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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Mar 22. 2021

먹어본 놈이 잘 팔지

메뉴를 추천하는 방법

먹어본 적 없는 요리를 판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손님이 들어와 이 가게에서 가장 맛있는 게 뭐야?라는 질문을 건네 올 때 난감했다. 그래서였을까. 쿠마 씨는 가게에서 파는 메뉴 가운데 먹고 싶은 걸 고르면 식사로 만들어주곤 했다. 먹어본 놈이 잘 판다며.


종종 가게 영업이 끝나고 야키니쿠 파티를 열었다. 파티가 있는 날은 라스트 오더 시간에 유독 분주해진다. 나나 할 것 없이 모두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화로도  어느 때보다 열심히 청소하고, 멀쩡한 양념통도 괜히 한 번 열어보고, 유리잔도 뻑뻑 소리가  때까지 깨끗하게 닦아둔다. 맥주는 우리가 마셔야 하니까 열어두고 나머지 음료는 배관 청소를 마친  깨끗하게 닦아 랩으로 감싸놓는다. 라스트 오더 시간이 다가오고,  명이 슬쩍 손님 테이블에 다가간다. 칸막이마다 미어켓마냥 다들 고개를 삐쭉 올리고는 귀을 기울인다. 추가 주문이 들어오면 소리 없는 탄식이 곳곳에서 올라온다. 눈을 마주치고 킥킥거리며 웃는다. 들뜬 아이들이 눈에 거슬리면서도 귀여운 모양인지 주방에선 웃음기 섞인 호통 소리가 나온다. "웃지 말고 일들 해!"


아마도 무언의 메시지가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하필 그런 날에 늦은 시간까지 있던 손님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빨리 먹고 자리를 떠야   같은 부담감. 고개를 돌리면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지만 뒤통수가 괜스레 따가운 느낌. 제발 빨리 가주라. 그래야 우리가 고기  점이라도  먹지. 간절한 염원을 담은 아르바이트생들의 눈초리를 아마도 손님들은 느꼈을 것이다. 그쯤 되면  일이 없어진  명은 먼저 퇴근을 하고 사복으로 갈아입는다. 이윽고 셔터를 내리는 시간.  테이블 정도 잡아놓고 접시와 집게, 젓가락 같은 것들을 세팅해둔다. 미리 살려둔 숯들을 화로에 잔뜩 담아준다. 너도나도 양념소스를 퍼다 나른다. 혹시 많이 먹을 수도 있으니 불가마 은 살짝 열어두는 세심함이 있어야 한다. 과거 야키니쿠 파티  불이 죽어버려서 고기를  먹은 경험이 있는 자들의 몫이었다.


주문받은 고기들이 등장한다. 야키니쿠 파티가 있는 날엔 쿠마 씨가 사전 설문조사를 돌렸다. 안창살이 먹고 싶어?  그래. 육회? , 그게 얼마나 비싼데 (그러면서  크게  접시씩 담아 내온다). 호르몬? 그래. 갈비? 좋지. 목살? 취향 특이하네. 알겠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고급 고기는 아무도 주문하지 않는다. 달랑  조각에   원씩이나 하는 고기들이다. 쿠마 씨는 그런 우리의 마음을 읽고 종종 특급 우설이나 안심, 스테이크와 같은 부위들도 인심 좋게 내놓곤 했다.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는 평범했다. 오늘   테이블 손님 봤냐.  사람 단골 맞지 않냐, 양념장 나갈  고추 썰어 넣어줘야 하는  사람이다, 아까 2 바쁘지 않았냐, 처음 보는 옷인데 예쁘다, 데이트할  입으려고 샀다, 언제 개강하냐, 연애는 잘하고 있냐..., 수다는 끝이 없다. 평소 점장이나 쿠마 씨에게 서운한 점이 있었다면 그날이 절호의 기회다. 반대로 된통 혼이 나기도 한다. 점장이나 쿠마 씨는 대인배라 굳이 맛있는 요리를 앞두고 아르바이트생을 혼내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술에 취해 조금씩 인사불성이 되어가면 네 이놈 잘 걸렸다는 식으로 저번 주에 지각하지 않았냐는둥 손님을 대할 때 좀 더 공손하라는둥. 애를 잡아놓고 눈물  나올 정도로 혼을 내곤 했다. (그리곤 2 술자리에 끌고 갔다.)


