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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한 때

by 알로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30대의 인간관계란 이런 것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다. 모든 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다.


정말 오랜만에 카톡으로 결혼 소식을 전하는 친구들이 있다. 숱한 날 술잔을 기울이며 진로를 고민하고 죽고 못 사는 사이처럼 굴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8년에 걸쳐 해온 친구의 20대는 늘 우리와 함께였다. 막차를 넘기고도 술을 마시는 게 의리였고, 가정사와 속내를 털어놓는 게 우정이었다. 그 끈끈함은 취업도 결혼도 넘어설 줄 알았다.


정말 신기한 건 그들이 떠났을 때다. 관계란 결혼식장 출석 여부에 시한부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청첩을 하는 것도, 청첩에 응하는 것도, 식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은 여전히 식장에 참석을 하냐 안 하냐로 관계를 결정짓는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건 공허함이었다. 그간의 시절은 뭐지. 숱한 날 쏟아부었던 에너지와 주고받은 대화들, 마주했던 술잔들은 다 무엇이었나.


8년 전에 결혼한 언니가 있다. 언니가 결혼할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두 살이 될 때까지 우리 사이는 공백이었다. 대학시절 자취방에서 부둥켜안고 잘 정도로 가까웠지만 물리적으로 생긴 공백에 장사는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부산으로 출장을 갔다. 부산은 언니의 고향이었다. 문득 생각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주고받았고 언니는 통화가 끝날 무렵 그런 말을 했다.


"그래도 결혼했다는 걸 알면 나한텐 그게 중대사였는데. 적어도 언니 결혼했다면서요, 라는 말부터 꺼냈어야 맞지 않겠니?"


그런 거구나. 그때 배웠다. 공백에 민망함이 올라오는 게 싫어 결혼이란 단어를 회피했는데 그건 회피하면 안 되는 단어였다. 곧바로 건넨 사과를 언니는 받아들였다. 서운했다, 며. 그리고 아주 호탕하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인 지금 나는 언니와 한 달에 서너 번씩 만나는 사이가 됐다. 자취방에서 놀던 그 시절보다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그러니까 결국은. 식장에 가고 안 가고, 가 관계 정리를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한다. 이어질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게 돼있다는 말 또한 절감한다.


그럼에도 관계에 대한 나의 가지치기는 계속되고 있다. 가늠해본다. 그간 8년이란 시간 동안 연락이 없었다면 앞으로 8년 동안 우리 사이가 이어질 거란 보장은 없겠지. 그런 상황에서 단톡방에 툭, 안부인사마냥 던지는 모바일 청첩장을 나는 인연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청첩장을 고이 주워 식장에 찾아가야만 그 친구와의 인연이 이어질까, 라고 말이다.


내가 내린 답은 아니다, 였다. 30대 중반의 인간관계는 그렇게 숱한 날의 추억을 껴안고도 쉽게 내동댕이쳐지기도 한다. '줍줍'하고 있을 여유가 내게도 없고, '줍줍'하지 않을 나에게 서운함을 토로할 여유도 없는, 서로가 먹고살기 바쁜 시간이라 서다.


반대 상황도 있다. 호감이 있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결되는 경우가 그렇다. 평소에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 한층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됐을 때, 우연히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사람과 만나게 됐을 때. 막차 운운하지 않고도, 의리를 따지지 않고도,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내뱉는 주정을 챙겨줄 정도의 사이는 아니더라도 그 어느 순간보다 마음 편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런 변화들을 체감하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깊은 관계란 무엇이었나, 새삼 돌이켜보게 되는 나날이다.


모든 걸 공유할 수 있었던 친구가 본캐라면 관심사에 따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부캐라고 부를 수 있겠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가정사를 공유하고, 직장에서의 고충이 뭔지, 만나는 남자는 어떤 사람인지, 실컷 말하고도 전화를 끊을 때 "자세한 건 만나서 말하자"던 관계들에서 조금 벗어나 보았다.


직장에서의 고충을 이야기하기엔 직장이라는 환경을 가장 잘 아는 동료가 최적의 벗이다.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써놓은 글에 장문의 댓글을 남긴 사람이야말로 가장 좋은 말동무다. 온라인 강연을 끝내고 몇 달에 걸쳐 내 이야기를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잘 들어주던 사회자 (언니)가 번호교환을 하자고 했다. "우리 연락처 교환하자. 시간 되면 종종 치맥 해요." 강연으로 만난 사이에 술친구가 들어왔다. 관계라는 건 어쩌면 가지를 칠수록 더 뻗어나갈 수 있는 나무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들고 난 자리에서 가만히 생각해본다. 이대로 괜찮을까. 잘 살고 있는 거 맞을까.


답은 내 마음이 편한가, 에 있었다. 마음 가는 대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라는 구절이 그 어느 때보다 와 닿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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