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출입을 금지합니다

직접 따지러 갔다

by 알로

출장은 언제나 그렇듯 빡세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찾아와 일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5년 전 기동팀에 있을 땐 더 심했다. 출근해서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날아오는 한마디."부산 좀 다녀와야겠다."


당일치기인 줄 알았는데 일주일째. 속옷이나 양치, 세면도구는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 치자, 옷은?

하필 흰색 셔츠를 입고 간 탓에 7일간 매일밤 손빨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마저도 풀숲에서 *뻗치기(원하는 현장이 나올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리는 행위) 하다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졌다. 다행히도 나는 예측 불허한 일상을 보내는 나날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었다.


그래도 해외출장은 좀 준비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금요일 오후에 결정된 탓에 단돈 1엔도 환전하지 못한 채 떠났다. 엔화 없이도 일본땅에 발 디딜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무리수였다. 특히 대마도는 카드 안 되는 곳이 너무나 많다. 배편 끊자마자 쓰시마 시청과 약속됐던 촬영 일정이 무산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도착한 히타카츠 국제 터미널에서 팀원들과 나눠마실 비타민 음료 3개를 사니 지갑에 남았던 엔화가 털털 털렸다. 더불어 내 멘탈도 털렸다. 지나고 보면 웃으며 건넬 안주거리지만.


대마도에 한국인 출입금지 푯말을 내건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이미 몇 년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신문기사에서 여러 번 다뤄왔다. 2017년 모 방송사에서는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찾아갔다. 아프리카 BJ들도 여럿 다녀왔다. 혐한을 당했다고 고백하는 블로그도 수두룩했다.


그들이 한국인을 거절하는 표현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일본어가 안 되면 들어올 수 없다, 는 건 그나마 잰틀한 축에 속한다. NO KOREAN. 아예 국적, 인종 자체를 거부하는 곳도 있었다. 도쿄 우익단체들의 혐한 시위에서나 볼법한 문구가 한적한 바닷가 마을 술집에 적혀있는 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유인즉슨 피곤하다는 거다. 치고받고 싸우고 칼 들고 와서 죽어라 달려드는 게 아닌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피곤할 일이 많다는 거다. 자초지종을 듣기까지 꽤 오래 설득했다. 아주 조금 마음이 움직인 사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한국사람들, 담배 피우면 바닥에 꽁초 다 버리잖아요. 바닥에 침 뱉잖아요. 누가 닦아요? 안주로 강낭콩 내놓으면 콩 껍질 다 바닥에 버리고. 계산할 때 꼭 깎아 달라 그러고. 서비스 안 주냐 그러고.


인종차별 발언 아닌가요. 저 문구를 보며 불쾌감을 안고 돌아가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내가 준비했던 말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한국사람들 중 극히 일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일부를 손님으로 받고 응대하라, 권할 수 있는 권리가 내게는 없었으니.


한국인 스텝이 없으니 만족스러운 응대가 어렵다고 적혀있는 곳도 있었다. 언뜻 보면 끄덕끄덕 수긍하게 된다. 하지만 그다음 문장에서 그들은 '대단히 죄송하지만, 한국인 손님들은 출입을 삼가달라'고 적는다.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작은 어촌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별 거 아니란 듯 웃지만 인터뷰 말미에선 너도나도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처음엔 당황했단다. 어쩌면 저렇게 시끄럽지? 어쩌면 땅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하지? 어떻게 라면을 끓여먹고 그걸 고스란히 바닷물에 흘려보내지? 왜 우리 집 마당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이 꽃 사진 찍고 저 꽃 앞에 서서 또 찍고 할 수 있지? 했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내성이 생긴 건지 그다지 화도 안 난다 했다. 그냥 한국이랑 일본은 문화가 달라서 그런가 보다. 웃으며 하나하나 당황했던 사례들을 나열하는데 정말이지 눈을 마주치고 서있기 민망했다.


신기했던 건 무슨 보물찾기 하듯 취재할 수 있었다는 거. 쓰레기가 뒹굴고 있는 곳 주변을 쭈그리고 앉아 살펴보면 어김없이 한국산 담배들이 있다던가. 담벼락 구석구석에 담배꽁초가 끼어있길래 들여다보면 한국 담배들이라던가. 조용한 어촌마을에 가서 카메라 돌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큰소리로 누가 떠들길래 가서 들어보면 한국말이라던가. 사실 우리 동네에선 굉장히 익숙한 풍경이었다. 집 마당에 나가보면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 앞까지 들어와서 가만히 있는 개한테 시비를 건다던가. 누가 담배 피우면서 현관 앞을 서성거리며 꽃구경하길래 누구세요? 물어보면 지나가는 사람인데요? 한다던가. 술 먹고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소변을 보시길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말씀드리니 안 되면 경찰을 부르던가,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던가.


이 기사가 나가고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그러니까 왜 일본을 X 가냐'는 댓글이었다. 일본을 가고 안 가고의 문제일까. 버젓이 우리나라 땅 안에서도 내 집만 아니면 된다는 심보로 모든 동선에 나의 흔적을 남기는 비매너가 잘못된 것 아닐까. 대부분이 아닌 일부의 문제라 믿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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