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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un 22. 2021

화장실에서 발견된 의문의 휴대폰

어느 날 회사 여자 화장실에서 휴대폰이 나왔다. 청소하던 분이 발견했고, 주인을 찾아달라며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 직원 A에게 휴대폰이 건네 진다. 주인을 찾아주려고 휴대폰을 켰는데, 유심칩이 없다. 느낌이 싸했다. 몇 안 되는 사내 여직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었고 경찰이 출동했다.


작은 소란이 벌어지는 사이 신고했던 A에게 남자 직원이 다가온다. 할 말이 있단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직원은 휴대폰 주인이 본인이라며 실토한다. 네가? 얼굴에 '도덕'이란 두 글자가 적혀있는 네가? 사회초년생일 때부터 가장 가깝게 지내오던 후배인 네가? 나를? 우린 지금 이렇게 심각한데, 이 상황에서 장난치는 건가. A는 그때까지도 범인이 후배라는 걸 상상조차 못 했다.  


출동했던 경찰은 간단한 조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불안해진 A는 그날 밤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 일 아니라는 듯 내일 보자, 며 전화를 끊은 상사는 그다음 날에 출근했을 때도 별 말이 없었다. 점심시간, 상사가 여직원 A를 호출한다.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며 A앞에 스윽 내밀며 말한다.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네가 확인해봐.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 안에 뭐가 있구나. 근데 그게 나일 수도 있겠구나. 치마를 입고 블라우스가 있는 영상에 등장하는데, 그게 너로 추정된다는 말을 듣는다. A는 차마 영상을 열어보지 못했다. 믿었던 회사에 분노가 올라온다. 비밀번호를 알았으면, 발견된 게 여자화장실에서 나온 거라면, 여자 직원들이 먼저 확인을 했어야 맞는 그 휴대폰이 왜 상사의 옷 주머니에서 나오는 건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신고가 늦었기에 포렌식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데이터였음에도 불법 촬영으로 기소된 건수만 55건이었다. 전부 A씨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직장 사람들과는 공유하지 않았다던 A씨의 SNS 계정 사진들도 차곡차곡 날짜별로 정리되어있었다.


상담과 자문을 받는 나날이 이어졌다. 사측은 온전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몇 주 지나지 않아 약속은 번복됐다. 언제까지 힘들어할 거니? 또 쉴 거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몸에 마비가 오고, 숫자도 잘 못 세고, 말도 더듬기 시작하며 응급실을 오가던 A에겐 사측의 번복이 야속했다.


일반인으로 살아가면서 소송과 재판, 변호사 선임, 공판이라는 단어들을 접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평범하던 나날에 날벼락처럼 찾아온 불법 촬영이란 네 글자가 A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가까웠던 후배에 대한 배신감, 분노, 절망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건 사측의 대응이었다. 대표는 네가 잘나서, 예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며 무마시키려 했고 수사관은 가해자가 합의를 원한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차마 가족에겐 말하지 못해 몇몇 친구에게 털어놨던 A씨에게 친구들은 이제 그만 잊으라, 며 조언을 건네 왔다. A씨는 자진퇴사를 하게 된다. 자진퇴사는 실업급여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예외라는 정보를 듣고 상담을 간 A씨에 창구 직원은 자료를 요구해온다. 화장실 몰카 피해자인데, 증거를 가져가야 하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다'였다.


내 몸이지만, 내 사진이지만,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포털사이트를 도배하는 기사들은 연일 불법 촬영 문제를 조명하고 있지만, 자극적일 뿐 정작 피해자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해결책을 이야기해주는 곳은 없었다. A씨는 그렇게 우리와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 A씨는 궁금해했다. 이건 직장 내 성폭력인가요? 디지털 성범죄인가요? 고용노동부에 가도 성희롱 예방교육은 있을지언정 성폭력에 관련된 정보는 없다 하였다. A씨는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 성희롱 예방교육을 도입시키고자 했으나 사측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또 한 번 절망한다.


심신이 무너진 A씨는 한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 하나만 참고 넘어가면 별다른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겠지. 그러면 주목받을 일도 없겠지. 저 사람이야, 수군거림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겠지. 조직사회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아도 되겠지. 회사 대표도, 수사관도, 국선 변호사도, 친구들까지도 모두 내가 참으면 끝날 문제라고 한다면 그 말이 맞는 거겠지. 그녀에겐 용기를 억눌러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많았다. 어느 순간 '저들이 말하는 대로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결국 가본 적 없는 길을 A씨는 내딛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갈 때마다 전부 벽이었고, 벽에 부딪히고 튕겨나가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렇게라도 사례를 하나 만들어야 그다음 사람은 덜 튕겨나가겠지, 라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A씨가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 꺼낸 용기는 똑같은 상황이 누군가에게 벌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실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인생을 걸고 희생해야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니. 치가 떨리게 잔인한 현실이다. 피해자를 둘러싼 지인이, 소속된 집단이, 우리 사회가, 온 힘을 다해 피해사실을 알리고 처벌을 가해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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