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거의 1년 만에 브런치를 로그인했다. 이따금씩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270일이 지났어요 ㅠ_ㅠ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작가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출간의 기회는 글에 집중하고 있을 때 꿈처럼, 마법처럼 찾아옵니다'라는 알람이 뜨곤 했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브런치의 마케팅에 놀랐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그 꾸준함에 놀랐다.
지난 8월쯤에 한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 메일이 왔다. 브런치에 올라왔던 글을 눈여겨 봐주신 편집장이 직접 주신 메일이었다. 출간이란 단어를 넣고 얼마나 많은 검색을 해왔던가. '출판사는 단번에 오케이 하지 마세요' '계약사기 조심하세요' '너무 단번에 오케이 하면 없어 보입니다'라는 글들은 접할 때마다 조심해야겠다며 다짐했음에도 정작 메일을 받아 드니 하얗게 잊혔다. 그저 내 글을 알아봐 준 단 한 사람이 눈물겹도록 감사했다. 메일을 읽은 지 1분도 안 되어 답장을 보냈다. 2주일쯤 뒤 계약서가 오갔다. 그렇게 짧고도 긴 여정이 시작됐다.
써놓은 초고가 있었지만, 출판사가 원하는 방향은 보다 구체적이었다. 결국 굵은 뼈대만 남겨두고 다시 써야 했다. 칩거생활을 하면 원고가 좀 잘 써질 것 같아 저렴한 숙소를 구해 여름휴가 내내 방구석에 처박혀있었다. 가을과 겨울, 연말연시는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초고 마감은 1월 말이었고, 하필 이래저래 일을 벌여놨던 상태라 1월과 2월은 줄곧 새벽 네시가 되어서야 잠들었다. 고요함 속에서 종종 울기도 했다. 글이 안 써져서 울고, 능력의 한계를 느껴서 울고, 시간이 없어서 울었다. 글을 쓰다 생각난 시절에 이입해서 울고, 책이 나오는 게 갑자기 두려워져 울기도 했다. 활자들에 적힌 책임을 과연 나는 어디까지 질 수 있을까, 상상하며 또 울었다. 세상에... 글 쓰는 게 행복할 줄만 알았지, 나를 울리는 존재가 될 줄은 몰랐다. 매일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니 체력은 뚝뚝 떨어졌다. 휴대폰 알람보다 규칙적이었던 내 배꼽시계와 튼튼했던 신체리듬이 연달아 무너졌다. 그래도 지구는 돌아가는 것인가.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지난한 여정을 마친 오늘, 드디어 나의 책 <감정문해력수업>이 나왔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책 한 권을 내는 건 매년 새해 목표 1순위였다. 왜 책을 내고 싶었을까. 돌이켜보니 새삼스럽다. 그저 무언가를 기록하는 게 좋았고, 누군가 읽어주어 좋았고, 기뻐해주니 좋았다. 이름 석자를 남긴다는 망상 속 짜릿함도 한몫했던 것 같다.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게 이리도 무거운 책임감을 동반할 줄 알았더라면 조금은 다른 여정을 걸었을 것 같다. 보다 규칙적으로, 보다 열심히, 읽고 생각하는 데 집중하는 삶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화두로 써 내려간 글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에 어떤 마음들이 담겨 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책이다. 학창 시절에도 공부는 좋아하는 것만 골라했던 나였기에 '수업'이란 키워드가 낯설었지만, 단어 하나를 두고도 고민하는 것조차 마냥 행복한 사람이기에 지난 반년은 매우 즐겁고 값진 여정이었다. 어쨌든 끝이 났고, 오늘은 정말 후련하다.
생각해 보면 글은 늘 쓰고 있었다. 단지 이곳이 아니었을 뿐. 방송원고야 업이라지만, 그것도 엄연히 글이었다. 구성안에 지칠 때면 블로그에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적었다. 그것조차 하기 싫을 땐 인스타그램에 한 문장이라도 적었다. 돈을 벌어야겠다 싶을 땐 객원 에디터로 맡은 원고를 작성했다. 레슨총무로써 배드민턴 클럽 밴드에 공지글을 올리는 것도, 누군가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는 것도 엄연히 내겐 글의 영역이었다. 원고에 지치면 블로그로, 이 글에 지치면 저 글로, 그렇게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즐거움의 정답을 찾아왔지만. 결국은 써야 할 글을 꾸준히 써내는 것에 정답이 있다는 걸 또 한 번 절감한다.
그래서 다시 브런치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도 없다고 느꼈던 시절.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시절.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1일 1브런치. 내 마음이 가장 편한 곳.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많이 먹거나 적게 먹거나 꼬박꼬박 먹기만 하면 건강해지는 그런 맛.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다. 이제 당분간은 '작가님 ㅠ_ㅠ' 알림을 받을 일은 없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