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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Mar 25. 2021

범인은 누구

고깃집에 소방차 온 날

런치타임을 담당하는 사람은 가게 열쇠를 관리했다. 10시 20분쯤, 출근하는 나머지 직원들보다 먼저 도착해야 하는 막중한 의무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쿠마 씨는 가장 가까운 데 살면서도 가장 늦게 오는 사람이었다. 대장이 누리는 여유겠다. 조용한 아침 골목길에 삑삑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등장했다. 나름 잘탄다고는 하는데 늘상 휘청거리며 운전하는 모습이 영 어설퍼보였다. 이따금씩 이른 시간인데 가게 앞에 쿠마 씨 자전거가 세워져 있기도 했다. 전날 쿠마 씨가 과음했다는 뜻이었다. 만취하여 자전거를 버려두고 귀가했거나 미리 도착해 눈 좀 붙이며 숙취를 해소하는 중이거나. 일 년에 한 두번쯤 부지런하게 일찍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어쩐 일이냐며 무슨 일 있냐 물으면 왜이렇게 호들갑을 떠냐는듯 눈을 흘겼지만, 알고보면 이발을 했거나 볼일이 있는 날이었다.


대학생 때는 런치타임에 들어간 적이 없다. 대개 1교시 수업이 있기도 했지만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굳이 오전 아르바이트를 넣어야 할 이유 또한 없었다. 깔끔하게 식사를 마치고 칼같이 가게를 나서는 점심 손님보다 먹고 마시며 넘치는 흥을 쏟아내는 저녁 손님을 더 좋아한 것도 이유였다. 런치 고정멤버는 주부 한 명과 프리터(프리랜서 아르바이터의 줄임말로 비교적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 사오리였다. 사오리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하얀 피부, 뚝 떨어질 것처럼 큰 눈망울이 툭 튀어나와있는 아이였다. 오픈 멤버이기도 하여 쿠마 씨는 사오리를 꽤나 예뻐했다. 아버지와 딸 뻘인데 초반엔 하도 둘이 붙어 다녀 혹시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닐까 의문을 가지기도 했단다. 종국에 그녀는 보란듯이 두 살 위인 치히로에게 고백했다. 치히로에겐 오랜 짝사랑 상대가 있었다. 한국인 연상 누나였는데 수년간 고백했으나 대차게 차였고, 그 과정 내내 곁에서 위로해주던 사오리에게로 애정이 기울었던 모양이었다. 치히로는 만화에 나오는 순박한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격도 순둥순둥 했다. 늘 해맑게 웃는 귀염상이었지만 190cm에 가까운 장신이었고,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해서 몸이 단단했다. 불가마 앞에서 숯을 턱턱 꺼내 화로에 옮겨 담는 치히로의 뒷모습을 사오리는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백수 생활을 했다. 돈이나 벌자 싶어 평일 런치를 들어가기 시작했다. 4월의 어느 봄날. 따스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가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빗자루질을 열심히 하는데, 주방 서브 요리사 사토가 들어왔다. 사토가 런치타임을 한다는 건 쿠마 씨가 쉬는 날이란 뜻이다. 맛있는 마카나이(직원용 식사)를 기대하긴 글렀다 생각하며 2층 준비를 하러 올라갔다.


2층 불가마에서 만든 숯은 1층 불가마로 옮겨진다. 2층엔 가스가 연결되어 있지만 1층의 가마는 고장이 나서 보관용으로 쓰고 있었다. 출근한 사람은 가장 먼저 숯불을 만들어야 했다.  전 날 타다만 숯을 얼기설기 쌓은 다음 시뻘건 숯 두어 개를 섞은 채 불을 만들면 금방 살아났다. 시뻘겋게 익은 숯덩이를 화로에 담아 계단 오르내리기를 두 번 반복하면 그날 런치에 쓸만한 양이 채워졌다. 1층에 넉넉하게 담아두고, 이제 2층 숯을 만들러 갈 차례. 남은 숯덩이 위에 새 숯을 얹어놓고 불을 줄인 뒤 1층으로 내려와 반찬 준비를 하는 수순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김치를 한 줌씩 옮겨 담던 사오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네, 무슨 냄새지? 그 순간 불이야, 불! 다급하게 외치는 사토 목소리가 들려왔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건 2층을 담당한 내가 뭔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달려 올라가니 2층 주방에선 허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양동이에 물을 담아 한차례 부으니 불씨는 꺼진 것 같은데 연기가 문제였다. 오픈까지 15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냄새가 빠질리 없었다. 환기라도 시킬 겸 창문 열 생각으로 달려가는데, 아랫층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소리. 내 기꺼이 너희들의 고막을 찢어서라도 불이 났다는 걸 알려야겠다며 절규하는 듯한 소리. 사오리는 어딘가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야무져. 감탄하며 바라보는데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변하더니 급기야 아, 그건 아닌데요, 괜찮은데요, 를 반복하고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소방서에서 출동한대.

-왜?

-화재경보기 끄는 법 알려달라고 했더니 화재가 났냐고 묻길래 맞다고 했어.

-불 꺼졌는데... 괜히 헛걸음하는 거 아니야?

-나도 말리려고 했는데 일단 확인을 해보겠대.


