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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un 16. 2021

3학년 6반 일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휴대폰이 있다 보니 달력을 따로 챙기진 않았다. 작년엔 화장실 월별 달력을 한 장씩 뜯어낼 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다. 올해 새로 걸린 달력은 두 달씩 담겨있다 보니 체감도 두 배가 되었다.


나이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람을 조금 멀리 하게 되었다. 아마 듣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나이와 무관하게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돌아보니 주변은 결혼이나 연애, 체력의 부재에 대해 낮은 빈도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아마도 나이에 예민해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두 달 전부터 출판사와 일을 하고 있다. 책을 출판하기 전, 교정교열과 윤문 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편집자 한 명이 한 권을 한 달 동안 맡아하는 걸로도 빠듯하다 보니 요즘은 외주를 주는 추세인가 보다. 언젠가 출판사를 낼 생각이라 다시 손에 익힐 겸 구직 공고를 올렸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일감이 들어왔다. 한 건 마치고 다음 날 또다시 같은 곳에서 의뢰가 들어와 지금 막바지 작업 중이다. 베테랑 대표님과 일하다 보니 혼나기도 혼난다. 꾸짖음에 목말라 있던 터라 지적이 반가웠다. 한동안 등한시했던 분야라 이 또한 좋은 기회로 삼겠노라 마음을 다잡으니 퇴근하고 늦은 시간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일상이 꽤나 달갑게 느껴진다.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최대한 멀리 밀어내고 있다.   넘게 분쟁이 오갔던 보험사 건은 그래서 조용히 해결된 모양이다. 바득바득 우겨가며 고성을 지를 때보다 마음을 비우고  서류만 제대로 내는  훨씬 이득이라는  배웠다. 여러모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는 마이너스다. 더불어 배드민턴 레슨을  달만 단했다. 여름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체중감량이 시급한 요즘인데, 클럽활동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도를 넘어서 단칼에 잘라냈다. 매우 홀가분했다. 와우산 근처만 가도 두통이 왔었는데, 거리를 두고 지내니 다시 몸이 근질거려왔다. 보름쯤 시간을 두니 다시 배드민턴이 치고 싶어 졌다. 아마 다음 달부터 다시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술 약속이 현저히 줄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최소한으로 줄이는 중이다. 꼭 먹어야 하는 자리에선 정말 천천히 마시게 됐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 컨디션 두 병을 들고 와 마시고 시작하자던 동생이 두 시간 내내 생맥주 한 잔을 들고 있는 날 보며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무슨 일이에요. 진탕 마실 줄 알고 컨디션까지 사 왔구먼! 동생은 뜬금없이 찾아온 변화가 새삼 기쁜 눈치다. 개중엔 아쉬워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나 역시 요즘의 컨디션에 만족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유지할 듯싶다.


생각해보면 한 것도 없이 반년이 훌쩍 지나간 느낌인데, 소소한 일상들이 많이 달라졌다. 부정적인 감정 소모가 사라진 게 가장 큰 변화인데, 이건 내 글쓰기 습관에 아주 살짝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부분은 우울하거나 생각이 많거나 서운하거나 반전이거나 그립거나 속상할 때 물꼬 터지듯 글을 쓰곤 했으니. 대부분의 감정을 휙휙 날려버리는 요즘은 그저 모든 게 좋게만 보이니 쓸 일이 줄어들었다. 글감의 성향도 바꿔야 할 때가 왔나 보다. 지난 달 읽었던 책이 큰 역할을 해주었다. 나란 사람은 열차가 지나다니는 플렛폼이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지나다니는 열차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쁘고 신나면 원없이 그 감정을 만끽하되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찾아오면 곧 떠날 열차처럼 바라보라는 건데 생각보다 쓸모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내 안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졌다. 회복력은 덩달아 앞당겨졌다.


무엇보다 일할 때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멤버 교체로 인해 분위기가 확 달라진 덕분인 듯싶다. 궁합이 잘 맞는 친구와 일하는 달인데 무엇하나 걸리는 것 없이 순조롭게 지나가고 있다. 생각해보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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