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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Sep 14. 2021

그가 야쿠자를 쫓아다닌 이유

이일하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일본 혐한시위를 취재하면서였다. 국내 매체에서 다룬 대부분의 영상들은 표면적인 현상을 보여줄 뿐 그 속을 깊게 파고들진 못했고, 대부분은 보도물로 소비됐다. 갈증을 느낄 때 즈음 그가 만든 <카운터스>를 보게 되었다.


일본 도심 곳곳에선 주말마다 혐한시위가 열린다. 아주 오래전부터 극우들은 틈만 나면 재일교포들이 모여 사는 도쿄 신오쿠보, 오사카 츠루하시의 골목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교포 아이들이 공부하는 조선학교 앞에 확성기를 들고 찾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소규모였다. 어느 순간 '혐한'이라는 프레임이 등장하면서 규모가 커진 극우단체의 혐한시위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건 2013년 2월 즈음부터였다.


구글에 우익단체인 재특회(재일교포의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모임)와 혐한, 두 단어를 검색하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시위 스케줄을 볼 수 있다. 유학시절엔 안 보면 그만인 그 모습을 취재차 찾았을 땐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우익들의 진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현장. 손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일본 특유의 친절함 그리고 상냥함과는 상반되는 모습. 시뻘건 욱일기를 흔들며 수십 명, 수백 명이 거리를 활보하는 광경을 맨 정신에 두 눈 뜨고 바라보는 건 고욕이었다.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바글거리는 신주쿠 일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자체가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들은 반(反) 시위대가 눈에 띌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욕설을 퍼부었고, 광분하면 발길질도 서슴지 않았다. 70년간 재일조선인들을 핍박해온 우익의 진짜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그 잔혹한 길가 한편에 카운터스가 있다. 카운터란 혐오 스피치에 반대하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언뜻 한국에 우호적인 사람들인가 싶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은 그저 약자를 향한 혐오발언이 존재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국에 대한 반감도 호감도 없다. 그냥 일본 사회의 평범한 시민들이다.


시위대 맨 앞줄엔 늘 우익단체 대표가 서있다. 대표를 둘러싼 관계자들은 돌아가며 마이크를 부여잡는다. '조선인을 추방하자'라던가 '더러운 조센징'이라는 구호를 내뱉는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데시벨을 키운다. '코리아타운을 말살하자', '거리에서 한국 여자를 보면 강간해도 괜찮다'며 외친다. 뒤따라가는 이들은 일장기와 욱일기를 흔들어댄다. 이따금씩 돌림노래처럼 구호를 외치며 도심 일대를 걸어 다닌다.


카운터들은 그런 우익단체와 온몸으로 맞서는 사람들이다. 과격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스피커를 통해 혐오발언이 흘러나올 때마다 카운터스는 피켓을 흔들며 '혐오 발언을 멈추라'며 소리친다. 우익들은 아랑곳 않는다. 대부분은 비웃는 표정이고, 때때로 약을 올리거나 빈정거리는 멘트로 되받아친다. 둘의 사이엔 경찰이 인간 차벽을 만들어 함께 걸어 나간다. 집회 신고자가 우익단체이니 기본적으로 우익단체를 포위하는 형태다. 자연스럽게도 카운터스에겐 우호적이지 않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극우와 카운터 사이에 고성이 오가거나 몸싸움이 생기면 경찰은 마치 아주 가벼운 지푸라기를 들어 올리듯 카운터를 살짝 들어 인도로 던져버린다. 도로 허가는 우익단체에 내주었으니 카운터는 들어올 수 없다는 뜻이겠다. 우익단체가 걸어갈 동선에 카운터스가 먼저 달려가 드러누웠을 때 경찰은 드러누운 이들의 면전에 확성기를 들이밀었다.


"도로에서 앉거나 눕는 행위는 도로교통법 제76조 위반입니다. 빨리 이동해주세요."


이 나라의 공권력이 누구를 보호하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 마음이 저릿했던 순간이었다.


