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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Oct 21. 2021

"일본은 진짜 그래?"

"일본은 진짜 여자가 순종적이야?"

"일본 사람들은 사케만 마셔?"

"일본에서 한국 남자 인기 많아?"

"일본 남자 친구는 가부장적이야?"

"일본은 숟가락 안 써?"

"일본 사람은 정말 겉과 속이 달라?"




밤새워 적을  있을 정도로 많은 질문을 받아왔지만, 자신 있게 대답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질문 가운데 제가 답할  있는  '일본에 숟가락을 쓰는 문화는 없다' 정도입니다. 젓가락은 오하시(お箸)라는 한자를 쓰는데, 숟가락은 스푼(スプーン)이라는 외래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같은 맥락이겠지만요. 그럼에도 100% 정확한 대답은 아닙니다. 중화요릿집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숟가락 렌게(レンゲ) 이젠 웬만한 식당에서   있는 데다 볶음밥, 카레라이스, 라멘집엔 숟가락이  같이 나오거든요.


렌게(蓮華) 연꽃잎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를 두고 "맞다, 아니다." 칼로 무 자르듯 가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요? 물론 '그런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척도는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다, 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이지요. 모호하더라도 대략적인 윤곽이 그려진다면 보다 수월하게 문화의 다양성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홉스테드의 문화차원이론*은 상당히 유의미합니다. 사회학자 홉스테드가 IBM 재직할 당시 전세계 56개 나라에서 일하는 IBM 현지 직원 1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문화연구인데요. 이 설문조사를 토대로 홉스테드는 각 나라별 문화를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권력 거리(power distance)는 사회 구성원들이 권력의 차이를 인정하는 정도입니다. 권력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문화와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로 나누는데요. 권력이 있고 없고를 보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미국은 권력 거리가 낮고 한국은 권력 거리가 높은 문화입니다. 일본은 그 가운데쯤에 있네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의 명대사를 기억하시는지요.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어?!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인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 묵고! 어?! 사우나도 같이 가고! 어? 다 해쓰 인마!" 허세 가득한 속물 캐릭터 최익현(최민식)이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서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건네는 대사입니다. 권력 거리가 높은 문화일수록 이런 수법이 통한다고 할 수 있겠죠.


두 번째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입니다. 개인주의가 강한 문화는 개인의 자유, 독립성, 정체성에 높은 가치를 둡니다. 반면 집단주의(collectivism)가 강한 문화에선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자신을 우리(we)라는 집단의 일부로 보고, 집단의 목표가 곧 나의 목표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거죠.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볼까요. 문장대로 해석하면 '우리는 남이 아니다'라는 뜻이죠. 결국 모 아니면 도입니다. '우리'를 택하지 않으면 '남'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거죠. 끈끈한 공동 운명체로 살아갈 건지 생판 모르는 타인의 관계를 택할 건지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 엄마'라는 말은 친숙하지만, '내 엄마'라는 표현은 조금 낯설죠. 영어권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our mom'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를 '개인'과 '그룹' 어느 쪽으로 바라보는지 나타내 줍니다.  


세 번째는 남성성(masculinity)과 여성성(feminity)입니다. 여기서 남성, 여성이란 단어는 생물학적 의미에 기반을 두는 게 아닙니다. 과업 지향성과 인간 지향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남성성이 강한 문화는 권력이나 성공, 경쟁,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고, 여성성이 강한 문화는 삶의 질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거죠. 그만큼 권력이나 성공에 대한 욕구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일본 고깃집에서 요리를 배워보려고 주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설거지부터 배우게 됩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매일 죽어라 설거지만 하는 경우도 있죠. 주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흐름을 익혀야 하기 때문인데요.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대파도 손질하고, 반찬도 담고, 양념장도 만들면서 점차 요리의 기본부터 배워나갑니다. 그 모든 타이밍은 주방 내 최고 실력자인 주방장이 결정하지요. 하나하나 가르치고, 지켜보고, 시켜보며 사람 한 명을 길러내는 겁니다. 배우는 사람도 묵묵히 따르는 편입니다. 언젠간 고기 자르는 칼이 내 손에 쥐어질 거란 명확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죠.  


하루는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이 가게를 찾아왔습니다. 요리사가 꿈이라 일본 조리학교를 졸업했고 소, 돼지의 내장도 손질할 수 있다며 주방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요. 설거지를 몇 번 하던 친구는 언젠가부터 홀에 나와 서빙을 담당하기 시작하더군요. 친구가 종종 하던 말을 그대로 옮겨봤습니다.


"그래도 내가 일본까지 왔는데 주방에만 있을 순 없잖아."

"생각해보니까 손님들 만나면서 일본어 배우는 것도 경험일 것 같더라고."     


단편적인 사례이지만, 당시 그 친구에겐 요리를 배우는 과정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험을 쌓는 게 더 중요해 보였어요. 훗날 한국에 돌아와 식당을 차렸다는 후문입니다.   


네 번째는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dance)인데요. 확실하지 않은 모호한 상황을 피해서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경향을 뜻합니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리스크를 떠안는 것도 불안해합니다. 그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엄격한 규칙이나 법, 정책을 만들어 두고 따르려고 하지요. 반면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문화권일수록 변화무쌍한 상황도 보다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최근 청소년 직업 선호도 조사 결과 13~24세 청소년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은 '국가기관'과 '공기업'이었다고 합니다. 적성과 흥미보다 경제성과 안정성을 고려한 거죠. 코로나 영향도 있겠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흐름은 사실 어제오늘 일만은 아닙니다. 청소년에게 가장 막대한 영향을 미친 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이었겠지요.

 

불안정성, 불확실성을 꺼려하는 마음은 획일화를 낳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존재가 뒤섞이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나와 비슷한 사람 위주로 엮이게 만들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질서를 만들어내는 식인 거죠.


일본 초등학생들은 '란도셀'이라는 가방을 멥니다. 강제하진 않지만, 암묵적인 강제력을 갖춘 상징적인 아이템이지요. 사립학교는 대부분 란도셀을 지참하라고 지정해주는데요. 공립학교는 <등교 시 란도셀 착용으로 추천합니다>라며 공지사항으로 띄우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입학식 날, 대부분의 학생들은 란도셀을 메고 등교하죠. 획일화된 모습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타인과 다른 자신의 존재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본 소학교 학생들이 매고 다니는 란도셀. 요즘은 색깔별로 다양해졌다는 후문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장기 지향성(Long-term orientation)인데요. 한국은 100이란 숫자를 기록하는 대목입니다. 장기 지향성이 강한 문화권에서는 과거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좀 더 실용적인 접근 방식으로 미래 지향적 사고를 가집니다. 반면 단기 지향성인 문화권에서는 과거 오랜 전통과 규범을 존중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지요.

 

'미래지향적'이라는 표현은 한일관계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말입니다. <아베 "한국, 미래지향적 관계 계속 역행... 유감"> 이라던가요. <정부, 기시다 첫 연설에 "일본과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 기대">라는 식이죠. 한국도 일본도 장기 지향성 지수가 높은 편인만큼 관용표현처럼 쓰이는 것 아닐까요.   


물론 저 그래프 하나로 특정 문화를 일반화할 순 없습니다. 다만 조금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과 일본이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남성성(masculinity) 문화차원에서 상당히 격차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과연 이 두 가지 문화차원에서 어떤 다양성을 보여줄까요? 좀 더 깊게 파고들어서 하나하나 뜯어볼 생각입니다.



*참고 https://www.hofstede-insigh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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