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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Mar 31. 2021

열 아홉의 노란머리

한국인 점장이었던 오닐이 우리 가게에 머물렀던 건 일 년 남짓한 기간이었다. 본점은 점점 매출을 올려나갔고, 사장은 다른 지역에 점포를 하나 둘 늘려가기 시작했다. 가게가 새로 오픈할 때마다 사장의 동생 오닐은 매니저를 자처하며 새 둥지에 머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코하마 쪽에 세 번째 가게가 오픈했을 때 그는 본점을 떠났다. 그 가게의 점장이 되기로 한 것이었다.


같이 일했던 또래들은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어학연수를 다녀오느라 밀린 수업을 채워야 해서 일주일 내내 학교에 가야 했던 나완 달리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 논문지도 수업에만 출석하면 되는 스케줄이었다. 사실상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그랬다. 이수해야 하는 학점은 3학년까지 다 메꿔놓고 4학년은 본격적으로 취직 준비에 접어드는 시기였다. 남들 다 하나씩 갖춰놨다는 검은색 정장 한 벌도 내겐 없었다.


또래 아이들로부터 하나 둘 합격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본에선 취직했다, 는 말을 '내정(内定) 받았다'라고 표현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대신 내정받았어? 저 내정 받았습니다! 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아야노가 도통 아르바이트를 안 나오네, 요즘 바쁜가. 옆에서 누군가 말한다. 아야노 내정받아서 놀기 바쁠 걸. 대학 졸업을 몇 달 앞두고 내정을 받은 자는 세상 무슨 짓을 해도 용서될 분위기였다.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 아이들은 대학과 동시에 가게를 졸업했다. 그동안 번 돈으로 야무지게 고기 몇 접시씩 먹어치우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와 함께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가게를 나섰다. 정든 라커며 손때 묻은 커뮤니케이션 노트며 이 좁고 아늑한 주방도 그리울 거야, 울먹거리던 그들은 반짝반짝하게 닦아 빛이 나는 검은색 구두를 신고 반듯하게 다려놓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눈물은 정장 주머니속 손수건으로 야무지게 닦아냈다. 그들이 떠난 가게엔 나와 사오리만이 남았다.


그 무렵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밤엔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허덕이며 애꿎은 이력서만 만지작거렸고 낮엔 밀린 수업을 다니기 바빴다. 새벽엔 키보드를 두들겨가며 졸업논문을 한 장 한 장 채워나갔다. 가게에 들어갔을 때 코 안을 가득 메우는 숯불구이 향을 맡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가게는 대규모 아르바이트생 채용공고를 냈다. 새로운 점장이 오닐의 자리를 대신했다. 키가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그보다 작아 보이는 스물여덟 살의 무라타였다. 무라타는 두 아이의 아빠였다. 스무 살 때 '아이가 생겨버려서' 결혼했다던 그는 우연히 '생겨버린' 딸내미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딸바보였다. 한 번 싸이월드에 그의 사진을 올렸던 날 한국의 친구들은 입을 모아 영화배우냐며 댓글로 호들갑을 떨기도 했지만, 성격은 몹시 괴팍했다. 말이 거칠었고, 짙은 쌍꺼풀의 두 눈을 부릅뜨고 채근할 때면 정말이지 무서웠다.


그는 일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장으로 오랜 기간 일해온 사람이었다. 접객은 내가 최고야, 라는 말로 곧잘 우리를 억압하려 했지만 그의 접객 스타일은 굉장히 기계적이었다. 미소 한가득 손님들과 수다를 떨며 인간적인 친분을 쌓아가는 게 우리가 지향한 접객 스타일이라면 그는 제때제때 필요한 걸 갖다 줄줄 아는 재빠른 눈치만이 접객의 전부라 믿는 사람이었다. 왼손을 살짝 들고 걸어 다니는 내 걸음걸이를 놀려댔고, 짓궂은 장난에 도끼눈을 할 때면 '한국 여자는 왜 그렇게 기가 세냐'며 다그치던 이였다.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세상이 떠나갈 듯 고성을 내며 혼을 냈고, 간이영수증을 발행하는데 우체국의 '우(郵)'자를 기억하지 못해 머뭇거리니 보란듯이 내 대신 영수증을 써주며 '나는 고졸인데, 너는 나보다 학력이 좋으면서 우체국도 못쓰냐'며 핀잔을 주곤 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야니키쿠의 세계에선 학력이 필요 없었다. 손님이 원하는 걸 바로바로 캐치하고, 영수증에 명필로 한자를 써내려가는 기초상식이 중요할뿐이었다. 나는 초반에 그를 끔찍하게도 싫어했더랬다.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았기에 더 그랬다.


아르바이트생으로 가와구치라는 열아홉 살짜리 남자애가 들어왔다. 고등학교를 곧 졸업한다던 그 아이는 곱실거리는 샛노란 머리를 하고 면접을 왔더랬다. 이렇게 단가가 높은 고급 야키니쿠집에서 샛노란 머리가 웬 말이냐며 당장 머리를 염색하라던 무라타한테 다른 건 다 양보해도 머리만큼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 반항하던 아이였다. 실제로 머리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곤 더할 나위 없이 유순한 친구였다.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을 나이라서 그런가 시키는 건 뭐든 그만하라 할 때까지 땀까지 삐질삐질 흘려가며 묵묵하게 해내곤 했다. 쿠마 씨와 무라타의 짓궂은 장난이나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19금 농담도 곧잘 웃어넘겼다. 음식이든 옷이든 일이든 불평 않고 곧잘 해내는데 아르바이트는 주 5일씩 꼬박꼬박 들어오니 사실상 가게의 모든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내 역할을 톡톡하게 한 셈이었다.


무라타는 무슨 속셈인지 나와 가와구치만 있으면 충분히 가게가 돌아갈 거라 호언장담하기 시작했다. 곧 죽어도 이 둘만 제대로 교육시켜놓으면 뒤따라 합류하는 친구들도 곧잘 따라올 것이라며 아르바이트생을 더 이상 채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와 가와구치는 서로 얼굴에 난 점이 몇 개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살아야 했다.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원수마냥 눈만 마주치면 싸웠던 무라타와도 점차 애증의 가족처럼 관계가 두터워지기 시작했다. 쿠마 씨는 때론 점장의 입장에서 때론 나의 입장에서 고루고루 양념을 쳐가며 키작고 삐질삐질거리는 우리 셋을 잘도 보듬어주었다. 그렇게 약 1년 동안 세 명의 남자들과 고깃집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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