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눈치 DNA 2 09화

일본 전철에서 웃으면 안 되는 이유

by 알로

일본, 하면 떠오르는 집단주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단체생활. 똑같은 책가방과 모자를 쓴 소학교 학생들. 공공장소에서 철저하게 지켜지는 규칙. 앞서 홉스테드의 문화차원이론을 소개했습니다만, 개인주의 성향 지수가 한국은 18점, 일본은 46점이었지요. 홉스테드가 조사한 56개국 가운데서도 한국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었는데요. 우리나라는 개인주의 성향이 일본보다도 낮은 편이었습니다. 의아하지요. 우리 눈에 비친 일본 사회는 집단, 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말입니다.


대학 시절 일본에서 지낼 때입니다. 친구와 전철을 타고 가는데, 거나하게 취한 남성이 건너편에 앉아있었죠. 남성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린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잠든 상태였어요. 많이 드셨네, 하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남성이 큰소리로 외칩니다.


"가니가 우메!(게가 맛있어). 가니가 우멘다요!(게가 맛있다고!)"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 게 요리를 먹은 걸까요. 아니 먹지 못하여 아쉬움이라도 남은 걸까요. 입맛을 쩍쩍 다시며 외치던 남성의 잠꼬대는 점점 커졌고,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소리에 저는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철은 고요했어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죠. 저 잠꼬대 소리가 내 귀에만 들리는 건가, 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승객들 모두 눈곱만큼의 동요도 없는 무표정이었지요. 핸드폰을 보거나 허공을 응시하거나 눈을 감고 있는 전철 안의 수많은 얼굴들. 저에겐 그런 그들의 모습조차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왜 다들 반응이 없지. 나만 웃긴가. 너무 조용하니 차마 티를 낼 순 없었고, 그저 숨죽인 채 끅끅거릴 뿐이었지요. 그때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저를 힐끔 쳐다보곤 갑자기 정색을 하는 겁니다.


"웃으면 안 돼. 이런 상황에서 웃는 건 실례야."


친구가 너무 정색하니 저 역시 민망해졌지요. 다만 친구의 말을 이해하긴 어려웠습니다. 실례는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를 낸 그분이 한 것이지 소리 없이 웃은 제가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정색한 친구 덕분에 제 얼굴에서도 웃음기는 사라졌고, 저희가 내릴 때까지 승객들 가운데 그 누구 하나 남성에게 시선을 건네거나 웃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와 남성을 제외한 나머지 승객들 사이에선 무언가 암묵적인 룰이 공유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공공장소, 취한 승객, 웃긴 상황, 그러나 모두 웃지 않는 상황.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눈길 한 번 건네지 않던 모습. 만약 남성의 잠꼬대로 전철 내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더라면 친구도 그렇게까지 정색하진 않았겠지요. 친구가 우려했던 건 저의 웃음이 남성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라서, 가 아니었습니다. 전철 안 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 '눈에 띄는 존재'가 된 제가 부담스러웠던 거지요. 친구가 말했던 실례란 '공공장소에서 취객의 실수를 보며 웃는 행위'였으니 그 대상은 남성이 아닌 공공장소 내 공기였던 겁니다.

일본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집단주의 성향은 '내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만큼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으로 작동하는 셈이지요. 종종 일본은 집단주의 속 개인주의라고도 일컬어지는데요. 그만큼 집단이라는 테두리에 속한 '나, 개인'을 철저하게 보호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래 퀴즈들은 일본의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이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어 나가는지 보여줄 사례입니다.



1. 기꺼이 맞춰드립니다



'쿠키요미(空気読み)' 게임 중 가장 생각하지 않고 답을 맞혔던 퀴즈들입니다. 부연설명도 없어요. 그냥 화면이 켜지면 단체로 우르르 파도를 탄다거나 갈매기들이 줄지어 날아가는데 한 마리만 동떨어져있다거나 도미노가 차례로 넘어지는 장면이 시작됩니다. 저는 그저 박자와 모양을 맞출 뿐이지요. 타이밍을 놓치면 끝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죠. 야구장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다 보면 한껏 흥이 올랐을 때 응원단장이 파도타기를 시도합니다. 저 반대쪽부터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물결모양을 만들어내죠. 제 차례가 왔다 싶으면 일어섰다 앉습니다. 사전에 약속된 게 아니에요. 그냥 분위기 따라 하는 거죠. 안 한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딱히 깰 이유가 없으니 맞춰서 행동하는 겁니다.



2. 모두가 하나 되는 세상

두 번째 퀴즈도 마찬가지입니다. 테니스장 관중석에 앉아있는 '나'. 테니스공이 반대 코트로 넘어갈 때마다 관중들의 시선도 좌우로 움직입니다. 박자에 맞춰서 같이 좌우로 움직이는 식이죠. 다 같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한다면 나 역시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쳐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잘못한 건 아니지만, 분위기는 못 맞추는 거죠. 게가 그렇게 맛있다던 남성을 보고 혼자 웃었던 저는 다들 기립박수를 치는 와중에 홀로 앉아있는 저 '나'였던 겁니다.



3. "그럼 처음부터 네가 간다고 하지."



이 퀴즈 역시 밑도 끝도 설명은 없는 상태로 시작합니다. '너네들'이라고 적힌 사람 세 명이 왼편에 서있고요. 한 명은 오른편에 서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일본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자주 벌어졌습니다.


점장(오른쪽)이 아르바이트생들을 불러놓고 "오늘 마감까지 일할 사람." "편의점 가서 음료수 사 올 사람." "2층 화로 청소하고 올 사람." 질문을 던집니다. 그럼 저희들(왼쪽 세 명)은 대답을 해야 하는데요. 한 명이 손 들고 "저요!" 한다 해서 "오케이, 그럼 네가 당첨!" 하고 끝나는 식이 아닙니다. 한 명이 "제가 할게요." 하면 그다음 친구도 눈치껏 "제가 갈게요." 합니다. 그러면 저도 외칩니다. "제가 갈게요!"



퀴즈의 마지막 장면은 오른쪽에 서있던 사람이 "그렇다면 내가 갈게."라고 말하며 끝납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누가 가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겁니다. 이 분위기를 맞춰서 호응할 수 있는지, 엇나가지 않는지, 리액션을 다른 이들과 비슷한 선상에서 보여줄 수 있는지, 를 보는 겁니다.


사족이지만, 점장은 곧잘 손을 끝끝내 안 든 친구를 지목해서 심부름을 시키곤 했습니다. 손을 들었던 나머지 친구들은 암묵적으로 그의 결정에 따랐죠. 왜?라는 질문을 꺼내진 않았지만 모두 알고 있던 겁니다. '네가 손을 안 들었으니까.'





keyword
이전 08화일본에선 왜 '리액션'이 중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