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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Oct 07. 2020

60점짜리 강연

여섯 번째 강연을 마쳤다. 이것은 마치 미끼를 던져주면 덥석 무는 물고기와도 같아서 다음에 강연이 또 있을지 다신 없을지 기약 없다. 그저 연락이 오면 감사합니다, 하고 연락이 안 오면 안 오나 보다, 하는 흐름이다. 강연 제의는 늘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이었으므로 나는 매번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임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나의 강연을 곱씹는 중인데 60점, 그 이상을 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내가 정한 강연 주제는 <나만의 강점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보도국에 작가가 있어요?라는 질문은 '취재작가' 혹은 '뉴스 작가'라는 타이틀이 어색한 이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나처럼 같은 회사에서 오래 일한 사람에겐 "붕어빵은 진짜 붕어로 만든 게 아니에요?"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그게 내가 살 길이기 때문이겠다.


취재작가라는 타이틀로 시작한 이 일이, 내 정체성을 흔들었다. 취재인지, 작가인지. 덕분에 늘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고민해야 했고, 그렇게 태어난 주제였다. 나만의 강점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마저 없으면 직함과 타이틀에 의존해야 하고, 그 삶이 때론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작가가 되고 싶고, 교수가 되고 싶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건 좋은데 그 앞을 꾸며주는 수식어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지나고 나면 뭐든 후회가 남는 법이니 지나간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오늘 강연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건 내 컨디션이 최상이 아니었다는 점. 하필 방송 당일이었고, 휴가 전이라 어딘가 모르게 (이것만 끝내면 쉰다, 라는) 들뜸이 있었을 거다. 5월부터 시작해온 강연인만큼 어느덧 익숙해진 기업 관계자나 사회자와 농을 주고받아가며 덜 긴장했던 탓도 있겠다. 강연을 들으려고 로그인 해준 친구들이 편하게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편하게 시작한 강연이 조금은 경솔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내심 걱정이 됐다.


강연을 마치고 버스정류장 근처 벤치에 앉아 처음부터 다시 강연 내용을 읊조려봤다. 아까보다 덜 들뜬 목소리로 차분하게 지금 이 순간을 전달하는 내가 있다. 사실 좀 더 강조하고 싶었던 말, 가장 전달하고 싶었던 말. 가장 편한 상태로 돌아오니 진심이 그 어느 때보다 안정된 표현으로 제모습을 드러낸다. 30분가량 혼잣말을 이어가고, 강연은 이미 끝났음을 실감하고, 그래도 한 명쯤은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는 이미 떠나갔으니.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본다. 내일부터 휴가다. 짬순으로 마지막 휴가인 것도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변동이 많아 정신없이 지나간 우리 팀. "오늘도 코로나 뉴스밖에 없네요"라는 말로 아침인사를 대신했던 상반기. 순번이 갑작스럽게 뒤바뀌고, 의지해온 동료가 병가를 내고, 일상 속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좀만 더 버티자, 좀만 더 기다리자, 를 되뇌어왔던 반년. 좀만 쉬고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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