경찰에 떠밀리면서도 카운터들은 손에 쥔 피켓을 사수해낸다. 피켓엔 '헤이트 스피치를 용서하지 않겠다'던가 'tokyo against racism'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한복 차림의 여성과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손을 맞잡고 있는 그림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렇게 준비성이 철저할까. 도대체 어느 시민단체일까. 결집력의 비결은 뭘까. 시위 현장에서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대항하는 카운터들을 붙잡고 물었었다. 어떻게 나오신 거예요? 왜 나오게 됐어요? 다들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한테 돌아오니까요. 차별이 만연하는 사회가 되면 그로 인해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생겨나잖아요. 누구도 안전할 수 없게 되죠. 그게 내가 될 수도,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으니까."


"차별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예요. 생명에 우월을 가릴 수 없으니까요."


이들은 대부분 트위터와 같은 SNS를 통해 모인다고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보는 집회 참가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연대를 만들고, 커뮤니티가 생성되어 친분을 쌓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해시태그로 모여들고, 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 하면 해산하는 식이었다. 누구랑 같이 나왔냐는 물음에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카운터들의 표정이 내겐 조금 신선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그야말로 개인과 개인의 모임이었던 카운터스에 한 야쿠자가 등장한다. 오토코 구미(남자 모임)라는 이름으로 조직원을 모집한다. '소중한 사람이 상처를 받게 놔둘 순 없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이방인이 되어 오늘만 사는, 가장 최전선에서 맨몸으로 싸울 수 있는 녀석들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내세운다.


이일하 감독은 오토코 구미를 이끄는 리더 다카하시를 조명한다. 더불어 당시 혐한시위를 이끌던 재특회 대표 사쿠라이 마코토도 화면 앞으로 데려온다. 나 역시 수차례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던 경험이 있다. 후일, 사쿠라이를 어떻게 섭외했냐는 물음에 감독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메일을 한 300통 정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랬더니 답장이 오더라고요."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쿠라이 마코토를 '나쁜 놈'으로 만들긴 쉽지만 그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나쁜 놈으로 만드는 게 훨씬 자극적이고, 재밌고, 명분을 찾기 쉽다. 하지만 뻔뻔하게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에서 감독의 관점을 나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선과 악이 극명한 소재를 다루면서 기획자의 관점이 이처럼 드러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담백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내겐 그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카운터스를 촬영하면서 감독은 로디라는 사진작가를 알게 된다. 로디가 찍은 사진을 구경하던 중 모어가 주인공인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소년으로 태어났지만, 발레리노가 아닌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모어. 발레슈즈를 벗고, 이태원의 클럽 '트랜스'의 무용수로 지내야 했던 모어의 삶. 감독은 모어를 찍고 싶어 수차례 찾아가 읍소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장장 3년에 걸쳐 만든 작품 <모어>가 제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사실 감독으로부터 2년 전쯤 <모어>의 트레일러 영상을 받았었다. 차기작인데, 투자자가 안 모인다며 고민이 가득했다. 얼핏 보니 영상미가 아주 세련된 성소수자 이야기였다. 뻔한 전개일 거란 상상을 해버렸다. 내겐 낯설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존재였다. 편견은 없었지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잘못됐다, 는 목소리를 낼 용기 또한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오만한 추측이었으니 부끄럽다.


야쿠자인 다카하시와 극우 논객 사쿠라이 마코토를 담백하게 담아낸 감독 특유의 시선을 나는 애정 한다. 닮고 싶은 그 시선으로 감독이 담아낸 모어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성소수자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리기엔 영상에 담긴 이야기들이 너무 아깝다. 인간 본연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낸 영화다. 부모, 연인, 친구 하물며 나 자신한테도 하기 어려운 말. 말은 쉬울지언정 마음이 따라가는 건 어려운 말.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미 완벽한 너니까. 존재 자체를 나는 사랑한다.'라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99분의 영상이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일이, 시선에서 너그러워지는 일이, 당연한 게 당연한 일이 가능한 사회이길 바라며. 모어를 저리도 예쁘게 기록해준 감독님께 경의를 표하며. 지구인들에게 두 작품을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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