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영화 러브레이스
아만다 사이프리드라는 배우를 참 좋아한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도 그녀가 선택하는 영화도 내가 원하는 그것과 늘 일치하기에 애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맘마미아, 클로이, 레터스 투 줄리엣, 이번 신작 러브레이스까지...
어젯밤 문득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부스스한 갈색의 파마머리를 한 아만다의 포스터를 본 순간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러브레이스는 60년대 포르노 영화에서 유명했던 여배우 린다 러브레이스의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몇 년 전 우연히 이 여배우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다큐멘터리라서 그녀가 출연한 실제 영화는 보여주지 않았다. 러브레이스는 단 한 편의 영화로 큰 인지도를 갖게 되었지만 그 뒤로 배우 생활이 잘 풀리지 않았다. 결혼 후에는 포르노 산업 반대와 가정폭력 근절을 주도하는 사회운동 인사가 되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다가 어느새 같은 세계를 살았던, 그러다 교통사고로 너무나 일찍 생을 마감했던 그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른 아침 영화관은 한산했다. 영화의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어둠 터널을 지나고 들어선 극장은 C열 가운데에 한 남자가, 그 뒤에는 한 여자가 이미 앉아있었다. 나는 F열 5번을 찾아 앉았고 곧이어 내 앞줄 3번 자리에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앉았다. 그 뒤로 50대쯤으로 보이는 잘 차려입은 여자들이 삼삼오오 들어왔다. 이윽고 극장 안 간접등이 깜빡이길 반복하다 곧 소등되었다. 순간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영화는 시작되었다. 영화가 시작하자 홀로 자리를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모자를 쓴 남자도, 팝콘을 든 여자도 들어왔다. 도대체 이 공간에 들어앉은 우리는 각자 무엇을 기대하며 커다란 스크린을 나란히 바라보고 있는 걸까?
미리 읽어 본 타인의 감상평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한 여자가 남자를 잘못 만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 음... 그렇게 쉽게 정의하기에는 영화는 나름 심오했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그녀가 너무도 해맑게 행위를 치른 후 손으로 입을 훔치며 상대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카메라 감독에게 설명하는 씬이었다. 주인공역을 맡았던 아만다의 표정은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됐나요?, 이런 게 뭐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과 손동작에는 그야말로 단순한 믿음에서 발현된 천진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아만다는 이를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관객에게 전달하였고 그 후의 펼쳐지는 러브레이스란 인물의 감정 전이도 잘 표현하였다. 사랑과 절대적 믿음이 한 묶음일 때 러브레이스의 세계는 단순 명료하고 해석이 무색했다. 그러나 '앎'을 깨닫는 순간부터 온갖 부당함과 고난은 그녀의 몫으로 돌아갔다. 높은 관람 수위는 그녀의 마음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였고 연출은 진실에 마주하는 삶의 태도와 변화를 보여주었다.
진실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식은땀이 났다. 아무리 추악한 현실이라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길은 모름이 전제되어 있는가 보다. 모름을 자각하는 지점에서 앎에 대한 탐구는 시작되니 평온한 삶은 애초에 모름을 모르고 살아가는 삶인 듯...
영화가 끝나자 앞자리에 앉았던 양복 입은 남자가 코를 훌쩍거렸고 크레딧이 다 올려가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2013년 어느 가을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