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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덕질이요?

by 알로

며칠 전부터 방탄소년단에 관심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빌보드 핫 100으로 KBS 뉴스에 인터뷰이로 등장했던 날부터다. 작년 가을 즈음부터 즐겨 듣는 노래 리스트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멤버가 몇 명인지, 누가 랩몬스터인지, 왜 한글 이름을 놔두고 '뷔'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는지, 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아이돌 그룹이 공영방송 뉴스에 나온 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고, 뒤늦게 호기심이 일어 그날부터 과거 유튜브 영상을 다 찾아봤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며칠 전 친구와 식사자리에서 "고기 타겠다, 얼른 먹어 지민아."라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깨달았다. 나도 입덕 했구나. (지민은 방탄소년단 멤버 중 한 명이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라던가 '봄날'과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에 평화로운 가사를 만들어내는 그룹인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2013년에 데'뷔' (중증..)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온 친구들이었다. 방시혁의 대학 축사가 화제 됐던 건 방탄소년단이란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내서, 가 아니라 그들이 천천히 올라온 과정이, 대박이 아닌 진정성을 갈구하는 시대에 도래했음을 증명해주는 거라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학창 시절 HOT나 젝스키스, 신화, GOD와 같은 아이돌 그룹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덕질'과 '입덕'은 나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단어였다. HOT가 '캔디'라는 노래로 개구쟁이 같은 율동 댄스를 선보일 때까지도 나는 강타, 가 프로야구 구단 4번 타자 이름쯤 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 나의 학창 시절을 잘 아는 친구들은 고기를 앞에 두고 "타겠다, 얼른 먹어 지민아." 하고 앉아있는 날 두고 희귀 생명체라도 바라보듯 탐문하기 시작했다.


"아니... 방탄소년단이 좋다고?"

"그런 건 원래 고등학교 때 끝내는 거 아니야?"

"네가 원래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방탄소년단은 그냥 '아이돌'이 아니라고.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무대 위 군무가 멋져서도 아니고, 꿈에 그리던 왕자님 같은 외모를 가진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스토리텔링이 있고, 자전적 이야기들이 가사로 태어나고, 진정성이 있는 아티스트라 불리지만, 그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인기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너무 큰 사랑을 받아서 꼭 돌려주고 싶다 대답하는 멤버. 구설수 없이 장수하는 비결을 묻는 인터뷰에 딱히 약속을 하진 않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싶다는 멤버. 사랑을, 긍정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멤버. 고작 스물 대여섯인 친구들 입에서 들을 거라 생각해본 적 없다. 오로지 나의 만족과 관심사, 진로, 만족, 희열이 전부였던 나의 20대랑은 너무도 반전되는 모습이다.


20대의 나는 밤거리를 유독 많이 방황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방황이란 마약을 하고, 술을 마시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행인들에게 시비를 거는, 흔한 불량학생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런 '방황'은 아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몰랐고, 매일 밤이 외로웠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늘 든든한 존재였지만, 늘 홀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숱한 밤들에 유일한 기댈 곳은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뿐이었다. 대부분은 이별 후를 이야기하는 곡들로 '너 없이 안 돼' '나는 혼자가 되었어' '꿈에서라도 만날래'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와 같은 가사들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울기 위해 들었던 것 같다.


유튜브 영상을 찾다 방탄소년단의 '소우주'라는 곡을 알게 됐다. 이런 노래, 20대 때 들었더라면 참 좋았겠다, 싶은 곡이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캔커피 하나 사서 공원에 앉아 멍하니 밤거리를 바라보며 눈물 뚝뚝 흘리던 그 시절 나에게 한 줄, 한 줄 들려주고 싶은 가사.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비결은 긍정이었다. 수많은 해외 팬들이 힘들 때 위로가 돼서 좋아하게 됐다며 고백한 것처럼. 그 친구들이 가진 긍정 에너지가 지난날 암흑 같았던 내 과거마저도 위로해주고 있다. 고마운 꼬마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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