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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밤중 걸려온 전화 한 통

by 알로

유학시절 6-7년 정도 일했던 고깃집이 있다. 그 집 고기를 참 좋아했다. 첫 아르바이트비를 받았을 때 난 휴가를 내고 가게를 찾았다. 일한 지 한 달밖에 안 되는 신참이 선배들(?) 바쁘게 일하는데 손님이 되어 테이블에 당당하게 앉다니. 심지어 혼자서. 쟤는 뭐지, 다들 매의 눈초리로 나를 훑었던 기억이 있다.


점장이 히죽거리며 다가온다. 아이고, 손님. 뭐 드시게요? 최고등급 우설 1인분 주세요. 일하는 동료들에 최소한의 예의로 음료는 술 대신 콜라를 시켰다. 우설 1인분은 내 엄지손가락만 한 두께. 크기는 내 손바닥만 했다. 당시 가게에서 가장 비싼 메뉴이기도 했던 스페셜 우설 한 접시는 무려 5만 원. 달랑 네 덩어리 나오는데 말이다.


손님들이 종종 맛있냐고 물어보는 메뉴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난감했다. 맛있다고 말을 해줘야 시킬 텐데, 먹어본 적이 없다. 거짓말을 하자니 진심 담긴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그날그날 주방에서 만든 요리로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했다. 먹어봐야 팔 수도 있다며 주방장이 꽤나 인심을 써준 덕분에 대부분은 고기 요리였다. 비록 5만 원짜리 우설은 선택받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따금씩 화로 위에서 정성스럽게 구워지는 우설을 구경했다. 비주얼만 봐도 침이 꼴깍 넘어갔다. 송송 잘게 썰어낸 파와 소금, 기름장을 섞은 양념을 우설 위에 살짝 얹어 나간다. 화로 위에 올려두면 이내 지글지글 소리가 난다. 한 번 뒤집는다. 너무 과하게 굽지 않은 상태. 겉은 바삭한데 안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상태. 한 입 크기로 잘라 레몬즙에 살짝 담근다. 저도 한 입만요, 소리가 절로 나올법한 비주얼이었다.


테이블에 앉자 화로가 놓였다. 내가 내놓을 땐 몰랐는데 손님이 되어보니 눈앞에 화로가 걸리적거린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꾸 옆으로 놨던 거구나.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젓가락과 일회용 앞치마, 양념장과 레몬즙을 담은 종지가 차례로 등장한다. 설명 안 드려도 아시죠? 동료가 익살스럽게 웃는다. 주방장이 특별 서비스라며 김치와 나물 몇 가지를 들고 온다. 뒤이어 윤기 자르르한 연분홍 빛깔의 우설 덩어리들이 등장했다.


하나씩 올려 차근차근 굽는다. 더 구워도 덜 구어도 맛이 없는 우설은 화력 조절이 맛을 좌우한다. 그렇게 한 조각씩 온 힘을 다해 음미했던 우설의 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엔 경계하듯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힐끔거리던 아르바이트생들이 "나도 먹으러 와야겠다"고 중얼거리던 모습도. 그 아르바이트생들과 7년이란 세월을 동고동락하며 수많은 우설을 팔아 냈던 것도. 손님들에게 추천할 때마다 마치 우설을 입안에 가득 담은 듯한 내 표정, 우리의 표정을 주방장은 다 보고 있었나 보다. 언젠가부터 가게 송년회 자리에 우설이 등장했다.


우설 먹으러 왔을 때 기억나냐. 당돌했었지, 네가.

생긴 것보다 성실했지. 그래서 예뻐하잖니, 내가.


오래 일하고 그만두던 날. 저기 먼 기억 속에 있던 우설의 썰을 꺼내 낯 뜨겁게 만들었던 주방장이었다. 오늘 갑자기 전화가 왔다.


"네가 맨날 괜찮냐고, 가게 잘 되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더라. 코로나라는 게 참・・・. 잠깐만 기다려봐. 우리 가게 아르바이트생으로 한국애가 들어왔거든. 우리 가게 상황이 어떤지 네 모국어로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전화한 거야. 지금 바꿔줄게."


그렇게 일면식도 없는 남성과 통화를 하고 알았다. 다음 달에 문을 닫는다. 마음이 썩 좋지 않다. 내가 그래도 긍정왕인데, 그냥 그러려니, 가 되지 않는 일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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