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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Aug 24. 2021

새벽 5시, 방역복 입고 나타난 남자

1. 고요함이 감도는 새벽 다섯 시. 인천공항은 분주하다. 유리창 너머 입국장에 방역복 차림의 직원들이 뛰어다닌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피곤함에 절은 얼굴을 한 입국자들이 카트를 끌고 나온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두리번거리는 찰나 군인이 다가온다.   


"어디로 가시나요?"


KTX를 이용해야 한다면 당신은 6770번 버스를 타러 가야 한다. 해외 입국자들을 광명역까지 수송하는 버스다. 지난해 3월부터 기존 공항리무진 버스를 해외 입국자 수송 버스로 바꾸었다. 주말이 가장 붐빈다.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에 352명이 들어왔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입국자 수는 배를 넘어선다. 지난 8월 21일 기준,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639명, 오후 4시부터 5시 사이에 834명이 입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항 예상 혼잡도 8월 21일 자)


비행기는 새벽 4시부터 착륙하기 시작한다. 첫차는 6시 40분에야 있다. 진작에 도착했다면 공항 벤치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버스를 타러 간다. 선착순 탑승이니 배차 간격도 무색하다. 예상보다 승객 수가 많으면 다음 차를 빨리 출발시킬 수밖에 없다. 입국자들은 입국장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버스 타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군인들에 둘러싸여 철저하게 격리된 상태로 이동한다. 해외 입국자가 갈 수 있는 화장실도 매점도 나뉘어있다 보니 잠깐 볼일 보러 자리를 비웠다간 버스를 놓치기 십상이다.



2. 버스 한 대가 태울 수 있는 인원은 27명이다. 꽉꽉 채워서 27석인 셈이다. 이곳에선 거리두기가 별 의미 없다. 나도 해외 입국자이지만, 저 사람도 해외 입국자다. 서로 불안한 건 마찬가지니 다닥다닥 붙어가야 할 운행 시간 90분이 달가울 리 없다. 취재진이 찾았던 날, 버스에 탑승한 한 승객이 기사에게 항의를 해왔다.


"자리를 비우고 태워야 한다면서 오늘 만석 아니에요?"

"손님이 많아서 저희가 어쩔 수 없어요, 그건."

"어쩔 수 없다고 하면 안 되죠."


정말 어쩔 수 없다. 버스 안 거리두기 지침 사항으로 딱히 내려온 게 없으니 기사도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따금 옆자리에 가방을 떡하니 놓아두곤 눈을 감아버리는 승객이 있다. 사람을 앉히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별수 없이 그 자리를 제외하고 승객을 앉힌다. 순번에 밀려 버스에 타지 못한 승객은 또다시 항의해온다.  


3. 6770번 버스 기사 허영민 (가명) 씨의 하루는 오전 4시에 시작된다. 그마저도 집에서 나오는 시각이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방역복으로 갈아입는다. 해외 입국자를 수십 명씩 태우고 다녀야 하는데, 운전석과 좌석 사이 가림막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비닐과 테이프를 있는 대로 꼼꼼하게 붙여 임시 가림막을 만들었다. 소용이 없었다. 얼마 후 회사에서 가림막을 설치해주었다. 옆이 뻥 뚫려있는 투명 플라스틱이었다.


비 오는 날은 안경이 거추장스럽다. 습기가 차올라 시야를 가린다. 차내 환기가 안 되니 습기가 가실 줄 모른다. 비말 마스크를 쓰고 그 위에 KF94를 한 장 더 쓴다. 빈틈없이 몸뚱아리를 꽁꽁 싸매어 본다. 얼마 전 동료 운전기사 가운데 확진자가 나왔다. 종종 버스에 탔던 승객 가운데 확진자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는다. 문자가 날아오면 해당 버스를 운행한 기사는 물론 동료들까지 그날은 집에 가지 못한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동차에서 쪽잠을 자며 기다리는 식이다.  


시내버스도 광역버스도 마찬가지다. 버스에 탑승하면 안전벨트를 하시라, 마스크를 쓰시라, 취식을 하지 마시라, 안내해온다. 외국인 입국자들이 비교적 많다 보니 허 씨는 일일이 돌아다니며 주의를 준다. 온갖 바디랭귀지를 섞어 전달해본다. 허나 버스가 출발하고 고속도로에 들어선 뒤 차내 조명이 꺼지면 승객들은 어둠 속에서 야금야금 밥이며 간식거리를 먹는다. 은근슬쩍 마스크를 코 아래로 내리고 통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운전하면서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마이크를 들고 주의를 줄 뿐. 중간에 차를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백미러로 볼 땐 다들 멀쩡하게 앉아있는데, 승객이 내린 자리를 청소하다 보면 꼭 바닥에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다. 음료를 가지고 탔던 승객에게 광명역에 도착해서 드시라 신신당부를 해도 떠난 자리엔 먹고 난 일회용 컵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렇게 한 차례 운행을 끝내면 속옷까지 흠뻑 젖는다. 버스 유리창 와이퍼에 방역복을 걸어 말린다. 기사들이 갈 수 있는 공용 휴게실이 있지만, 다들 입국자를 태우는 처지이다 보니 선뜻 한 공간에 머물 엄두를 못 낸다. 한 차례 소독하고 난 휴차에 들어가 휴식을 가지는 게 전부다.


"요가 매트 있죠? 요가 매트로 여기 바닥에 해가지고 누워있어요. 불안하지만 이렇게 있는 게 나아요. 어디 가서 쉴만한 데는 없고.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쉬고는 있다는 거죠."


4. 허영민 씨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운전원은 서른 명 남짓. 백신 우선접종대상자에선 제외됐다. 인천 시청에 전화하니 허영민 씨에게 돌아온 답변은 "코레일에 문의하라."였다. 코레일에 확인하니 "위탁을 하였으니 알아서 하라."는 답변을 듣는다. 자회사이기 때문이다. 자회사에 재차 문의했을 땐 "명단을 제출했으니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저희는 그걸 모르잖아요? 그냥 붕 뜨고 그냥 운전만 하고 다니는 거밖에 안 되는 거죠. 일만 하고 다니는 거죠."


그렇게 그가 하루하루 일해온지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나고 있다. 아직도 절반 넘게 백신을 맞지 못했다. 해외 입국자들과 공항 이용객들이, 공항 바깥의 시민들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었던 건 이분들이 방역 최전선에 서 있어준 덕분이다. 정작 그들의 안전은 누가 지켜주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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