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by 알로

고대리가 많이 생각나는 밤이었다. 고대리는 사람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가게 이름이다.


처음 이곳을 갔던 날을 기억한다. 유학시절 같이 아르바이트했던 지인이 홍대에 가게를 차린다고 했다. 지인은 고민 끝에 아르바이트했던 가게 주방장에게 연락했다. 거기서 먹었던 소스 맛을 잊을 수가 없는데, 혹시 레시피를 알려줄 수 있냐. 주방장은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최근 바꿨을 정도로 디지털에 무관심한 주방장은 에이포 용지에 꾹꾹 눌러쓴 글씨로 레시피를 적어 그에게 보내왔다.


고대리에선 내가 좋아하는 냄새가 났다. 고소하고 짭조름한데 달달하기까지 한 양념의 냄새. 그 양념이 숯불 위에서 구워질 때 나오는 특유의 향. 처음엔 그 냄새가 좋아 고대리를 찾았다. 지금 사장은 바뀌었지만, 맛은 여전해서 찾는다.


단골집을 여럿 두고 있다. 내겐 단골집의 기준이 맛이 아닌 사람이다. 맛까지 있으면야 금상첨화겠다만 일 년, 이 년, 오 년을 지나면 맛도 사람도 생각보다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깨달았다. 고대리는 유명세를 타고 한참 장사가 잘 될 때도 요즘 같은 불황 속에서도 사람 참 한결같다. 이 와중에도 신메뉴를 개발 중이라며 혼자 가게에 나와 열심이다. 서비스로 나오는 닭다리 과자조차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 한결같음이 좋아 벌써 7년째 찾고 있다.


어쩌다 자영업자를 취재하게 됐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다. 취재할 때 나만의 룰이 있다면 그건 지인을 절대 이 구렁텅이에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초년생 때 몇 번 해보고 까딱하다 사람까지 잃을 수 있겠다는 걸 실감해서다. 그럼에도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의 마음에 그에게도 전달됐는지 흔쾌히 촬영에 임해줬다는 건 비밀.


하루 종일 섭외로 골머리를 앓다가 밥상에 앉았을 때 자영업자 취재 중이라 말했다. 아빠는 고개를 들더니

자영업자가 왜 중요해? 물었다.


반감이 올라왔다. 자영업자만 힘들어? 더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왜 자영업자를 취재해?로 들렸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내 마음의 소리였던 거다. 딱히 반박할 근거가 없어 머리를 굴리는 나에게 아빠는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건넸다.


자영업자는 모세혈관이야. 모든 소비와 유통이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거야. 그들이 잘 살아남아야 국가경제가 돌아갈 수 있는 거야. 네가 아까 영업 끝나고 2인 취식하다 적발돼서 영업 정지당했던 게 과잉 행정 같다고 말했지? 행정은 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거야.


열 명 중 네 명이 자영업자인 나라에 살면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걸 깨닫는다. 사실은 빚을 내 가게를 차린 지인들이 있다. 그 가게에서 채용된 지인들도 있다. 자영업자인 학원 원장 밑에서 일하는 지인도 있다. 마당에 문제가 생기면, 폭우로 천장이 내려앉으면, 보일러가 고장 나면, 차에 이상에 생기면, 내가 자주 가는 밥집, 술집, 꽃집. 그 모든 사람들이 자영업자였다.


주말 이틀을 꼬박 고민해도 5분짜리에 이걸 담아낸다는 건 쉽지 않다. 코로나 시대에 힘든 건 매한가지라는 인식도, 자영업자는 금수저나 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편견도, 모두 내가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벽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꼭 전달을 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방금 통화를 마친 어느 제보자의 말로 대신하겠다.


3월에 처음 코로나가 터졌을 때 너무 힘들었죠. 그래도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어요. 5월이 되니까 원래 매출 80%까지 올라오더라고요. 그게 딱 두 달이었어요.


건물주가 3월에 먼저 찾아와 줬어요. 힘들지 않냐고. 월세를 50% 감면해주더라고요. 두 달 동안. 너무 고마웠죠. 주변에 얘기하니까 그런 사례가 없대요. 제가 인복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전 이 책임을 건물주에게 전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건물주가 먼저 마음이 동요돼서 자발적으로 감면해주는 거면 몰라도 그분들도 상황이 있고 사정이 있지 않겠어요? 제가 (자영업자가) 흔들린다고 해서 도미노처럼 그 힘듦을 떠넘긴다는 게 저는 마음이 불편해요. 규제로 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 타격은 국가로 가야 하는 게 맞는 거죠. 이렇게 도미노처럼 누군가를 권고사직해야 하고 건물주는 감면을 강요당해야 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라는 거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밤중 걸려온 전화 한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