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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Aug 09. 2021

계곡에서 목욕하던 사람들

법과 상식 그 사이

"얼굴도 X같이 생긴 게. 쓰레기 찍을 시간에 주워. 환경 어쩌고 하는 새끼들이 제일 꼴불견이야."


라는 험악한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핫스팟'에 떠내려가는 과자 봉지를 찍고 있었다. '핫스팟'이란 사람들이 머리를 감고, 양치하고, 설거지를 하는 곳. 강원도 영월군 치악산 서쪽 자락, 1급수 계곡물이다.



처음 제보한 건 마을 주민이었다.


"여름만 되면 사람들이 그렇게 놀러 와요. 놀러 오는 건 좋은데 텐트를 치고, 빨래를 하고, 머리를 감아요.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떠난 자리 가보면 닭을 시켜먹고 닭뼈를 양파망 있죠? 거기다가 넣고 계곡 안에 담가 두고 갔더라고요."


계곡 내 불법행위를 취재하겠다 했을 때 선배가 의아한 듯 물었다. 계곡에서 빨래를 한다고? 그걸 잡을 수 있을까? 우리도 내심 걱정은 했지만, 기우였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계곡에 도착하자마자 라면 냄새가 났다. 여기저기 삼겹살 기름 냄새도 진동했다. 소시지며 김치며 온갖 것들을 구워낸다. 버터를 프라이팬에 달궈 버터구이 오징어를 완성시킨다. 지글지글 끓는 버터 속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오징어를 물가에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건넨다. 기름 질질 흐르는 손가락으로 아이들은 튜브를 만지고 손을 씻어낸다. 바위 사이로 먹다 버린 바나나 껍질이, 타다만 소시지가, 굴러다녔다.


나뭇가지를 꺾고 가지 사이사이를 로프로 묶어 임시 차양막을 설치한다. 차양막 아래로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다. 불을 내뿜는 토치 소리는 본격적인 식사 준비를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취사 및 야영 금지 현수막은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한 글자씩 가려진다. 젖은 옷가지며 돗자리를 넣어놓기 때문이다. 수영복을 널던 남성은 저 글자를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사전답사 겸 계곡 아래까지 내려가 보기로 했다. 바지 한 장 달랑 걸친 남성이 바가지를 안고 계곡으로 들어간다. 바지 밑단을 걷어 올린다. 왼발을 착, 바위에 착지시켜 자세를 잡고는 설거지를 시작한다. 바가지엔 스텐 냄비며 젓가락이며 고기를 구워 먹어 새카맣게 탄 철판이 수북이 쌓여있다. 수세미에 거품을 내 벅벅 닦아낸다. 거품 가득한 바가지가 계곡물에 담궈졌다 나올 때마다 계곡물도 점차 뿌예져 갔다. 빨랫감을 들고 내려오는 또 다른 남성. 바위를 빨래판 삼아 옷가지를 벅벅 문질러댄다. 빨래하는 남성이 팔에 힘을 줄 때마다 흰 거품이 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바위마다 비누며 퐁퐁이며 때수건이 널브러진 풍경. 90년대인가. 혼란스럽다. 여기 계곡인데, 설거지해도 돼요? 남성에게 물었다.


"이거, 친환경 세제야. 거품이 별로 안 나와."

(여기 거품 가득한데...)

"물이 안 좋아서 그래. 상태가 안 좋은 거야 물이."

(선생님이 씻으셔서 더 안 좋아진...)

"다른 사람들은 세수도 하고 목욕도 하는데 난 물에서 목욕 안 하잖아."


생각보다 당당했다.


계곡 초입에 대문짝만 한 현수막이 붙어있다. 운전자의 시선이 닿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보지 못했다면 전방주시를 안 했다는 뜻이다. 계곡은 취사와 야영이 금지된 곳. 산림청과 영월군청이 관리한다는 것.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 도로가 좁으니 갓길 주차를 지양해달라는 것. 굳이 써붙이지 않아도 알 법한 말들이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가 곳곳에 스무 번 넘게 등장한다. 텐트를 설치하고, 요리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몰랐어요. 알았으면 안 왔죠."

"그게 어디 쓰여있어요?"

"못 봤어요."


취사도구를 치우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딱 한 팀이 그랬다. 대부분은 개의치 않아했다. 차량 뒤에 숨어있다가 슬그머니 원위치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잠깐 점심 먹고 돌아와 보니 비었던 자리로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와 있었다. 버너와 부르스타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LP가스를 가져왔다. 백숙을 삶던 그 일행은 부부 두 쌍과 자녀들이었다. 부모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불법인지 몰랐어요, 그냥 안 먹고 갈게요." 냄비며 식재료며 차량으로 옮기는가 싶었는데 불과 한 시간만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닭다리를 뜯고 있다. 불법은 눈치껏 피해 가면 된단다,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주는 셈이다.  



