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네이버 포털-카톡-브런치 순으로 온라인 순회를 돈다. 잠결에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들었다. 잠이 덜 깨서 꿈인 줄 알았다. 브런치의 기적 같았던 제안, 은 브런치를 '통한' 강연 제안이었는데 이쯤 되니 제목이 낚시성이었나 살짝 찔리기도 한다. (보통은 출판 제안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거나 좋지 않을 때는 광화문으로 향한다. 오늘은 전자였다. 들뜬 감정은 가라앉히고, 쳐진 감정은 다시 올린 뒤 집에 돌아온다. 종일 쏟아질 것 같았던 폭우는 점심 먹을 때 즈음 거짓말처럼 멈췄다. 하늘을 뒤덮었던 먹구름이 말끔하게 걷혀 해가 쨍할 때쯤 집을 나왔다.
요즘 내 안의 붐인 놀이가 하나 있다.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렸을 때 내가 있는 곳 근처 명소를 소개해주는 지인 덕분에 시작된 놀이다. 가령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스토리를 올리면 <그 근처에 괜찮은 물회 집이 있어요. 메뉴엔 없지만, 소면을 꼭 추가해서 드세요> 라던가. 광주여행 갔을 때 올렸던 포장마차 스토리에 <이런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종로구 종각역 근처. 주소도 안 나오는 숨은 포차를 알려드릴까요?>라는 식으로 정보를 공유해준다.
나만큼이나 종로를 애정 하는 지인인데, 생각보다 취향이 비슷해 놀랍다. 추천해줬던 포차나 커피숍, 산책코스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마음에 쏙 드는 곳들이었다. 그렇게 모이고 모인 리스트는 어느덧 19군데가 됐다. 그 가운데 네 군데 출석 도장을 찍고 왔다. 남은 열다섯 군데를 올해 안에 돌아볼 예정이다. 뜨거운 형제에 나온 아바타 소개팅처럼, 인이어로 들어오는 목소리에 그대로 응하면 즐거움, 유쾌함, 재미 중 하나를 얻는다.
지인 덕분에 종로에서 쏠쏠한 재미를 본다. 인스타의 성지 라던가 대세가 환호할만한 취향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어폰 꼽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걸어 다니는 것, 몇 발자국 가다 멈춰 사진을 찍는 것, 그러다 목이 마르면 아메리카노 한 잔 사 먹는 것. 이 세 가지를 충족한 뒤 리스트에 나온 곳을 한 군데 가보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카카오톡에 '명란과 현미'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1월 1일부터 디데이를 세고 있다. 저장해놓는 글들까지 포함해 매일 브런치에 들어오기 위함인데, 뜬금없게도 명란은 남자 친구고 현미는 너야?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제가 이 나이 먹고 디데이를 세겠습니까, 하고 싶지만 일일이 대답하는 것도 번거로워 오늘부터 '브런치'로 바꿨다.
사실 브런치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얻은 성취감, 경험들은 말도 못 하게 많았다. 과분했고 즐거웠다. 달리는 댓글, 오가는 소통, 조금씩 꾸준히 늘어가는 구독자수.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소중했다. 동시에 나의 한계를 느꼈다.
매일, 같은 말을 쓰고 있구나.
남의 언어를 빌려 쓰고 있구나.
정작 내 표현이 없구나.
많이,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부족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브런치의 서프라이즈 선물에 감사한 하루. 보이지 않는 힘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음을 느낀다.
2020.09.09 광화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