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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Aug 02. 2021

'백신 효도'는 온데간데 없고

광클하며 '백신 효도'하겠다는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우리 가족 중 가장 먼저 백신을 맞았다. 부모님이 접종대상자였던 시기에 두 분 모두 일정이 여의치 않았고, 결과적으로 미뤄진 탓이었다. 잔여백신으로 운 좋게 접종에 성공했다. 부모님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이따금씩 접종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쳤고, 그래서 더욱 보란 듯이 접종을 한 것도 이유였다. 사회활동이 가장 많은 사람이 나였고, 일 년 반째 집콕 생활을 이어오는 부모님한테 가장 큰 전염원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한 달이 지나고 부모님이 동시에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배웅했다. 마침 지인이 일하고 있는 병원이라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티를 내진 않지만, 은근히 불안한 기색이라 네가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지인에게 언질을 주었다. 지인은 걱정 말라며 맞기 전에 대기할 때부터 시시각각 내게 보고해왔다. '지금 대기 중', '지금 접종 끝남', '이제 마치고 귀가하심'.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나갈 땐 두 분이서 사이좋게 나갔는데, 돌아온 건 아버지뿐이었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아버지는 잔뜩 심통이 나있었다. 차 안에서 두 분이 싸우기라도 했나 슬쩍 눈치를 보다 물었다. "엄마는?"


자초지종 들어보니 엄마는 돌아오는 길 차를 끌고 혼자 명상을 하러 간다 했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두 분은 말다툼이 있었던 모양이다. 홧김에 하는 말인지, 아버지는 "나도 오늘 익산에 내려갈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익산은 지난 몇 달간 아버지가 출장을 다녔던 촬영 현장이다.


참고 있던 분노가 올라왔다. 구구절절 속에 있던 말을 뱉어냈다. 접종 후 집에서 휴식을 취하라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건 국가와 나의 약속이기도 하다. 나는 괜찮을 거고, 건강하고, 아무런 탈도 없을 거라는 자신감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내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가족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왜 걱정을 끼쳐서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느냐.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만 분의 1인 확률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때론 나 자신의 욕구보다 같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살펴야 될 때도 있는 거다. 30대인 나도 접종하고 당일은 집에서 쉬었는데, 뭘 믿고 외출을 하겠다는 것이냐.


아버지에게는 물론 운전하고 있을 엄마한테도 전화를 걸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못난 모습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약을 사두려고 주말 내내 약국을 찾아다녔던 것도,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려달라며 지인에게 부탁했던 나의 성의가 깡끄리 뭉개져버린 기분이었다.


사실 알고 있다. 가장 큰 휴식은 스스로의 마음이 편한 상태라는 것을. 크게 무리를 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당신들의 몸은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맞다. 명상을 하는 게 편안하다면 그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휴식일 것이고, 익산에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면 익산이 휴식처가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불편했던 건 나에 대한 배려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내 욕심에서 나온 것임을 안다. 그것은 부모님 앞에서 큰 소리를 내 가며 왈가왈부할 것도, 대낮에 눈이 시뻘게질 정도로 울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밤늦게 돌아다니는 자녀가 걱정되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느낌일런지. 마음처럼 움직여주었으면 좋겠을 자녀가 막무가내로 행동하면 이런 느낌일런지. 머리로는 믿어주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면서 정작 감정이 따라주지 않아 절제가 힘들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루 종일 되뇌었다.


넋두리를 듣던 친구가 한 마디 한다.


"엄마 아빠도 가끔 자식 말을 안 들으시는 것 같아. 컨디션이 떨어지셨다면 막 무리하진 않으실 테니 일단 마음을 놓고 있어 봐. 대신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떨어지면 바로 쉬고 너한테 연락하시라고 해놓고. 2차면 좀 쉬시는 게 좋을 텐데."


"음... 1차야. 내가 너무 나선 건가."


"아, 1차야? ㅋㅋㅋ 1차도 쉬어야 하지. 당장 안 아파도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하니까. 2차는 꼭 나는 왕자다, 공주다, 라는 마음으로 신체 활동하시라고 해 드려."


그렇다. 조금 더 예쁜 표현이 얼마든지 있었는데, 라는 후회가 이제야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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