파티는 단순히 먹고 마시장이 아니었다. 제대로  소통을   있었고 가게가 정신없이 돌아갈  똘똘 뭉쳐 합심할  있는 단결력을 만들어주었다. 제시간에 출근카드를 찍고 퇴근하자마자 칼같이 귀가하는 가게였다면 아마도 누리지 못했을 낭만이 있었다.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나가거나 바꿔야 하는 일이 생겨도 큰소리 없이 지나갔다. 같이 일하면 좋고, 일을 많이 하면 돈을 버니 좋고, 소수로 일하면 평소보다 고급스러운 식사를 먹을  있으니 좋고. 다들 문제없이 어울렸던 건 어쩌면 통 크고 수완이 좋은 한국인 사장과 통 크고 화끈한 일본인 쿠마 씨와 유하게 사람 좋은 한국인 점장이 잘 융합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반년 정도 지났을 때 메뉴에 있는 모든 요리를 먹어본 상태가 되었다. 그때부터가 진짜였다. 손님이 맛있는 메뉴를 추천해달라고 말해주길 기다렸다. 나는 이 가게에서 파는 모든 걸 다 먹어봤으니까.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맛있지만, 보다 맛있게 먹는 비밀 레시피를 아니까. 오늘은 고베에서 고기가 들어왔는데, 호르몬은 레몬에 찍어먹는 게 더 맛있는데, 어제 발주해둔 자몽이 방금 막 도착했는데, 오늘은 쿠마 씨가 쉬는 날이라 해물찌개는 평소보다 조금 맛없을 수도 있는데. 메뉴 하나하나에 애정이 생기니 할 말이 늘어났다. 단순히 이 고기를 팔아야겠다, 가 아니라 이 대화로 하여금 이 손님을 단골로 만들어버리겠다, 는 의지를 모두가 가졌던 것 같다. 시키지 않는 영업과 홍보를 아르바이트생들이 자처하니 쿠마 씨도 점장도 흐뭇했을 터. 매뉴얼에 없는 서비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골마다 특징이 다르고, 식습관도 취향도 다르니 빼야 될 건 빼고 넣어야 할 건 넣게 된 것이다. 레드와인을 꼭 얼음잔에 달라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서비스로 나가는 무말랭이에 오징어를 빼 달라는 사람도 있다. 보편적으로 양념에 먹는 갈비요리를 기어이 소금으로 달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오이 알레르기가 있어 모든 요리에 오이를 제거해야 하는 손님까지 기호도 천차만별이다.


그 데이터들은 커뮤니케이션 노트에 기록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노트. 특별한 공지가 없을 때는 '오늘도 파이팅합시다'라는 점장의 멘트에 확인한 사람은 서명을 하는 식이었는데,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으면 별표를 그려 넣고 적어두었다. '맨날 남녀 둘이 와서 상(上) 갈비 2인분이랑 우롱하이(사케에 우롱차를 섞은 술) 시켜먹는 사람들, 쇠젓가락 말고 나무젓가락으로 주세요!'라는 식. 사실 까먹어도 대수는 아닌데, 빠르게 공유하다 보니 모두가 기억하게 되었고, 손님은 나를 기억해주니 반가워 한 번 찾은 거 두 번 오게 되고. 그렇게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 매출이 500만 원이면 가위바위보로 1등을 정해서 한 명이 5000원을 받았고, 800만 원까지 올랐던 날은 2등까지 정해서 8000원씩 받는 소소한 포상. 별 거 아닌데도 일하러 가는 게 참 즐거웠던 시절.


기억이 미화되서인지 모르겠다. 애들은 잘 해주면 기어오르니 싹을 잘라야 한다던가, 아르바이트 밥으로 비싼 걸 해주면 돈이 아깝다던가, 월급을 떼어먹는다던가, 연락없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씁쓸하다. 물론 우리 가게에도 더러 있었다. 포스에서 만 엔씩 훔쳐가는 놈도 있었고, 좋은 고기를 몰래 빼가 집에서 구워먹는 놈도 있었고, 잘 나오다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결같이 사람을 보듬어 주는 공간이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나는 여기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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