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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Aug 19. 2021

제주공항에 등장한 파란색 지도

제주공항 1층 4번 게이트 앞에 파란 종이지도가 놓여있다. 맛집부터 숙박까지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요즘 세상에? 싶은데, 하루 평균 꼬박 16명이 찾는 지도란다. 지도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2,30대 여행객이다.


그들은 지도에 찍혀있는 카페를 찾아다닌다. 섬을 크게 한 바퀴 빙 두른 해안가 동선 따라 푸른 컵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다. 카페 좌표다. 성산일출봉이 있는 동쪽으로 가면 3곳, 김녕의 모래사장이 펼쳐진 북동쪽에 7곳, 정방폭포가 쏟아지는 남쪽은 5곳, 송악산이 있는 서남쪽은 10곳이다. 백사장이 눈부신 협재 해수욕장 인근에만 6곳, 제주공항 주변엔 무려 13곳의 카페가 있다. 제주 어디를 간다 한들 지도에 나온 카페 한 두 군데는 동선에 포함될 거란 뜻이다.  



지도를 가진 자에겐 푸른 컵이 쥐어진다. 이 컵을 가져가면 여행 내내 10% 할인된 가격으로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맛있는 디저트도 공짜로 받는다. 크림이 들어간 음료를 마셔 컵이 지저분해져도 괜찮다. 세척은 덤이다. 돌아가는 날 카페나 공항에반납하면서 맡겨둔 만 오천 원을 되찾는다.  


내가 가고 싶은 카페가 지도엔 없다는 단점이 있다. 제주에 머무는 내내 컵을 챙겨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있다. 시간이 지나도 짱짱하게 얼음이 남아있다는 소박한 장점도 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뿌듯해한다. 비록 나 한 사람이지만, 일회용 컵 사용을 줄였다!며 말이다. 여행 내내 따라다녔을 번거로움도 반납할 때쯤이면 잊히는 모양이다. 푸른 컵을 이용해본 사람 가운데 98%가 '다시 사용하겠다'고 답했단다. 열 명 중 여덟 명은 '보람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일회용 컵 제공이 불가합니다."

"네?"


지난 7월, 제주 스타벅스가 선언했다. 4군데 지점에서 앞으로 영원히 일회용 컵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줄이는 것도 아니고 없애버리다니. 파격적인 시도였다. 음료를 주문하면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질문을 듣는다. "일회용 컵 제공이 안 되는데요. 리유저블 컵(다회용 컵) 이용하시겠습니까?" 보증금은 1천 원. 다 마신 컵은 해당 매장이나 제주공항에 비치된 반납기에 반납하는 식이다.


고객들은 당황한다.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하는 고객이라면 반감은 배가 되기도 한다. 몸만큼은 가볍게 다니고 싶은 여행객들이다. 일정 내내 달고 다녀야 하는 다회용 컵은 짐이 될 수 있다. 차량으로 이동한다 한들 원치 않는 컵이 생겨 달가울 사람은 없다. 컵은 어디에 반납해야 하는지 묻고 찾아야 하는 일도 번거롭다. 그럼에도 스타벅스는 오는 10월까지 제주지역 전 매장으로 다회용 컵 제도를 확대하겠다며 나섰다.


나 역시 휴가 기간 제주도에 머물렀을 때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다녔다. 그와중에 제주 한정판인 쑥 프라푸치노가 맛있다길래 스타벅스를 들렀다. 하얀 생크림을 듬뿍 얹어주는데 텀블러에 담기엔 살짝 부담스러운 비주얼이었다. 여행자 입장에서 공중화장실이나 건물 화장실을 찾아다니며 미끄덩거리는 크림을 씻어낸다는 건 번거로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오매불망 기대했던 쑥 프라푸치노는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맛이었지만, 두 번 먹을 맛은 아니었기에 일주일 동안 내가 쓴 일회용 컵은 한 개로 마무리되었다.


컵 한 번 씻기 번거로워서 일회용 컵을 선택하고 만다. 하지만 번거로움이 극에 달할 사람들은 고객이 아닌 카페 업소일 것이다. 손님이 가져온 텀블러를 깨끗하게 씻어 음료를 담아주어야 한다. 손이 두 번 간다. 반납되는 컵을 잘 모아놨다가 회수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한 번 쓰고 버리면 땡인데.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한데. 그들은 왜 그런 수고를 하는 걸까.


"관광지라 이미지 나빠질까 봐 말도 못 해요."


한 해 제주에서 버려지는 일회용 컵은 6300만개*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이 숫자는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일회용 컵으로 둘러싸인 제주의 몸부림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1500만 명대로 진입한 관광객들은 제주에 무엇을 남기고 올까?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진도 제주를 찾았다.


광복절 연휴였다. 코로나와 쓰레기, 고성방가로 폐장한 이호테우 해수욕장. 이호테우가 폐장되니 사람들이 몰려들어 또 다시 폐장의 수순을 밟은 함덕해수욕장. 사람은 더 늘었다. 해변에 들어가진 않는다. 해안가 따라 길게 이어진 제방에 모여든다. 술판을 벌인다. 제방 음주는 불법이 아닌지라 제재를 가할 방법도 없다. 다닥다닥 붙어 술을 마신다. 틀어놓은 노래와 취기에 절은 고성방가는 덤이다. 밤새도록 타닥타닥 퐁퐁 피융 끊임없이 굉음을 내며 터지는 폭죽 소리를 주민들은 매일밤 듣고 산다. 주민의 안위는 안중에 없다. 대신 남기는 건 있다. 쓰레기다. 먹다 남은 맥주 페트병, 술이 반쯤 들어있는 소주,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이 흥건한 일회용 컵, 바위틈에 쑤셔 넣은 플라스틱 용기, 파리가 들끓는 음료컵. 그들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다음날 주민들이 거둬주길 기다릴뿐이다.


날이 밝아오면 사람들이 하나둘 나온다. 어느 정도의 보수를 받고 청소를 하러 나오는 마을 주민들이다. 한 명이라도 일회용 컵을 깨끗하게 버리는 사람이 있을까. 분리수거를 할까. 라벨을 떼고 버리는 사람이 있을까. 일상에선 당연한 상식이 관광지에서는 이유를 물어야 하는 질문이 된다. 주민들이 답했다.


"제대로 버리는 분은 거의 없죠. 말씀드리면 관광지인데 왜 아무렇게나 버리면 안 되냐고 뭐라 하세요."


관광지인데 왜 분리수거를 해야 하냐고 되레 묻는단다. 우문에 답할 말이 없어 그냥 쓰레기를 받아버린단다. 청소하다 잠깐 눈을 돌린 사이 쓰레기 봉투를 슬그머니 놓고 가는 건 기본이다. 여름이 되면 바다를 찾는 관광객들은 저마다 손에 음료 하나씩 들고 다닌다. 손에 들린 일회용 컵 가운데 재활용되는 건 단 5%다.


관광객들이 떠난 자리, 플라스틱은 그대로 남아있다. 고스란히 제주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그토록 찾는, 늘상 그리워하는, 사랑해 마지않는 섬에 우리는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걸까. 아마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 같다.




*매년 관광객이 버리고 가는 일회용 컵(추정치) 6300개, 제주도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양 5만 5000t (출처:제주환경운동연합,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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