뻔뻔함을 목격할 때마다 코로나와 무더위, 집콕 생활, 생활고. 이곳을 찾은 이들이 겪고 있을 악조건을 하나하나 곱씹어봤다. 오죽했으면 저럴까. 오죽 답답했으면 이 멀리까지 왔을까. 불법이란 이유만으로 사람을 미워하고 싶진 않았다. 취재하러 갔던 우리 역시 어렸을 적 가족들과 계곡에서 라면 한 번쯤은 끓여먹어본 사람들이다. 저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 시절엔 가능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안 돼, 라는 논리로 모처럼 휴가 나온 이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와이어리스를 들고 다가가는 일은 언제나 달갑지 않다. 그럼에도 많고 많은 계곡 중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취재를 하냐며 핀잔을 주던 남성 앞에선 할 말을 잃었다. 남들 다 하는데 재수없게 나만 걸렸다며 투덜대는 남성 앞에서도 할 말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계곡을 찾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골.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모닥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텐트에 달린 조명들이 유독 환하게 빛나는 밤. 고기 파티는 이어지고 있었다. 캄캄해서 앞도 안 보이는 그 어둠 속에서도 꾸역꾸역 계곡에 발을 담그고 라면을 먹는 이들. 타고 남은 잿더미 주변엔 소주병이 나뒹굴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를 다들 준수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8인 가족, 12인 가족, 15인 가족이란 뜻이다. 그래도 주간엔 눈치가 보였는데 따로따로 앉더니만, 밤이 되니 있던 염치도 사라졌다. 캠프파이어가 한창이다. 화력이 꽤 좋아 보이는 한 일행에 물었다. 번개탄을 어디서 파는지, 얼마에 살 수 있는지, 단속은 안 나온다는 것까지 친히 일러준다. 단속이 안 나오니까 범법자가 되겠다는 고백을 저리도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기대했던 약간의 멋쩍음과 조금의 눈치는 우리들의 몫이었다.



다음날 조금 이른 시간에 계곡을 찾았다. 전날 먹고 마신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해장할 시간이다. 일곱 시 조금 넘은 시각, 텐트 곳곳이 분주했다. 식기를 씻고, 부르스타에 올리고, 라면을 끓인다. 숲 속에 휙, 계곡가에 휙, 던지는 일부 행락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종량제 봉투를 챙겨 온 듯했다. 일반쓰레기봉투인데, 먹고 남은 김치며 타다 남은 소시지며 담배꽁초와 술병, 약봉지, 통조림까지 모두가 한데 모였다. 봉투는 가져왔지만, 다시 가져가진 않는다. 주차했던 차량들이 떠난 자리엔 입 벌린 봉투들만 고스란히 남았다. 경기도 군포시, 경북 구미, 서울 강서구. 전국에서 모인 쓰레기봉투들의 향연. 뙤약볕이 내리쬐는 자갈밭 위로 파리들이 들끓는다.


수풀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휙 던진 쓰레기를 찾아 헤매다 똥을 밟았다. 누군가 전날밤, 화장실까지 가기 귀찮아 실례를 해둔 모양이었다. 크기가 컸고, 흙과 색이 비슷했기에 똥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질퍽한 감촉과 동시에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한 번 맡은 냄새라 그런지 그 후로도 기가 막히게 찾아낼 수 있었다. 물티슈로 덮어준 사람들도 있다. 나름의 배려인 것인지, 감탄해야하는 대목인 것인지, 헷갈렸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돌고 돌아 다시 오게 된 '핫스팟'이었다. 분명 아침이니 누군가는 머리를 감거나 빨래를 할 것 같았다. 하룻밤 사이 '핫스팟'은 꽤나 지저분한 웅덩이가 되어있었다. 과자 껍데기가 둥둥 떠다니고, 누군가 잡아놓은 다슬기들은 망에 갇힌 채 둥둥 떠다녔다. 그때였다. 쓰레기를 촬영하던 동료에게, 그런 그를 바라보던 우리에게 한 남성이 다가와 시비조로 물었다. 마스크도 안 낀 채 술이 올라 얼굴이 시뻘게진 그 남성은 다짜고짜 고성을 질렀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이 안 되는 거야.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좋은 쪽으로 해야지. 얼굴도 X같이 생긴 게. 쓰레기 찍을 시간에 주워. 환경 어쩌고 하는 새끼들이 제일 꼴불견이야."


그저 그는 술에 취해있을 뿐이었고, 누군가 시비를 걸 사람이 필요했고, 그저 상투적인 욕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피서지에선 흔한 일일 수도 있고, 현장에선 종종 벌어지는 헤프닝이다. 회사 이름 걸고 나왔으니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예, 웃으며 참는 동료에게 끝까지 따라붙어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던 남성. 한동안 사무실에서 주고받을 에피소드 하나 만들고 온 셈이다.


돌아온 지금도 살짝 의문은 남는다. 계곡에서의 취사가, 야영이, 법을 운운해야 하는 일이었던가. 쓰레기를 버려도 된다는 법이 있다면 정말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고 살 것인가.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할 거야, 라는 심리는 왜 이럴 때만 허용되는 것인지.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해가며 분리수거를 하기도, 집에서 음식을 싸오기도, 화장실까지 먼 길을 걸어가기도 하는 '남'들 역시 많다. 취사가 안 된다며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남들'도 있다. 후진 기어 몇 번 더 바꿔서 다른 차에 피해가지 않게 주차를 하는 '남들'도 있다. 자연을 오염시키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불법이 아닌 상식의 영역이 아닐지.


자연 그대로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이들에게도 가 닿길 바란다. 온전히 그 모습을 느낀다면 아마도 수풀 냄새를 가로막는 기름 내음이, 깔끔한 도로변에 놓인 쓰레기들이, 물소리를 막아서는 블루투스의 소음이, 사실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전해질 것이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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