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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Oct 17. 2021

'침묵'과 '눈치껏'

"후회 따위는 없다"

며 은퇴를 선언했던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 선수가 현역이었던 시절. 메이저리그 시애틀 마리나즈에서 11년 반을 보내고, 뉴욕 양키즈로 이적할 때였습니다. 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이치로가 했던 대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영어로 진행되던 인터뷰라 옆에 통역사를 두고 일본어로 응하던 이치로에게 기자가 질문을 던집니다.


"마리나즈에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를 한 가지 말씀해주신다면?"



"오랫동안 있었던 구단이라서요. 한 가지를 가려낸다는 게 어렵습니다."


하고 약 3초, 정적이 흐른 뒤 이치로가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방금 이 침묵이 대답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この間を察してください)."


직역하면 '이 침묵을 짐작해주세요.'라고 바꿔볼 수 있습니다. 침묵의 의미를 헤아려달라는 뜻이었지요.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치로는 침묵에 어떤 마음을 담았던 걸까요. 당시 통역사도 저 문장은 따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잘 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고, 짧은 시간에 통역하기엔 난해한 뉘앙스라 판단했을 수도 있겠지요. 추측해볼 뿐입니다.

 

롯데 이대호 선수가 2013년, 일본 프로구단 오릭스 버팔로스에 이적할 때도 인상 깊었던 인터뷰가 있었어요. 이대호 선수에겐 친정과도 다름없는 롯데 자이언츠를 떠나 일본 프로야구 진출에 결의를 다짐하는 자리였는데요. 각오를 말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답합니다.



"일본서는 용병이자 신인입니다. 그쪽(오릭스)이 원하는 대로 눈치껏 따라가서 용병이 아닌 가족으로 다가가겠습니다."


짐작해주기 바라는 '침묵'. '눈치껏' 잘하겠다는 다짐. 둘 다 상당히 포괄적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추측해볼 수 있지만, 모호한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두루뭉술하게 느껴지겠지요. 두 사례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란 암묵적인 전제, 기대가 깔려있다는 점이지요.

 

회사 회식 일정이 정해지면 누군가는 바빠집니다. 적당한 장소를 찾고, 예약을 하고, 미리 도착해 요리를 주문하는 총무역할을 하게 되죠.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  언저리에 있는 사람이 맡기도 하고요. 경우에 따라선 신입사원이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요리를 주문해야 괜찮을지, 상사한테 넌지시 물어보면 "적당히 시켜놔. 눈치껏.  물어봐."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상사가 해산물에 알레르기라도 있다면 칠리새우 같은 요리는 피해야겠죠. 매운 걸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면 한 가지 정도는 매콤한 요리를 시켜두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상사를 포함해 회식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큰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요리를 적당한 양으로 주문하는 것. 이게 '눈치껏' 잘하는 일입니다. 상사나 팀원들이 그간 어떤 식으로 회식을 가져왔는지, 과거의 정보가 없다면 상당히 장벽이 높은 과제로 다가오겠죠. 사실, 이미 익숙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매번 고민이 되는 순간입니다.

 

뒤늦게 도착한 상사가 테이블을 한 번 쭉 훑고는 "야, 무슨 음식들이 죄다 빨갛냐?"라고 할 수도 있어요. 매운 양념이 과하게 많다는 소리죠. "요즘 관리 중인데, 손이 가는 게 없네." 온통 기름진 요리를 시켰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눈치껏, 골고루, 잘' 주문했다고 했는데도 아뿔싸 싶어 손에 식은땀이 났던 경험, 저에게도 몇 번 있습니다.

 

절대 콕 집어서 말해주지 않아요. 마리나즈에서 동료들과 함께한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기어이 침묵으로 여운을 남깁니다. '알아서 해석해달라'는 거죠. 열정, 패기, 도전, 승부, 결과, 우승. 각오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얼마나 많습니까. 죄다 재쳐두고 골라낸 단어가 '눈치껏'입니다. 많은 의미를 포용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죠. "양장피 같은 거 하나 시키고 애들 좋아할 칠리 새우 같은 달달한 거. 그 집이 멘보샤가 맛있으니까 몇 개 시켜놔."라는 섬세함은 곧잘 생략됩니다. 생략이 미덕인 문화에 익숙한 것이죠.

 

얼마 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카카오톡으로 아이템을 발제하던 중 저희 팀에서 내민 아이템이 상사의 마음엔 영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보통 마음에 들면 컨펌의 표시로 "ㅇㅋ 진행합시다" "가봅시다"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오거든요. 아리송하다 싶으면 "괜찮겠니?" 질문을 던지거나 "기시감이 있다"던가 "현장 잡기 힘들어 보인다"라는 식으로 문제점을 언급해줍니다. 그런데 그날은 비슷한 아이템으로 진행했던 예전 기사 링크를 하나 보내고는"ㅠㅠ..." 이렇게 달랑 한 줄이 돌아왔어요.

 

"ㅠㅠ..."


선배는 도대체 왜 우는 걸까요. 진행해도 되는데, 기시감이 있으니 차별점을 두라는 뜻일까요. 만들기 힘들겠다는 뜻이 담긴 걱정의 눈물일까요. 이미 나간 아이템인데 왜 또 발제하냐는 채근의 의미일까요.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지만 아무도 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지요. 그저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정확한 뜻은 모르겠으나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 같다며 포기하고 새로운 걸 찾겠다는 동료를 보는데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끊임없는 눈치의 굴레, 끝나지 않는 눈치게임의 연속. 우리네 삶은 눈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란 걸 또 한 번 절감했거든요.


눈치는 때론 추리하는 재미를 주지요. 조금 덜 상처 받는 길이기도 하고요. 모호함이 공백이나 여지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종종 오해의 소지가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면 또다시 아이템을 발제했을 때 "ㅠㅠ..."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민 없이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한 번의 경험이 정보가 되어 새로운 기호가 생겨난 것이죠.


명시적인 커뮤니케이션 그러니까 정확한 표현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왜 저런 말을 했을까, 무슨 뜻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 단서를 찾아야 하는 거죠. '공기를 잘 읽는 게 미덕'인 일본에선 침묵이 의미하는 바로 분위기를 파악합니다. '눈치껏 잘하는 게 미덕'인 우리나라에선 말 그대로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는 것이죠. 그렇다면 공기와 눈치는 어떤 문화적 차이가 있는 걸까요. 다음 글에서는 두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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