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섯 글자가 뭐라고 내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 요즘은 작가 되기 참 쉬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작가라는 이름에서 갖는 선입견이 뭘까 궁금해진다.
2. 취재작가도 작가야?
직접적으로 들은 적은 없다. 취재원의 시선과 수화기 너머 목소리로 느꼈다.
3. 취재작가 아닌데요 구성작가인데요
내 마음속의 목소리. 구구절절 변명하는 것 같아 대놓고 얘기해본 적은 없다.
4. 작가는 아무나 되나
써 내려간 글들이 좋길래 이런 책 나오면 좋겠다, 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말이다.
5. 우와, 작가님이세요?
초면인 사람에게 직업을 소개해야 할 때 종종 듣는 말. 따라오는 레퍼토리는 "보도국에도 작가가 있어요?"
6. 작가님 뭔가 멋있잖아요, 글 쓰는 사람
한국 문학계 거장들께 죄송해지는 말이다.
7. 유 작가
매우 친한 동료들이 부른다.
8. 거기, 작가! 비켜봐. 앵글에 들어왔잖아
같이 일했던 취재작가가 현장에서 영상취재 카메라 기자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녀는 복귀하고 눈이 시뻘게지도록 울었다.
9. 작가님들은 아이템만 들어도 그림이 막 쫘악 깔리면서 필름처럼 지나가고 막 그러죠?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10. 작가님이라서 소설을 쓰셨나, 뉴스에서?
일 시작하고 8개월째. 취재했던 성형외과 실장이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와서 건넨 말이었다.
11. 작가요? 책 뭐 내셨어요?
2만보씩
12. 작가면 책 한 권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지
13. 사진기자? 사진작가? 뭐가 달라요?
최근 알게 된 사진작가한테 물었던 나의 질문이었다. 그는 정형화된 보도사진을 지양하는 사람이다. 언론사의 논조, 데스크의 압박, 판에 박힌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프리선언을 외치고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사진을 찍는다. 실제로 그와 대화한 후 작가라는 이름이 가진 매력을 조금 알게 됐달까.
14. 역시 작가네
SNS에 감성글을 올리면 곧잘 올라오는 댓글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theguardian
내가 듣거나 주변에서 들었던, 흔하디 흔한 말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 사람들이 저마다 그리는 '작가'가 어떤 이미지일까. 궁금하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때론 주눅이 들고 때론 정당화시키면서 조금씩 생각을 다듬어왔던 것 같다. 매일같이 머릿속에 떠도는 말들을 곱씹고, 반박하며. 도대체 작가가 뭐길래.
스물여덟. 방송작가의 길을 걸어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참 연차가 쌓여 막내작가를 부릴 나이. 난 그때 취재작가로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0대 중반이 됐다.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걸 해온 것 같은데, 남은 건 딱 두 글자다. 작가. 그거 말곤 가진 게 없다.
최근이었다. 생각해보니 난 음식에 딱히 호불호가 없었다.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렸을 때 딱히 기억나는 얼굴이 없다. 음악,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곡들이 플레이 리스트에 담겨있다. 방바닥에 몇 시간이고 앉아 레고를 조립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가도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셔 정처 없이 걷다 온다. 다독가는 아닌데, 가리는 책도 없다. 남들이 마블마블 쿠키영상 최고를 외칠 때 뒤늦게 마블을 검색해보고 있었다. 딱히 트렌트에 민감한 편도 아니다. 한 번 꽂히면 주야장천 그것만 보고 산다. 나름 개성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만의 색깔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을 좀 바꿔봤다. 그래서 이 업이 잘 맞는 걸 수도 있겠다. 죽기보다 하기 싫은 아이템이 눈앞에 던져지면 발악을 하다가도 이내 몰입한다.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자존심과 연결되지 않는다. 가리는 게 없다는 건 무채색과도 비슷해서 매력이 없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다양하게 담아낼 순 있겠구나. 수년간 '작가'라는 타이틀로부터 받아온 압박감에 종지부를 찍었다.
작은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무채색이었던 내 세상에도 조금은 색이 들어오는 느낌이다. 좀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감정을 이입해볼까? 좀 더 표현을 다르게 해 보는 것도 좋겠다. 저 아이템이 가진 색을, 저 사람이 지닌 색깔을 내가 조금 담아보고 싶다. 그 소소한 고민들이 나의 일상을 다채롭게 바꿔주고 있다.
내 안에서 정해진 나란 사람의 타이틀이 선명해지자 일상의 삶에 군더더기가 없어졌다. 책을 읽을까 좀 잘까 고민하는 순간에 책을 집어 든다던가. 이 정도면 다 됐다, 싶은 원고 멘트를 한 번 더 두 번 더 고쳐본다던가.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은 내가 그리는 작가의 삶에서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 불필요한 것들에 눈을 돌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아주 괜찮은 변화다. 생각 한 줌의 차이가 이렇게까지 색다른 일상을 불러올 줄 몰랐다.
거리두기 2.5단계로 밤 9시 이후 식당과 술집, 카페까지 문을 닫았던 때. 지인과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앞당겨졌다고. 어쩌다 저녁을 먹게 되는 일이 생겨도 8시 이후엔 주문할 수도 없고, 9시엔 영락없이 가게를 나와야 하니 2차는 꿈도 못 꾼다고. 야식이 사라지고, 귀가가 빨라지니 건강해지는 느낌이라고. 그동안 우리는 무리한 생활을 해왔던 거다.
물리적 제한을 둬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인지. 불필요한 것들에 소비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이제야 되찾는 것인지. 어쩌면 '작가'라는 타이틀로 한정시켜놓고 나니 그 안에서 더 큰 자유로움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차례인 것 같다. 도대체 이놈의 고민은 언제 끝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