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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an 18. 2021

일상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밥을 차려먹는다. 고작 수프 하나 끓여 구운 토스트를 찍어먹는 게 전부인데도 손이 많이 간다. 그마저도 토스트는 내가 산책 나간 사이 엄마 손을 거친다. 새벽에 일어나 필사를 하고, 책을 30분이라도 읽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아침을 맞이하면서 빛도 못 보고 막을 내렸다. 30분 일찍 일어나겠노라 앞당겨 시간을 맞추었건만 무음 모드였던 탓이다. 내심 더 잘 수 있어 좋아했던 건 사실이다.


출근하면 종이신문을 읽는다. 점심시간 전까지 총 세 부. 비슷비슷한 내용을 가지고도 참 다양한 언어로 풀어낸다. 꾸역꾸역 읽어내는 게 목표다. 간간히 눈에 띄는 기사가 있으면 인터넷으로 링크를 찾아 팀 단톡방에 올린다. 제보 사이트를 훑는다. 몇 달 전부터 야심차게 올리는 저급한 제보가 눈에 들어온다. 참도 부지런하다. 창을 닫는다. 그쯤이면 출근한 동료로부터 밥 먹자! 는 소리를 듣거나 점심 약속 시간이 다가와있다. 커피까지 사들고 돌아오면 얼추 한 시. 사지 않는 날은 카누 커피를 타 마신다. 대부분 타 마시지만, 요즘은 약속이 많아 사 먹는 일도 늘어났다. 무거운 텀블러를 가방에 꾹꾹 담아 파주에서 먼 길 출근해 놓고도 일회용컵에 담긴 커피를 든 내 손이 야속하다. 빈 텀블러를 사용해야 죄책감이 조금은 줄어들겠지 싶다. 커피를 텀블러에 조금 따라 넣고 뜨거운 물을 담아 나눠 마신다. 쓸데없는 고집인데,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짓이다.


예전보다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앉은자리가 사무실 한가운데로 배정되면서부터다. 인터넷 쇼핑몰을 뒤진다거나 예능프로 같은 (업무와 무관한) 영상을 본 적은 없다. 가끔 생각나면 들어가서 확인하는 채용 사이트가 있고 무수히 쏟아지는 카톡창을 하나씩 늘어놓고 대답할 때가 있었다. 보안필름을 붙여도 내가 앉은자리는 들어오는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시선이 두는 지점이었다. 깨달은 날, 모든 잡무를 그만두었다. 보여도 상관없지만 눈치 보는 나는 싫었다.


빨리 퇴근해야 여유로운 저녁을 즐길 수 있다 보니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집중한다고 빨리 끝나지 않는 업무라는 게 함정이다. 인터넷 기사를 훑어보다 가봐야겠다, 싶은 현장을 체크해두고 퇴근하면 가봐야지, 하고 메모까지 해두고선 회사문을 나서는 순간 포기한다. 추워서다.


퇴근시간을 피해 버스를 탄다. 제아무리 빨리 도착하다 해도 넉넉잡고 한 시간은 걸린다. 일찍 들어오는 날은 부모님이 마지막 한 숟가락 뜰 무렵. 보통은 식사를 마치고 그릇 정리에 분주할 즈음에 도착한다. 그보다 늦으면 소파에 앉아 뉴스 보는 아버지와 마주친다. 아버지가 건네는 인삿말로 당신의 마음상태를 가늠한다. 손 씻고, 옷 갈아입고, 방 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시계가 아홉 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저녁을 일찍 먹은 날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찾아낸다. 차를 끓이는 동안 읽을 책을 고른다. 읽고 싶은 책이 많다. 마음이 급해진다. 그럴 때면 브런치를 열어볼 여유가 없다. 지난 열흘간 그래 왔다. 오늘은 낮에 도착한 생일 케이크를 한 조각 들고 책상에 앉았다. 그래도 써야 맞다. 뭐라도 써야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었던 날. 사무실에 남아 김훈의 '개'를 마저 읽은 날. 뉴스 생방송으로 모니터 한 날. 괜찮은 아이템은 하나도 건지지 못한 날.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가방을 주겠다 하여 마음에 드는 가방을 인터넷으로 주문한 날.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있다면 퇴근길에 화양연화나 보러 가자 가볍게 말을 건네고 싶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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