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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an 27. 2021

"잠깐만요, 내려요!"

잠깐만요, 내려요!

닫혔던 버스 문이 다시 열렸다. 방송은 나갔지만 변한 건 없다. 익숙하지만 씁쓸하다.  


일요일 버스 취재를 하러 나섰다. 파주시 법원읍. 우리 집에서 차로 40분 걸리는 거리지만 버스를 타면 한참 돌아가야 한다. 가는 데에만 1시간 40분이 걸렸다. 환승을 많이 할수록 좋았다. 버스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영상에 담고 관찰하는 게 내 목표였다.


파주,라고 적으면 연관 검색어로 롱패딩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뉴스를 안 보는 영실이도 사회에 무관심한 정현이도 파주에서 난 버스사고는 알고 있단다. 지난주, 법원읍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던 20대 여성이 문에 끼어 사망했다. 문에 낀 채로 한참 끌려가다 버스와 분리되면서 즉사했다. 너무나 잔혹한 사고였다. 모든 언론사가 다뤘다. CCTV 영상을 보니 승객이 문에 꼈는지 모르고 버스를 운행하던 기사는 삼거리쯤에 다다러서야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도로에 누운 여성을 확인한다. 그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평소대로 운전했을 뿐인데. 늘 하던 대로 문을 닫았을 뿐인데. 설마 내가 운전하는 버스가 한 생명을 앗아갈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현장에 도착했다. 단층 건물이 즐비한 읍내였다. 지방 출장 갔을 때 어디 밥 먹을 데 있을까 한참을 뒤져도 나올 것 같지 않은 그런 읍내.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거주하는 동네. 거리의 풍경이 90년대에 멈춰있는 듯한 동네. 마을 어르신들이 지팡이 짚고 무단횡단을 해도 차들이 알아서 비켜 서행하는 동네. 오며 가며 마주치는 저 이가 뉘 집 자식인지 뒷모습만 봐도 아는 동네. 실제로 나와 버스에서 같이 내린 중년 여성은 앞좌석에 앉은 여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얘기 다 못 들어서 아쉽네. 내일 봐." 그런 동네였다.


정류장에서 사고지점을 찾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사에 나온 화면 속 간판을 하나씩 맞춰보며 동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갔다가 결국 사고가 났던 삼거리를 찾아냈을 때. 말을 잃었다. 전봇대 아래 단출하게 놓여있던 국화 세 송이. 분노가 올라왔다. 분명히 이곳에 오기 전까지 마음은 달랐다. 버스기사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거다, 배차간격에 쫓기는 거 어제오늘일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안타깝지만 기사 개인의 책임으로만 몰아갈 순 없다. 수없이 되뇌어왔음에도 국화 세 송이 앞에서 무너졌다. 밥줄이 끊긴다 한들, 배차간격에 쫓긴다 한들, 잠이 몰려오고 온몸이 뻐근하고 몸이 망가진다 한들, 사람이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될 곳이었다.


시야를 가릴만한 갓길 주차가 있던 곳도 아니었다. 좁은 인도가 있고 문구점이 있었다. 어린이 보호구역이었다. 속도를 내서는 안 되는 거리. 정류장에서 20m 떨어진 지점에서 여성이 사망했다고 기사에 나와있었지만, 체감상 거리는 훨씬 멀게 느껴졌다. 정류장에 섰을 때 보이지도 않는 지점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거리를 버스가 달리는 동안 여성이 휩싸였을 공포감은 그 어떤 사유로도 변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집에서 현장까지 버스를 세 번 갈아타는 동안, 단 한 번도 지금 막 승차한 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려준 기사는 없었다. 정차한 다음에 뒷문으로 이동하는 승객은 딱 한 명 봤다. 그마저도 그는 양손에 짐이 있었다. 빈 손이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다. 조금 급한 승객들은 천천히 일어나 카드를 찍고 하차벨을 누르고 한 정거장을 아예 선 채로 간다. 이 모든 풍경에 그저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그간 오랜 시간을 무질서함 속에 살아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귀가 따갑게 안내방송을 틀어놓는다.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하라는 내용이다. 일부 버스에는 경고문도 붙어있다. 만약 미리 일어난 상태에서 낙상 사고가 발생할 경우 버스회사는 절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당부 문구다. 그렇다면 의문을 품어야 한다. 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기 전에 급출발해서 내가 넘어졌을 경우 그 책임은 누구한테 갈 것인가. 버스회사는 순순히 책임져주지 않는다. 나한텐 절대 그런 일이 벌이지지 않을 것이며 혹여나 벌어져도 나는 끝까지 싸워서 보상을 받아낼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너무나 안일한 사고방식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버스회사가 전화를 받지 않고,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CCTV를 기한 내 제출하지 않아 손해를 본다. 몸도 마음도 다친 채로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이 상대하기엔 버스회사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이 모든 가정에 완벽한 확신이 없다면 배차간격이 늦어지는 걸 감내하고서라도 민원을 넣고 항의를 해서 급출발, 급정거를 없애야 한다. 일단 나부터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부터 바꾸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 종일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다.


사고 현장을 오가는 버스들은 여전히 과속을 일삼고 있었다. 승객이 내리기 무섭게 문을 닫아버렸다. 기사님, 내려요! 잠시만요! 내릴게요!라는 소리를 하루 만에 다섯 번 들었다. 카드를 찍자마자 출발해 잔스텝을 밟는 사람부터 뒷좌석까지 뛰어가는 사람, 발을 헛디뎌 넘어질뻔한 사람, 수도 없이 봤다. 반면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도 자연스럽게 버스에 타려는 사람들, 휴대폰을 보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막무가내로 도로에 세워달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버스 민원사이트엔 버스가 빨리 가면 과속한다고, 속도를 늦추면 느리다고, 민원을 넣는 사람이 허다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변한 건 하나 없이 도로 위 국화꽃만 사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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