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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눈치 DNA 2 10화

체면과 배려, 일본의 성(性) 문화

by 알로

1. "제발 나만 아니길..."

학부모 참관수업입니다. 우리 아이가 잘하고 있나 뒤에서 부모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는 빨간 손가락, 교사입니다. 앞에 앉은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을 지목해야 하는 상황인데요. 한 명을 제외하곤 다들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죠. 대답에 자신 없는 듯한 얼굴입니다. 여기서 과연 누구를 지목하는 게 좋을까요?


퀴즈에서의 정답은 밝게 웃고 있는 아이입니다.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요. 왜? 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평소 수업이라면 답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곤란해 보이는 아이를 지목하여 틀린 답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퀴즈에서 정답이 하나인 건 뒤에서 부모들이 지켜본다는 설정이 더해진 까닭입니다.


웃고 있는 아이를 지목하는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대답이 준비된 아이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발표하고, 자연스레 칭찬이 오가면서 화기애애한 수업 분위기는 덤으로 따라온다는 점이죠. 아이의 부모는 물론 다른 부모들에게도 뿌듯함을 안겨줄 겁니다. 일단 손을 들고 있긴 한데, 곤란한 표정의 아이를 지목한다면? 쭈뼛거리며 일어난 아이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할 모습이 떠오릅니다. 모처럼 보러 와 준 부모 앞에서 창피함을 겪어야 할 수도 있겠지요.


'쿠키요미(空気読み)'는 얼마나 공기를 잘 읽어내는지를 가늠하는 게임입니다. 이 장면은 다양한 프레임으로 접근해볼 수 있을 텐데요. 저는 '배려와 체면'의 관점에서 들여다봤습니다. 학부모 앞인 만큼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길 바라는 교사의 체면,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창피함만큼은 겪고 싶지 않을 아이의 체면,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을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이의 체면, 모처럼 아이의 수업을 참관하러 온 부모의 체면까지. 공간 속에 존재하는 각자의 체면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공기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공기란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화기애애함', 모두가 윈윈 하는 분위기를 의미하겠지요.


저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본의 한 소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만 겨우 읽을 줄 아는 정도였습니다. 일본어 문장은 대부분의 한자, 일부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로 이루어집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문부과학성이 지정한 소학교 필수한자는 총 1006자. 6학년 수업과정에 참여하려면 적어도 800자 이상의 한자를 머릿속에 넣어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소학교 국어시간은 '읽기'로 이루어집니다. 한자라곤 이름 석 자 겨우 쓸 줄 알았던 저에겐 지옥 같은 시간이었지요.


배우는 한자 옆엔 후리가나(한자 읽는 법)가 적혀있지만, 이미 배운 한자 옆은 텅 비어있어요. 언제 어느 단락을 읽으라 할지 모르니 학교 가기 전 날은 새벽까지 사전을 씹어먹다시피 했습니다. 후리가나를 찾아 적고, 읽는 연습을 했지요. 그렇게 준비를 해놓고도 국어시간만 되면 손에 식은땀이 났습니다. "자, 다음은 류상."이라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다리가 후들거렸죠. 발음도 익숙지 않으니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는데요. 그럼에도 선생님은 단 한 번을 빼놓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저를 지목하곤 했습니다. 짝꿍을 비롯한 몇몇 친구들이 돌아가며 후리가나를 적어주었고, 한자를 읽어내느라 조금 시간이 걸려도 반 아이들은 조용히 기다려주었죠.


만약 외국인 학생이란 이유로 편의를 봐주었다면 저는 배움이 더뎠을 거고, 반 아이들에게도 특혜를 받는다는 인상을 심어줬을 겁니다. 그 특혜는 저를 편하게 만들지언정 친구들과 어울릴 땐 장벽이 될 수 있는 부분이죠. 조금 느리더라도 똑같이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 외국인 친구가 느려서 답답하더라도 같이 도와주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시절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퀴즈 장면과 제 기억 속 장면은 같은 교실 풍경이지만, 다른 공기가 설정되어있습니다. 학부모 참관수업은 그날 하루뿐이라는 일회성,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수업을 마쳐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요. 보여주기 위한 장(場)에 가깝습니다. 제가 앉아있던 6학년 교실은 지속되는 배움의 장(場)이죠. 누군가는 적응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낯선 이방인에 적응을 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지향점 자체가 다르죠. 제가 말을 못 알아듣거나 한자를 잘 못 읽어 버벅거릴 때마다 "류상은 일본어가 모어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거다, 여러분도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 땐 마찬가지다."라며 반 전체를 다독여주었던 건 교실 속 공기를 읽은 선생님의 배려였으리라 생각합니다.


2.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눈치



회사 회의시간, 직장 동료 (혹은 상사)가 PPT 앞에서 무언가 설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운데 조준용 과녁처럼 생긴 빨간색 동그라미는 계속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어디로 움직일까요? 동료의 '열린 하의 지퍼'입니다. 화면에서 손가락을 때면 두 번째 그림과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당기듯 자꾸만 그곳으로 과녁이 움직입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한다는 점을 반영한 것 같습니다.


