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승민 Oct 12. 2020

타로 보실분?

정동진에서 192시간

휴가를 앞두고 작은 계획을 세웠다. 서핑은 내킬 때 한 두 번 하면 되고 이번 일주일의 목표는 글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억지로라서 짜내어 다작하는 것이 목표였다.


막상 도착한 금진해변은 연휴를 앞두고 있어 붐볐다. 여태껏 봐온 모습 중 가장 붐비는 모습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스텝을 포함해 기껏 해봐야 서너 명 정도가 유유자적 바닷가를 오가는 한적함. 배가 고프면 대충 끼니를 때우고, 여의치 않으면 원푸드로 허기를 채우는 가벼운 일상. 누군가와 때를 맞춰 식사메뉴를 정하거나 밤늦은 술자리에 분위기를 봐가며 자리를 지키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야말로 휴가니까.


바닷가로 놀러 온 관광객은 물론 서핑 샵에도 사람이 바글거렸다. 여름 내내 이곳에서 한 철을 지낸 스텝들이 놀러 온 거다.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진 그들은 무리를 지어 다녔다. 이따금씩 혼자 찾은 이들도 무리에 섞이고 싶은 눈치였다.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는다. 흔들리면 안 된다. 나에겐 목표치가 있다.


짬날 때마다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써댔다. 시각 장애를 가진 한솔 씨와 카페에서 진행했던 인터뷰도 녹취파일을 죄다 들고 와 프리뷰를 마쳐야 했다. 여유가 된다면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욕심이 산더미였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쉴 새 없이 한솔 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오디오가 비지 않는 유튜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덩달아 타자를 두드리는 내 손이 움직이는 속도도 빨라졌다. 이따금씩 스윽 지나가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으면 이따금씩 스텝들이 들어와 안부를 물었다. 끼니를 같이 하지도 수다를 떨지도 않으니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세계에 머무는 사이. 그러니까 진정한 안부였다. 바쁘신가 봐요. 여기 와서도 일하세요? 일 끝나시면 맥주 한 잔 하세요. 이따가 편하게 오세요? 저녁은 드셨어요? 저녁 안 드세요? 저기 저녁 먹고 있는데.


파티를 위한 호객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음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최대한 나를 배려했고, 내가 잠깐 시선이 허공에 가있거나 기지개를  만 슬쩍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유를 설명하기 민망해 부업 중이라고 둘러댔다. 다음 주까지 마감해야 하는  있어서요.  안의 목표치는 다음 주가 마지노선이었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대단하다고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견고하게 견딜  있었던  지난날 게으름에 대한 후회가 크다는 이유였다. 붙잡지 않으면 영영 후회할 지금의 시간들. 여기서까지 술먹고 떠들며 흘려보내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흘째 되던 . 길게만 느껴졌던 연휴가 끝나고 마을은 다시 한적해졌다. 북적거렸던 바닷가엔 파도소리만 맴돌았고 바글거렸던 게스트하우스도 조금은 한산해졌다.  , 스텝   명이 "바다에  이렇게  들어가세요. 그러다 떠나기 전에 막상 아쉬워질 텐데." 다정한 충고를 건넸다.   마디엔 많은 뜻이 내포되어있을  있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출을 보고 책을 읽다가 적당한 식당을 찾아 끼니를 해결하고 죠용한 구석에 자리를 잡아 온종일 노트북만 두들기던 일과에서 조금 벗어나 보았다.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오전부터 바다에 들어갔다. 파도에 대한 공포증이 가시지 않아 덜덜 떨면서도 일단 바다에 있는 시간을 늘리는  최선책이었다. 물가에서 기어 나와  같이 먹는 식사에 합류했다. 단돈 4000원에 제육볶음과 소고기 뭇국, 돈가스까지 배불리 먹을  있는 점심이다. 먹어보니 혼자 먹던 식당밥이나 도시락과는  다른 맛이다. 날이  풀린 걸까  춥게 느껴져 테라스 바깥에 나와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이따금씩 옆을 오가는 사람들과 말을 섞어본다.


내가 앉은자리 으로 혼자 놀러온 여자분이 다가왔다. 서양화 전공자로 그림 그리는 업을 하는데, 코로나로 일자리를 잠시 중단시키고 이곳에 찾아왔다 했다. 늘씬한 체구에 서글서글한 인상인 그녀는 첫날부터 유독 살갑게 말을 걸어오던 친구였다. 바람이  통할  같은 코끼리 바지를 입고 털썩 주저앉더니 미니 책자와 타로카드를 꺼낸다.


타로예요?

네. 공부하고 있어요.

우와, 보시는 것도 할 줄 아세요?

네, 조금은. 공부하는 중이라 잘은 못 보지만 볼 수 있어요.

오, 그럼 저도...!


눈빛이 통한다. 카드를 깔아놓고 섞어야 한다며 카페 에 있는 널찍한 나무 테이블로 가야 한단다. 테이블에 가는 와중에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타로 보실 ? 타로 봐드릴까요?   없이 말을 건네는 그녀를 본다. 틈만 나면 타인과의 세계를 단절시키려 했던 나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오만가지 생각이 튀어 오른다.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 글을 쓴다고 말해온 나는 며칠 동안 어떤 모습으로 지내왔나. 본인이 좋아하는  가지고 와서도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 하는 그녀의 마음이 내게도 전달되기 시작한 거다.


글을 쓸 거란다면 고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독채를 빌렸어야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매 끼니를 신경 써야 하는 스텝들이 있는 이곳이 아니라.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는 어디까지나 서핑이 주목적일 때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희미해서 보이지 않을 뿐 분명한 경계선이 존재한다. 나흘째 되는 날, 비로소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바다에 좀 나갔다 와야겠다. 그리고 내 타로점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 손에 들린 식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