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자는 순종적이라며?"
"일본에서 한국 남자 인기 많다던데 진짜야?"
"일본은 숟가락 안 써?"
"일본 남자는 가부장적이야?"
"일본 사람은 정말 겉과 속이 달라?"
밤새워 적을 정도로 많은 질문을 받아왔지만 자신 있게 대답한 기억은 별로 없다. 저 중에 유일하게 답할 수 있었던 건 '일본에 숟가락을 쓰는 문화가 없다' 정도였달까. 젓가락은 오하시(お箸)라는 한자인 반면 숟가락은 스푼(スプーン)이라는 외래어를 사용하니 대답의 근거는 되겠지만, 중식 문화에서 온 숟가락 렌게(レンゲ)가 정착한지도 오래다. 웬만한 식당들도 숟가락쯤은 언제든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으니 안 쓴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겠다.
한 나라의 문화를 두고 그렇다, 아니다 칼로 무 자르듯 가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조심스럽게 고르고 골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어.'라고 대답하곤 한다. 한국사람이라고 다 김치를 반찬으로 두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매운 음식을 잘 먹는 건 아니니 말이다. 밥상에 김치를 올려두는 가구당 통계라도 있으면 숫자로 환산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맥락에서 홉스테드의 문화차원이론*은 유의미하다. 지금은 사회학자인 그가 IBM에 재직할 당시, 전 세계 56개 나라에서 일하는 IBM 현지 직원 10만 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문화연구를 진행했다. 이 설문조사를 토대로 홉스테드는 각 나라별 문화를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한다. 지금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나라 이름을 넣으면 비교 그래프가 등장하는데, 아래 그림은 한국과 일본, 미국을 검색한 결과다.
(왼쪽부터) 첫 번째, 권력 거리(power distance).
사회 구성원들이 권력의 차이를 인정하는 정도를 말한다. 권력이 있고 없고를 보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이 권력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은 권력 거리가 낮고 한국은 권력 거리가 높은 문화. 일본은 그 가운데쯤에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의 명대사를 기억한다면 이해가 쉽다.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어?!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인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 묵고! 어?! 사우나도 같이 가고! 어? 다 해쓰 인마!"
허세 가득한 속물 캐릭터 최익현(최민식)이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서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건네는 대사. 권력 거리가 높은 문화일수록 이런 수법이 통해왔다. 권력을 쥐고 있다면 어느 정도 눈감아주리라는 인식이 사회 곳곳에 잔재하는 것처럼. 다섯 개 카테고리 중 세 나라의 편차가 가장 작다.
두 번째, 개인주의(individualism).
개인주의가 강한 문화는 개인의 자유, 독립성, 정체성에 높은 가치를 둔다. 반면 집단주의(collectivism)가 강한 문화에선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스로를 나(I)가 아닌 우리(we)라는 집단의 일부로 보고, 집단의 목표가 곧 나의 목표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식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주고받을 때가 있다. 해석하면 우리가 남은 아니라는 뜻이다. 끈끈한 공동 운명체로 살아갈 것인가, 생판 모르는 타인의 관계를 택할 것인가. '우리'를 택하지 않으면 '남'이 되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우리 엄마'라는 말은 친숙하지만, '내 엄마'라는 표현은 조금 낯설다. 영어권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our mom(우리 엄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를 개인과 그룹 중 어느 쪽에 속한 사람으로 바라보는지 이 작은 언어에서 드러난다.
세 번째, 남성성(masculinity)과 여성성(feminity).
남성, 여성이란 단어가 등장하지만 생물학적 의미에 기반을 두는 건 아니다. 다소 영향이 있을 순 있지만, 홉스테드는 남성성을 과업 지향성, 여성성은 인간 지향성으로 구분한다. 남성성이 강한 문화는 권력이나 성공, 경쟁, 성취를 중요하게 여긴다. 여성성이 강한 문화는 삶의 질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권력이나 성공에 대한 욕구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숫자가 높을수록 남성성이 강하다는 건데, 일본은 95라는 수치를 기록할 정도다.
일본 고깃집에서 요리를 배워보겠다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사람 열의 아홉은 설거지부터 배운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365일 죽어라 설거지만 하는 경우도 있다. 설거지가 뭐 있나 그냥 그릇 빨리 잘 닦으면 되는 거지 싶은데, 규모가 있는 가게일수록 설거지가 막히면 그릇이 못 나간다. 음식 제공도 덩달아 느려진다. 가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흐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란 뜻이다. 설거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주방 일을 어떻게 하나?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신기한 건 그 어떤 단계에 있다한들 실력이 뛰어나다해서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 조금씩 쌓여가는 '세월=경험치'에 의미를 두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주방의 자잘한 일을 도맡는다. 대파도 손질하고, 반찬도 담고, 레시피대로 양념장도 만든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타이밍은 누가 정하는가. 주방장이 정한다. 주방 내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가르치고, 지켜보고, 시켜보며 사람 한 명을 길러내는 일에 오랜 시간이 깃든다. 그가 가진 권력 또한 그 오랜 시간 동안 존중받는다. 배우는 사람도 묵묵히 따르는 편이다. 언젠간 칼을 쥘 수 있다는 명확한 목표를 위해 쌓아 가는 세월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겠다.
