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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Nov 05. 2022

라비크

feat.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개선문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센강 다리 위를 서성이던 날이 생각난다. 이렇게 비가 오고 밤이 되면 말이다.


*

그날은 엄마의 장례식이 있었다. 슬픈 건지 피곤한 건지 알 수 없는 감정과 별개로 눈물은 쉬지 않고 볼을 타고 턱 아래로 떨어졌다. 어둠은 짙어지고 비는 흩뿌려졌다. 출렁이는 강물소리가 쓸쓸한 분위기를 더했다. 이만하면 연출이 훌륭하다. 곧 그녀가 나타나 내 앞에서 쓰러져 주기만 하면 이제 나, 라비크의 이야기는 시작될 것이다.


레마르크는 소설에서 나, 라비크를 프랑스로 망명한 외과의사로 직업을 한정했다. 현실의 나는 특별한 재주 없이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간다. 가끔 남들이 애쓰는 만큼 살았더라면 나도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궁금해본다. 혹은 내가 의사의 생을 살고 있다면 내 영혼에 깃든 이 우울의 근원이 사라졌을까 또 궁금해본다. 한편으론 소설 속 나는 전쟁 속에 숨어 사는 삶이 아니었다면, 또 그렇게 잔인한 고문과 아내의 자살을 겪지 않았더라면... 하고 궁금해할까? 상황이 캐릭터를 만드는 건지 캐릭터가 상황을 만드는 건지 헷갈린다.


다행히 조앙은 내 앞에도 나타났다. 하루살이 생이 어려워지면 몸을 파는 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근데 누가 내 몸을 돈을 주고 살까 싶다.) 저쪽 세계에서 그런 일을 하는 조앙은 얇은 야상코트를 어깨에 걸친 채 비틀거리다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쓰러졌다. 술냄새도 나지 않고 머리에 열도 없었다. 의사가 아닌 나는 당황했다. 이미 예정된 이야기처럼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가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집... 엄마와 함께 살던 집.

이제는 엄마가 없는 그 집에 들어가기 싫어 검푸른 강물만 바라보고 있던 터였다. 의식이 없는 조앙을 부축해 다리 밑으로 향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빗방울도 겹겹이 쌓이니 이내 우리는 흠뻑 젖어버렸다. 겨우 천막이 쳐진 벤치를 찾아 조앙을 눕히고 뜨거운 캔커피를 사 왔다. 따뜻한 기운이 얼굴에 닿자 눈을 뜬 조앙은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나는 조금 떨어져 다시 앉았다. 나는 알지만 그녀는 모른다는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곧 동거를 하고 머지않아 사랑도 할 테니까.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을 미리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세상 일에 조금 처연해졌다. 육체적 정신적 통증은 여전히 끔찍한 아픔을 동반하지만 내가 만날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훨씬 깊어졌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예정된 수명을 살아낼 것이라 삶에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나쁜 마음만 먹지 않는다면 매 순간 감정적 충만함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이 순간 내 옆에 잔뜩 의문을 품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이를 나는 편의상 '조앙'이라 부르며 당분간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운명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참 오랫동안 오늘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엄마를 하늘로 보낸 오늘이어야만 했을까 나 역시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의문을 풀어보려 애썼다.   


사랑할 사람을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다는 조건에 영혼을 팔 듯 레마르크에게 불확실한 내 미래를 팔아 버렸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라비크의 생을 현실 속의 나에게 주었다. 곧이어 라비크의 내면세계, 말투, 그와 얽힌 인연들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이적되었다. 다만 그의 명석한 두뇌와 시대적 상황만은 따라오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면 캐릭터의 상황도 달라져야 한다. 그는 현시점을 고려하여 설정한 하루살이 생이 저쪽 세계와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암울한 2차 세계대전 속 상황은 나로서도 그리 달갑지 않지만 명석한 두뇌는 때때로 좀 아쉬웠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전 삶과 뚝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만남과 이별이 사랑과 죽음이 정해져 있음을 언제나 미리 알 수 있는 지금이 나는 무엇보다 좋았다.




