짝 내리는 것 같은데 한 번도 맨얼굴을 본 적이 없다). 이래저래 대타로 온 친구 중에서도 상당히 (동료로서) 매력적인 친구임에 틀림없다.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새로운 면모를 실감하게 된 건 순전히 코로나 덕분이다. 들숨과 날숨을 호기롭게 들이쉬고 내뱉을 수 있는 자유는 소중해진지 한참이다. 자고 일어나 안부인사를 건넬 수 있는 한 지붕 아래 가족의 존재에 대해서도, 새삼스럽지만 감사함을 느낀다. 시시각각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뉴스들 -마스크로 시비 붙어 경찰서행, 버스에서 난동 부린 마스크 안 쓴 남성, 길거리서 침 뱉고 달아난 남성 etc- 이 내 일상에 나타나지 않음에 감사한다. 말 그대로 온전히 내 침대에서 일어나 밥을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무사히 돌아와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 그 일상이 오롯이 지켜지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는 거다.


더불어 인간의 매력이란 마스크 속사정과는 관계없다는 것까지 깨달았으니. 올해 내가 얻어가는 건 결코 적지 않다. 이래저래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들이 측근들 사이에서 늘어나고 있다. 언제 어디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감염경로에 모두가 안전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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