하루는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이 가게를 찾아왔다. 일본 조리학교를 졸업했고 소, 돼지의 내장도 손질할 수 있다며 주방에 들어가고 싶다던 그. 어김없이 식기세척기 앞으로 보내졌다. 설거지를 몇 주 해보더니 언젠가부터 홀에 나와 서빙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일본까지 왔는데 주방에만 있을 순 없잖아."
"생각해 보니까 손님들 만나면서 일본어 배우는 것도 경험일 것 같더라고."
훗날 그는 한국에 돌아와 요식업계로 뛰어들었고, 일명 대박이 났다. 같은 시기 주방에 들어가서 요리를 배우겠다던 재일교포는 묵묵히 그 시간을 버텨냈고 도쿄에 고깃집을 차렸다. 요식업계로 뛰어들었던 유학생은 가공, 유통, 배달 쪽으로 사업을 번창해나갔다. 재일교포는 일류 고깃집으로 거듭났다. 원하는 게 있다면 손에 쥐고 말지, 라는 관점. 조금 시간이 걸려도 한 분야를 걸어가겠다는 집념. 어쩌면 두 문화의 세계관에 작은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네 번째,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dance).
확실하지 않은 모호한 상황을 피해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경향을 뜻한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리스크를 떠안는 것도 불안해한다.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격한 규칙이나 법, 정책을 만들어 두고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문화권일수록 변화무쌍한 상황도 보다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한다. 일본은 92점,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미국은 46점이다. 우리나라 또한 85점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한국은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문화다. 뭐 하나 도입하면 일사천리로 후루룩 해치워버린다. 음식점에서 금연할까? 그래, 오케이! 2015년부터 전면 금연구역 지정, 땅땅땅. 인터넷 좀 느린데? 4G 말고 5G? 오케이! 이동통신 불모지에서 5G 상용화까지 반세기가 채 지나지 않았다. 온 지구가 불확실성에 휩싸이기 시작한 2019년부터 코로나 방역 전쟁에서도 빛을 발했다. 검사받아야지, 줄 서서 기다려야 돼? 아니 아니, 드라이브 스루 만들게. 가게에 확진자 다녀갔는데 어떡해? 오케이, 핸드폰 추적 시스템 만들게. 누가 언제 입장했는지 어떻게 알아? 알겠어, QR체크 오늘부터 시작!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성향이 도드라진 만큼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 익숙하다. '빨리빨리' 문화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겠다.
불안정성, 불확실성을 꺼려하는 마음이 때론 획일화를 낳기도 한다. 나와 다른 존재가 뒤섞이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뜻한다. 일본 초등학생들이 메는 '란도셀'이라는 가방이 있다. 강제하진 않지만, 암묵적인 강제력을 지닌 상징적 아이템이다. 사립학교 대부분은 특정 란도셀을 지참하라고 지정해주는 식으로 대놓고 강제하는 편이지만, 공립학교는 자율에 맡긴다. 대신 <등교 시 란도셀 착용으로 추천합니다>라는 공지사항을 띄운다. 그리고 입학식 날, 란도셀을 메고 등교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을 볼 수 있다. 획일화된 모습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타인과 다른 자신의 존재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장기 지향성(Long-term orientation).
한국이 전세계 1위를 기록하는 대목이다. 100점이란 숫자를 기록한다. 일본 역시 만만치 않게 높다. 88점이다. 그래서일까, 한국과 일본 관련 기사를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아베 "한국, 미래지향적 관계 계속 역행... 유감">, <정부, 기시다 첫 연설에 "일본과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 기대">, <이재명, 日대사에 "미래지향적 협력해야"…日총리 만남 제안>. 장기 지향성이 강한 두 나라가 즐겨 쓰는 관용표현인가 보다.
다섯 가지 카테고리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극단적인 격차를 보이는 두 가지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집단주의(collectivism)> 그리고 <남성성(masculinity)과 여성성(feminity)>이다. '가까운 듯 먼 나라, 비슷한 듯 다른 문화'라는 말에 등장하듯 조금 멀고 다르게 느껴지는 두 나라의 다른 모습들을 이 두 가지에서 발견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