퀴즈의 정답은 빨간색 동그라미가 열린 지퍼로 향하지 않게끔 동그라미를 끌어오는 것입니다. 내 시선이 열린 지퍼에 꽂혀있다는 걸 상대방은 몰라야 합니다. 지퍼가 열렸다는 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도 상대방은 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상대방이 지퍼가 열렸다는 걸 알아차려도 '아무도 못 봤겠지?' 라며 안도할 수 있게끔 말이죠. 여기서도 체면과 배려가 기준이 됩니다.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이유는 민망해질 수 있는 상대방의 체면도 있지만, 시선을 그런 데(남의 민망한 실수)에 두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체면 또한 한몫합니다. 지퍼가 열렸다고 뚫어져라 지퍼만 쳐다보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은 심리, 그 역시 체면의 범주에 들어가겠지요. 알지만 모르는 척, 서로의 체면을 지켜주는 것이 공기를 잘 읽는 행동이 되는 이유입니다.



3. 어딜 보는 건가, 자네


여성이 내미는 명함엔 센포(先方)라고 쓰여있습니다. 상대방, 이라는 뜻이지만 주로 비즈니스 관계나 윗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 잘 부탁드린다는 비즈니스식 대화가 오가는 장면인데요. 2번 퀴즈와 마찬가지로 빨간 동그라미는 내가 붙들고 있지 않는 이상 자꾸만 한 곳을 향해 움직입니다. 여성의 가슴골이지요. 의식을 붙잡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한다는 걸 반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족이지만, 일본은 성(性)에 개방적인 문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주변 지인들이 '얼마나 개방적이야?'라고 물어올 때마다 이야기하는 에피소드 몇 개가 있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는 일본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시절 자주 접했던 컵라면 광고입니다. 열세 살 때 봤는데 여전히 기억하는 걸 보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광고는 한 가수의 스탠딩 콘서트에서 시작합니다. 팬들이 열광하며 방방 뛰는 장면.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두 남성이 앞으로 뛰쳐나오려는 팬들을 두 팔 벌려 막습니다. 조금 격렬하게 막다 보니 뛰쳐나오려는 한 여성의 가슴 위로 두 남성의 손이 올라가는 해프닝을 연출합니다. 컵라면 광고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만, 힌트는 '슈퍼컵'이라는 라면 이름입니다. 양이 많다는 의미로 슈퍼컵, 가슴 사이즈가 크다는 의미로 슈퍼컵. 오로지 그 단어의 연결고리로 만들어낸 연출이죠. 20년도 더 된 일이니 요즘이라면 일본에서도 방송불가 판정인 수준입니다만, 초등학생이 티브이를 보는 시간대에 방영됐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다소 낯선 기억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대화의 수위는 우리나라에 비해 높은 편인데요. 좀 더 가감 없이 묻고, 답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인간의 본능적 호기심이니 '개방'적이고 '솔직'하게 주고받는 식입니다. '수치'나 '실례'라는 개념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한 느낌도 자주 받았습니다. 분명한 건 모임의 성격에 따라 해도 되고 안 되고의 차이가 확실하게 구분된다는 점입니다.


그림과 똑같은 옷차림의 여성이 나와 매우 가까운 지인이라면 "오늘 섹시하게 입었네? 생각보다 가슴이 크구나." "당연하지. 보여줄 수 없으니 안타깝군."이라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가기도 합니다. '우린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공기가 존재하는 거죠. 종종 상대방도 동의했다고 착각할 경우 큰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요. '나의 성적 호기심과 욕구를 마땅히 드러내도 괜찮은 공기'와 '그렇지 않은 공기'는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그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에서 '개방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4.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동하는 눈치

공공장소 에스컬레이터입니다. 뒷모습인 오마에(お前)라고 적힌 캐릭터가 '나'를 의미합니다. 내가 서 있는 곳보다 몇 칸 더 높은 위치에 짧은 하의를 입은 여성이 서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빨간 동그라미가 등장했지요. 끊임없이 여성의 하의 부분을 향해 움직입니다. 여기서 공기를 적절하게 읽는 건 동그라미가 여성한테 가지 않도록 시선을 끌어내리는 일이겠죠.


오른편에 서있는 행인들의 시선이 죄다 나를 향해 있다는 점도 나의 '체면'에 영향을 줍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그 시선을 신경 쓴다는 말은 그만큼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공기가 존재한다는 뜻이겠지요.


동양은 체면의 문화라고 불리는 만큼 '체면과 배려'를 대하는 자세는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집, 거리, 공공장소, 직장에서 우린 매일같이 어떠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지요. 그 속에서 상대방의 체면과 나의 체면, 전체의 분위기를 고려하며 적절한 시선과 언행을 찾아 나아갑니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면 그만큼 그 상황 속 역할의 경계선이 뚜렷하다는 걸 의미하겠지요. 일본의 성문화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다채로운 사례들이 존재합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이야기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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