어린 날 도장깨기를 하듯 고전 시리즈를 읽어나가던 중 운명처럼 [개선문]의 주인공, 라비크를 만났다. 스토리 속에 머무르던 캐릭터가 때때로 나인 것처럼 움직이는 상황을 마주한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후로 비가 오고 밤으로 가는 시간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라비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조앙을 기다렸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살아온 시간 동안 홀로 상상에 빠질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음으로 이야기는 대개 이쯤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며칠 전 큰 맘먹고 동네 도서관에 갔다. 몇십 년 만에 [개선문]을 찾았다. 첫 장을 넘기다 웃음이 '헛' 하고 나와 버렸다. 이렇게 라비크가 수다스럽고 오지랖이 넓었었나? 첫 장에 그려진 그는 센강 다리 위에서 우연히 만난 조앙을 술집으로 데려갔다. 내 기억과 달리 조앙은 의식을 잃은 게 아니라 다만 비틀거렸을 뿐이다. 정황상 간단히 안부만 확인하고 각자의 길을 가도 될 일이었다. 라비크는 무작정 뛰쳐나온 조앙의 사정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라비크는 여자 혼자 밤을 떠도는 건 위험하다며 조앙이 하룻밤 묵을 장소에 대해 계속 훈수를 두었다. 이 지점에서 조앙은 갖가지 핑계를 대며 라비크가 권하는 모든 장소를 마다했다. 어쩔 수 없이 라비크는 조앙을 본인의 호텔로 데려갔다. 호텔로 올라가는 동안과 방에 들어서면서부터 잠옷을 챙겨주는 장면까지 당장 잠자리를 갖는 건 아니지만 말이 너무 많아 '차라리 어서 자버려라' 하는 맘이 절로 생겨났다. 아마 조앙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실은 그녀도 내가 기억한 이미지와 좀 달랐다. 성인이 된 나의 눈에 비친 그들은 처음부터 꽤나 서로에게 질척대는 모양새였다. 물론 후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드러나긴 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 기억 속 라비크는 점점 멀어지고, 결국 책장을 덮어 버렸다.    


수십 년간 기억해 온 나의 라비크는 가슴속 깊은 상처를 숨기고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뒤늦게 사랑을 깨닫는 우울하고 회의적인 캐릭터였다. 그런 그가 잔인하게 복수하는 클라이맥스는 사춘기 소녀의 맘을 사로잡았던 그 시설 영웅본색과 데자뷔를 이루며 더없이 멋스러웠더랬다.


씁쓸한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라비크 혹은 레마르크에 품어온 오래된 애정은 또 다른 번역서를 찾아보라며 마음을 다독거렸다. 출판사마다 번역의 편차는 심했다. 같은 상황, 같은 대사가 옮긴이의 손길에 따라 캐릭터는 수다스럽거나 진중해질 수 있음을 목격한 후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서관에 소장된 책을 만난 건 단지 그날의 운이 나빴을 뿐이고, 나의 라비크는 다시 살아났다.


레마르크는 역시 멋진 작가였다. 예전 기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번역본을 e북으로 구입했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8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가쁘게 읽어 내려갔다. 라비크로 살아갈 상상 속의 캐릭터는 조만간 다시 오픈될 예정이다.


*

덧글 하나,  기억의 오류가 있었다. 조앙은 여배우였고 가수였다.


덧글 둘, 그런 이유로 원문으로 읽어야 하겠지만 이번만큼은 원문이 도서관의 책과 같은 분위기일까 두려워 나는 어떤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았다.


덧글 셋. 시골집에 나의 손때가 가득한 고전문학 시리즈가 있다. 몇 달 후 찾은 그곳에서 누렇게 변색된 개선문의 첫 장을 넘기다 환희를 느끼는 나를 보았다. 지금의 번역보다 그때의 번역이 더 훌륭했음을 확인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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