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에게 배웠지요_2307161032
11월에는 퇴사를 한다.
마음이 흔들려 퇴사를 못할까 봐 여기저기 말하고 다닌다.
10년의 경력단절 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회사에서 6년째 일하고 있다. 그동안 직책은 변함없이 실장이었으나 일의 강도는 연봉이 오르는 것 이상으로 심해졌다. 연봉 협상을 할 때마다 꼭 받은 만큼만 일할 거야 다짐하지만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을 다 내어주는 너무 진심이 되어버리는 일, 전시기획이다.
전시기획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모든 기획이 그렇듯 한 집안의 엄마 역할이다. 한 아이를 잘 키워내기 위해 사전조사를 하고 어떤 아이로 키울 건지 방향성을 세워 세부전략과 로드맵을 그린다. 그다음 같이 키우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도움을 받아가며 한 단계씩 나아간다. 그렇게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지난한 과정에 치를 떨면서도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키면 나도 모르게 올인한다. 멋모를 때는 몰입인 줄 알았는데 마치 산고의 고통을 알고도 아이를 낳고 또 낳는 것처럼, 내 몸에 나쁜 줄 알면서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는 것처럼... 어느덧 내겐 중독이 되어버렸다.
일을 하면 나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게다가 일의 성과가 좋으면 아주 유능한 인재가 된 듯해 기분이 좋아지지만 거울 앞에 내 얼굴은 생기 없는 초췌한 늙음이 가득했다. 아무것도 감각하지 않는 마음상태가 얼굴과 몸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야말로 맹목적인 목적만을 향해 돌진하는 영혼 없는 좀비의 형상이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끝이 날 때까지 제대로 기획한 게 맞을까? 잘못 세팅이 되어 번복해야 하면 어떡하지, 이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안 되는데... 하는 수만 가지 불안으로 하루종일 두근거리고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6년 차가 되어도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지는 이 일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주 밖에 일이 아니었나 자문하는 날이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애정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며 나만 일이 어려운지 물어보았다. 다들 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연차를 가진 터라 진심 어린 공감과 조언을 해주었다.
그중 한 친구의 말은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의 돌멩이처럼 내 마음에 꽂혔다.
'한때는 해커 동아리를 할 만큼 저는 머리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영상을 편집하는 일을 하는데 편집이란 게 노가다와 좀 비슷해요. 시간과 체력만 있으면 되니까요. 물론 기획까지 같이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조금만 머리를 쓰는 일만 해요. 일할 땐 열심히 일하고 쉴 땐 내가 뭘 느끼고 사는지 정확히 아는 기쁨을 느끼며 살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제 서른이 될락 말락 한 친구의 글은 문학성이 가득한 문장으로 언제나 감탄을 자아낸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이의 말이라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내가 50년간 배워 온 최선은 내 능력 이상의 능력을 키우는 일이었다.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리면 최선은 자신의 능력의 80%를 쓰는 거란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삶이 곧 행복은 아니라는 걸 나는 왜 이제야 안 건 지... 어쩐지 노~오력 할수록 공허해지기만 하더라. 일을 안 할 수 없으니 60%만 내 능력을 쓰는 일을 찾고 싶어졌다. 아니면 80%를 써도 중독이 아닌 그 자체가 행복한 일, 이를테면 감정의 다양성을 충분히 느끼며 사는 일이 무엇일지 TJ형 인간답게 제대로 찾아보련다.
그로부터 얼마 후 대표에게 퇴직의사를 밝혔다. 당혹스러워하는 대표를 보자 속이 시원했다. 대표는 우리를 기다리는 수많은 전시관은 어떻게 할 거냐며 농담 반 진담 반 반문을 하다 단호한 내 표정에 얼른 웃음기를 거두었다. 반년 정도는 기다릴 수 있으니 휴직을 권유했다. 아이의 수능이 끝나면 긴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 퇴직금이 필요하다는 말에 대표는 가능한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고선 당선 확률이 20%도 안 되는 제안서 두 건을 연이어 내밀었다.(때로는 제안서와 무관하게 어마어마한 영업이 사업 이면에 이루어진다.) 그만둘 때까지는 해야 하는 일이라 또다시 그 지난한 날들을 보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제안서를 제출하는 날이면 이불속에 얼굴을 처박고 엉엉 울고 만다. 대부분은 시간에 쫓겨 제대로 숙고하지 못한 문구나 뒤늦게 깨달은 부족함 때문에 속이 상했지만 이번주에 제출한 제안서는 달랐다. 충분히 고민을 하고 방향성을 검증했다. 보여주고자 하는 공간의 콘셉트도 명확했다. 오래간만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쏟아낸 제안서여서, 스스로가 대견해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렇지만 잘하든 못하든 이런 식으로 매번 시뻘겋게 불타오르다 새하얀 재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이미 머릿속을 한가득 채운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동네 엄마들을 만나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나같이 그게 바로 '성장'이라며 누구나 다 일은 어렵다고 한다. 내 젊은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게 요즘 친구들의 문제란다.
'이런 올드한 친구들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