역시 철저한 나라다. 별 이상이 없는지도 확인하러 오는구나. 잿가루를 쓸어 담고 바닥을 닦는데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데서도 불이 난 모양이다. 그런데 점점 소리가 가까워진다. 화재가 진안됐으면 사이렌을 울릴 필요가 없는데 이상하게 소리가 점점 커진다. 느낌이 안 좋다. 창가로 달려가니 대형 소방차 두 대가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었다. 좀처럼 볼 일 없는 대형 소방차의 등장에 동네 주민들은 죄다 나오기 시작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소방차 뒤를 쫓더니 도착지가 우리 가게임을 알았는데 이사람 저사람을 불러모은다. 가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문전성시를 이뤘다.


건장한 소방관 두 명이 가게를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화재경보기는 찌링 찌링 울려대고 있었다. 요놈이 문제군요. 바로 고쳐드릴게요. 곧 영업을 할 수 있겠구나, 안심하며 2층에 올라가 빗자루질을 하는데 사오리가 뒤따라 올라왔다.

 

-저분들이 너한테 물어볼 게 있대.


가게를 두리번거리며 2층으로 올라온 소방관 한 명이 내게 물었다.


-여기가 화재가 났던 곳인가요?

-네.

-그때 어디에 계셨나요?

-1층에 반찬 담는 거 도와주러 내려가 있었어요.

-그러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불이 났다는 거죠?

-네.


곰곰이 생각하던 소방관은 뒤돌아 동료 소방관에게 다가갔다. 한참을 속닥속닥거리는데 이야기를 듣던 나머지 소방관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다시 내쪽으로 걸어온 소방관이 힘주어 말했다.


-방화사건인 것 같습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 들어와서 불을 질렀을 가능성도 있다는 건데요. 혹시 1층에서 올라오는 입구 말고 외부와 연결되는 다른 통로가 있을까요?


있다. 건물 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비상계단이 있고, 2층과도 연결돼있었다. 다만 원체 문이 뻑뻑해서 잘 열리지도 않고, 비상상황도 없었다보니 평상시 쓰레기장으로 사용되다시피했다는 점. 비상탈출구라 하기엔 민망한 그 공간을 보여주었다. 문을 열자 각종 음료와 채소, 술을 담았던 빈 상자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주변엔 먼지 쌓인 잡기들이 수두룩했다. 언제 썼을까 싶은 입간판이나 가게 이름이 적힌 깃발, 대걸레와 빗자루, 그 외 온갖 잡동사니들까지.


소방관, 깊은 한숨을 쉰다. 불이 나면 어떻게 도망치려고 비상계단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까, 중얼거렸다. 오늘 내로 다 치워주셔야 합니다. 추후 다시 점검을 오겠습니다. 바짝 긴장해 알겠다고 하는 나를 소방관이 다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상하네요. 여기가 유일한 통로가 맞는 거죠?

-네.

-그럼 죄송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숯불을 만들었는지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내가 불이라도 질렀단 말인가. 이들의 추리극은 끝이 없었다. 누구 하나 범인을 잡고 책임을 밝혀야 끝내겠다는 의지.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가 방화범일 거란 가능성 또한 배제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나는 1층으로 빈 화로를 들고 내려갔다. 여기서 숯 몇 덩이를 넣었고요. 그리고 다시 계단을 올라와서 주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요?) 화로에 있는 숯을 이 통에 넣고 불을 켠 다음에 (한 번 껐다가 다시 켜주시겠어요?) 밸브를 잠갔다 열어 가스가 나오게 한 상태에서 짤깍 소리를 내며 라이터를 구멍에 갖다 대니 펑 소리가 나며 불이 부었다. (그리고?) 그리고 새 숯이랑 이 시뻘건 숯이랑 같이 섞어서 불이 잘 붙게 했고요. 집게를 놨죠. (어디예요?) 여기에요.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는 소방관의 뒤에는 그의 동료가 에이포 용지에 나의 동선을 볼펜으로 그리고 있었다.


-여기에 성함을 적어주시겠습니까.


불 질러서 추방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인가. 한자를 다르게 쓸까. 학교 이름을 그대로 써도 될까. 빨간 줄 생겨서 대학원에 못 들어가는 건 아닐까. 착잡한 마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 주방에 쭈뼛거리며 들어갔다. 사오리도 사토는 영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체되고 있어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는 중이었다. 성미가 급한 손님들은 미리 앉아있겠다며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2층에서 열띤 논의를 벌이던 소방관 두 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으며 내려온다.


-찾았습니다! 원인을 찾았어요!


나를 미심쩍게 바라보던 그 소방관과 2층으로 올라갔다.


-아까 이 집게로 숯을 뒤적거리셨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걸 이 상자에 놓으셨다고 했죠? 집게가 불에 직접 닿았기 때문에 상당히 뜨거워진 상태에서 종이랑 만나서 불이 난 거였어요. 저희가 직접 다 실험을 해봤습니다.


실험이라고 말하기엔 빈약해 보이는 타나만 종이를 내 면전에 흔들며 소방관이 웃는다. 그들은 정말 나를 방화범이라 여겼던 것인가. 미스터리 한 화재가 방화인지 우연인지를 밝혀내야 하는 책임감이 이리도 막중하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화재사건은 잘 마무리되었다. 소방차가 출동했다는 소식과 비상구 계단에 적재물을 치우라는 안내전화가 갔던 모양이다. 오후에 점장과 쿠마 씨가 가게로 출동했다. 혼이 날까 잔뜩 얼어있는 내게 많이 놀라지 않았냐며 괜찮다며 큰 불이 나지 않아 다행이라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내온다. 이왕 온 김에 식사나 하고 가겠다며 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제야 나도 안심을 했던 모양이다. 괜스레 눈가가 시큰거렸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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