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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Sep 03. 2023

엄마는 무슨 글을 써?

2309030937

"엄마는 무슨 글을 써?"

"어? 일기 같은 글을 써. 근데 네가 쓰는 일기랑은 좀 달라."

"어떻게 다른데?"

"너는 오늘 겪은 일, 가까운 과거와 내일에 대한 생각을 쓰겠지만 엄마는 오래 살아왔잖아. 가끔 생각나는 예전 일들과 사람에 대해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 또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써! "


"그럼 그 사람들의 마음은 없는 거네!"

"어? 음… 그렇긴 하지. “


밤산책이 끝나고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아이가 갑자기 생각난 듯 질문했다. 간단하게 물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이의 마지막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게. 난 왜 이토록 이기적인 글쓰기가 글이라고 생각했을까?


과거의 나를 들여다보며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지 또는 이렇게 생각했으면 덜 상처받았을 텐데 등 모든 초점이 나로 향해 있는 글을 훑어보면서 모조리 발행 취소를 누르고픈 마음을 억누르느라 밤새 뒤척거렸다. 몇 개는 발행취소를 눌러야만 했다. 누군가는 자가치유법의 하나로 글쓰기를 추천한다고 한다. 나는 그 추천을 알지도 못했지만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치유성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글쓰기는 다른 한 편에서 보면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다. 나의 경우 쓰면 쓸수록 나는 정당해지고 나와 관계한 타자는 불합리한 존재로 강화된다. 그러다 마찰을 겪고 나면 정당한 내가 불합리한 그를 보듬고 승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비로소 나는 승리했다 뭐 이런 식으로 자가치유가 이루어진다. 여기엔 타자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정리한 내 마음이 더 소중해질 뿐. 아이의 말이 맞았다.


요즘 아이는 온통 나를 부정한다. 엄마는 언제나 엄마 마음이 중요한 사람이다. 엄마 기준으로 아무것도 안 한다고 판단한 자신을 보니 얼마나 엄마 마음이 힘들고 아프겠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엄마가 짐작한 대로 자신은 우울하지도, 보는 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제발 엄마 맘대로 자신을 판단하지 말아 달라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말 한마디가 자기를 가두는 창살 같다며 묵혀둔 말들을 밤마다 밤마다 쏟아낸다.


오! 이 말은 30년 전, 20년 전, 불과 5년 전에도 내가 나의 엄마한테 한 말이다. 나는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아이한테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의 엄마와 같은 존재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이래서 내가 밤마다 아이랑 산책을 나서면서 욕을 먹어도 먹어도 괜찮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진심으로 매일 밤 아이에게 사과를 한다.


그래, 우리 엄마도 내가 힘들 때 내 이야기는 귀담아 들어주셨어. 나도 충분히 그렇게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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