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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ul 26. 2021

계곡 가려면 백숙 시키세요


오랜만에 현장에 다녀왔다. 계곡물 따라 양옆에 즐비한 식당가. 식당가에서 내놓은 평상과 파라솔. 파라솔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백숙 닭다리를 뜯는 사람들.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한 그 풍경이 재작년부터 사라졌다. 이재명 도지사가 포클레인까지 동원해 작정하고 철거해온 덕분이다. 자릿세를 받거나 바가지요금을 청구하거나 자연을 훼손해가며 뒷돈을 챙기던 업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포털사이트에 잊을만하면 기사들이 올라왔다. 하나같이 '경기도 계곡, 불법행위 97% 철거...'라는 문구를 달고 있었다. 취재를 나간다고 하니 동료들도 되물었다. 


"그거 다 사라진 거 아니었어?"


아니었다.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인스타그램 피드에 계곡물에 깔린 불법 평상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대부분이 철거되었다고 했는데. 기사를 다시 읽어보니 '하천, 계곡 1601개 업소 불법 시설물 1만 1727개를 적발, 이중 1578개 업소 1만 1693개를 철거'라고 적혀있다. 적발된 업소를 대부분 철거했지만, 적발되지 않은 업소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첩첩산중 꼭꼭 숨어있던 가게들은 무더위와 함께 하나둘 등장했다. 주인도 손님도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계곡에 테이블을 깔고, 백숙을 뜯으며 #세상행복 #여름휴가 #계곡백숙 과 같은 해시태그를 달면서도 어디에 있는 어느 가게인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하필 올여름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건 10시 40분인데, 식당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자치구에선 모두의 계곡이란 이름을 붙여 이것저것 시설물을 많이도 만들어놓았다. 개중에 쓸모 있는 걸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게 함정. 정작 계곡으로 이어진 계단은 진입이 금지되었고, 일부 계단은 식당 안에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벤치 여섯 개 덩그러니 놓아둔 채 햇빛 가림막 하나 없는 공간엔 모두의 쉼터라는 입간판이 서있었다. 계곡가엔 파란 스프레이로 간격을 벌려 돗자리 깔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정작 해가 뜨거운 시간대엔 직사광선이 닿는 곳으로 가려줄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이었다. 텐트 설치는 금지되어있다 보니 행락객들은 그 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도로변 식당가가 붐비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웃돈 얹어주면 물가에서 시원하게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 '계곡 보며 백숙' 현수막을 걸어둔 가게. 들어가 힐끔거리니 대뜸 다가와 기다렸다는 듯 파라솔과 테이블을 깔아준다. 만원을 주면 선풍기를 두 시간 빌려준다. 특수를 노리는 바가지요금에도 사람들은 순순히 지갑을 열었다.  


정말 모두의 계곡이 된 걸까. 계곡 상류지점부터 찾았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바위에 걸친 자리. 수백 명을 수용하는 대형 식당이 있었다. 나름 백숙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바위 사이로 듬성듬성 테이블을 깔아놓으니 산 전체가 거대한 식당인셈이다. 직원들이 커버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보니 방역수칙도, 흡연도, 주차도, 쓰레기도 뒷전이었다. 


"여기 적힌 번호로 전화로 주문하시면 돼요. 테이블 번호 말씀하시면 되고요." 


직원이 건네주는 메뉴판을 들고 한산한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굳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여부를 가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폭포수가 쏟아지는 지점 양 옆으로 들어선 평상들. 그 평상을 지탱하는 단단한 봉. 깊숙하고 단단하게 박힌 봉들 사이사이 떨어진 마스크와 술병, 페트병과 같은 각종 쓰레기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이 97번이었으니 적어도 100개의 테이블이 폭포수를 둘러싸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고기를 구워 먹고 백숙을 뜯다가 내키면 계곡에 내려가는 식이었다. 술을 마시다가도 담배를 태우다가도 내키면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니 마스크는 안중에도 없었다. 세 명이라 점심은 상관없겠지만, 촬영은 여섯 시까지 마쳐야겠다. 저녁은 같이 못 먹겠네, 3인 이상 집합 금지를 신경 쓴 건 아마도 우리뿐이었던 것 같다.


물총 들고 뛰어다니는 어린이 옆에서 뻐끔뻐끔 담배연기를 뿜어내던 남성. 다이빙하는 남성과 시비가 붙어 한참을 노려보다 결국 폭행한 끝에 경찰을 소환시켰던 남성. 보란 듯이 폭포수가 떨어지는 지점에 오손도손 모여있던 여덟 명의 행락객들. 한 명씩 따로따로 입장하더니만 어느새 6명이 되어버린 옆 테이블. 한참의 기다림 끝에 화장실 문이 열렸고, 마스크 없이 비틀거리며 나온 여성. 여성이 나간 자리 진동하던 술냄새. 계곡 안에 다닥다닥 붙어 물장난을 치던 단체 손님들. 식당들의 불법행위를 취재하러 간 건데, 행락객들의 천태만상에 진이 빠졌다. 


촬영분이 모자라 다음날 또 나가게 되었다. 아침밥을 먹으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어제 계곡 갔다가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생겨버렸다. 이 시국에 계곡에 그리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 투덜거렸다. 같이 맞장구치며 욕해줄 줄 알았던 아버지가, 엄마가, 웃는다. 


"사람들이 많이 더웠나 보다. 얼마나 답답했겠어. 우리나라에 탁족 문화가 있잖아.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여름을 나는 우리 고유의 문화. 그 정서가 어디 가겠어.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봐."



둘째 날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다. 조금 무겁고, 힘들고, 불편해도 집에서 먹거리며 놀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온 사람들이었다. 뙤약볕 아래 파라솔과 돗자리, 아이스박스를 메고 일렬로 걸어가는 모습은 고행길 걷는 수행자만큼이나 경건해 보였다. 편하게 식당을 이용해도 될 법한데, 하나하나 다 챙겨 온 짐을 또 하나하나 다 풀어서 아이 손에 쥐어주고, 반려견 입에 물려준다. 철두철미하게 법의 선을 지켜가며 여름을 나는 사람들이었다. 소박하다 못해 애잔하다시피 했던 그들의 모습을 보니 계곡을 사유화하고 있는 식당들에 대한 분노가 한 움큼 더 올라왔다. 계곡 가려면 식사는 해야 한다던가. 계곡 자리 주는 거니 닭 한 마리에 8만 원을 내라던가. 삼겹살 200g에 2만 원을 받는다던가. 선심이라도 쓰듯 백숙 주문하면 계곡에서 다섯 시간 놀게 해 준다던가. 


사실 누구 하나의 잘못은 아니다. 불법을 자행하는 식당들이 저리도 대규모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긴 세월 묵인해온 지자체가 한몫했을 것이다. 찾아가는 행락객이 없었다면 식당 역시 성업하진 않았을 것. 그러니 업소들의 불법행위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계곡이 사유화되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는 시민들을 더 조명하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고, 그런 그들과 현장에서 조우할 때마다 안도했고, 위로받았다. 가장 놀랐던 건 가장 억울해할 것 같았던 그들이 가장 너그러운 목소리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고질적인 식당들의 불법행위에 공감했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면서도 분노가 아닌 아쉬움을 드러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다짜고짜 화를 내는 식당 사장님이나 행락객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지킬 건 지키는 마음에서 나오는 여유였다. 어쩌면 내게 가장 필요한 시선일 것이다. 막무가내인 사람들을 욕하는 건 쉽지만, 애정하는 건 어렵고, 나의 몫은 앞으로도 애정하는 쪽에 있어야 할 거란 걸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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