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창문 너머로 비 오는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창문을 열면 기분이 더 좋아질 걸 아니까.
처마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 소리며 어딘가에 고여있을 물 웅덩이와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방충망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 젖은 흙냄새, 낡은 쇠 냄새, 물기를 잔뜩 머금은 녹음의 냄새가 어우러진다. 이래서 비 오는 날은 방충망에 코를 대고 한참을 킁킁 거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렇게 잠옷 차림으로 빗소리가 들리면 침대 위로 올라가 그저 비 오는 걸 즐길 수 있는 건 지금뿐이라는 걸. 물줄기의 향연이나 만끽하며 이 밤을 즐기는 오늘을 언젠간 몹시 그리워할 거란 걸. 부모가 살아 계신 시절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질 것이니 지금 이 순간을 꼭 기억해야 한다는 걸.
캔맥주 하나 마시긴 했지만 취기는 올라올 기미가 없는데 이상하게 비만 오면 기분이 좋아지니 오늘은 이곳에 기록해 둔다. 비야 많이 와서 가뭄으로 고생하는 한반도를 흠뻑 적셔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