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람이 거절하는 방법

by 알로

인천공항엔 일반 차량들이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다. 국제선이나 국내선이나 출발층, 도착층. 트렁크 싣고 사람을 내리고 태우기까지 짧게는 1분, 길게는 몇 십분. 비상등 켜놓고 정차 중인 차량을 보는 건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주변 차량에 큰 민폐가 아니라면 잠깐의 정차는 용서되는 분위기다. 택시를 타고 내리는 사람도 포함된다. 5분은 10분이 되기도 하지만, 뒷차가 빵빵거리며 "차 빼라!'고 경적을 울리기 전까지는 자유롭다. 비켜달라 하면 비켜주면 된다. "거기 세우면 안 되죠!"라는 말을 들으면 호다닥 짐을 내리고 차를 뺀다. 더러 시비가 붙는 경우야 있지만 주정차 문제로 큰 싸움이 나는 일은 거의 없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던 어느 밤이었다. 친구가 마중나오기로 했는데, 친구도 나도 공항에서 차량이용을 해본 적 없었다. 나는 어디로 나가야할지 몰랐고, 친구는 어디로 차를 몰아야 할지 몰랐다. 서둘러 도착 터미널을 둘러봤다.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는 3개. 리무진 버스용, 택시 승강장, 장애인 차량 전용 구역이었다. 주정차를 합법적으로 허용해주는 구역이 없어서인가, 일반차량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규정대로 허용해주는 구역은 없는 거다. 만만한 건 택시 승강장이었다. 내려가서 직원에게 물었다. "일반 차량이 마중 나오면 어디서 탈 수 있나요? 잠깐 정차가 가능한 곳이 있을까요?"


단호함과 상냥함을 겸비한 미소로 그가 말한다.


"이곳은 택시를 타는 곳이라 차량이 들어오게 되면 아무래도 모두가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겠지요..." 서론도 말줄임표도 길었다. 타자마자 바로 떠날 건데 일시적인 정차구간은 없냐, 되물었다.


"여기는 일반차량이 들어오면 힘든 구역이라서요. 왜냐하면 택시를 이용하는 분들이 계시는 곳이라. 정 원하신다면 저 맨 끝이나 저 맨 처음으로 가셔서 살짝 그러실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모두가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어서요..."


거참 서두가 길다. 헛웃음 나왔다. 안 된다는 말을 최대한 길게 하는 법이라도 전수받은 것처럼. 난 이 건물에 정차 가능한 다른 구역을 찾고 있는 것뿐인데. 통하지 않는다. 그런 그를 보며 일본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저 화법에 숨 넘어갈 것 같이 답답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잰틀하다며 좋아할 이도 있겠다. 난 전자에 속하는 편이지만, 저 정도면 꽤 잰틀하게 거절한 편이란 생각에 살짝 미안하기도 했다.


척하면 척 알아듣는 우리나라 사람들, 이라 적으면 국수주의자가 되는 걸까. 일본에 살았던 시절엔 융통성과 호탕함이 그리울 때가 많았었다. 이렇게 하면 쉽게 갈 수 있는데 왜 굳이, 라는 말을 여러 번 삼켰다.


한편으론 그렇다. 지킬 것만 지키면 모두가 편해진다. 그렇다면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지키는 게 맞다고 여겨질 수 있다. 3000원, 5000원 주차비 들여서 주차하고 사람 마중 나간다는 게 번거롭고 돈도 아까울 수 있겠지만, 그 마음이 모여 하나가 되면 모두가 편해지는 사회가 된다. 트렁크 끌고 나오는 사람에게 "내 차 그 하얀 차 뒤에 있으니까 잘 찾아봐. 아니 왜 못 찾아. XXXX이라고 차 번호 안 보이니?" 운전 중 통화해가며 창문 열고 손짓을 한다던가. 내려서 짐 싣는 동안 뒤차 빵빵 경적을 울려댄다던가. 그동안 누군가는 기다려야한다던가. 뭐 그런 사소한 일들이 서로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든다면 한 번쯤 고려해볼 만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인은 출입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