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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Mar 23. 2024

남들 다 하는 일상, 나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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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과의 통화가 끝나자 맞은편 식탁에 앉아있던 딸이 신경질을 냈다.


"하아! 나 공부 안 해버릴까 봐!"


손녀가 아파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그래서 대학진학이 어렵다고 어머니 눈높이에 맞춰 말씀드린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번엔 재수준비를 왜 하지 않냐고, 해야 하는데 왜 너는 시키지 않냐고 20분째 한숨을 내쉬어가며 역정을 내셨다. 지금은 괜찮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손녀의 안부는 안중에 없으셨다. 핸드폰 너머로 쩌렁쩌렁 울리는 통화내용을 고스란히 듣고 있는 딸을 보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어머니와의 전화를 끊었다.


"어머니…그건 세령이가 결정할 문제예요!"


딸은 긴 패딩점퍼를 반쯤 걸치고 집을 나가버렸다.


따라나설까 하다 망연히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속상한 마음, 억울한 마음, 미움 마음 오만가지 못생긴 마음들이 요동을 쳤다. 알 수 없는 가락을 흥얼거리며 안방에서 춤추듯 나온 남편이 내 얼굴을 보자 딸을 찾았다. 나는 방금 전 상황을 알려주었다. 남편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냥 학원 다니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말지 왜 그렇게 일을 키워?"


일을 키운다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바로 앞에서 애가 다 듣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해! 아직 다닐지 말지 계속 고민 중인 애한테. 당신은 자식보다 어머니 마음이 먼저겠지만 난 내 딸 마음이 먼저야!"




남편은 다시 안방으로 사라졌다. 한 달 전 딸이 대학입시를 잘 치러내지 못했다는 소식에 들고 있던 접시를 떨어뜨린 어머니는 자신이 아픈 이유의 8할은 공부 못하는 손자손녀 때문이라며 이젠 창피해서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겠다고 난리가 났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애들 교육 잘 못 시켜서 죄송하다고. 그러면 좀 누그러지실 줄 알았는데 더 난리가 났다.


이 상황을 지켜만 보던 남편의 얼굴이 점점 찌그러졌다. 왜 이해도 못할 분한테 굳이 대학 이야기를 해서 속상하시게 하냐며 그는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짐을 싸서 어머니 댁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삼 일 후 내가 보낸 긴 장문의 편지를 읽자마자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 방문을 두들린 후 수줍은 목소리로 아빠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다. (장문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당신이 회사 간 후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또 뭐라 하신 걸 아이들이 다 들었다. 당신이 어머니 마음을 풀어 드리는 동안 나와 아이들은 당신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머님 곁에서 잘 보신하다 돌아오라고 했다.) 


이번에도 아이들보다 어머니를 먼저 챙긴다면 나는 절대로 남편을 이해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내게 역정을 내신 어머니께만 서운한 마음을 갖자고 또 다짐을 했다. 양가적 다짐이 격렬하게 싸우는 새 두 볼이 잔뜩 상기된 딸이 돌아왔다.


아무 일 없는 듯 샤워를 한 후 내게 등을 돌리고 앉아 로션을 발라달라고 했다. 손바닥 한쪽으로도 가려질 가녀린 등에 로션을 발라주며 간지럼을 태웠다. 그제야 웃는 소리를 내는 아이가 말했다. 할머니랑 통화했어.


"설 전에 할머니가 오빠랑 나 때문에 동네 창피하다고 말씀하셨잖아. 그런데 아빠는 엄마랑 우리보다 할머니가 더 속상해한다고 짐 싸서 할머니집으로 가버렸고. 오늘도 같은 맥락이잖아. 그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내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모두 힘들잖아! 그래서 마음을 먹었던 거야!


'할머니! 내가 대학 못 간 거 오빠가 좋은 대학에 못 간 거 까지 창피하다고 하신 말씀 들었어요.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할머니가 알아요? 정말 너무 아파서 공부할 수 없었어요... 나는 머리도 나쁘고 공부도 못하니 할머니가 원하는 공부 잘하는 손녀가 절대로 될 수 없을 거예요.'라고...


근데 나 굉장히 이성적으로 똑똑하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막상 할머니 목소리 들으니까 너무 서러운 거야. 엉엉 울면서 겨우겨우 말했어."  


"괜찮아? 엄마도 아빠도 할 수 없는 일을 네가 했네... 할머니는 뭐라셔?"


"아빠랑 똑같지 뭐... 이 상황을 빨리 넘어가려고 대충 미안하다 하고 자꾸 끊으려고 하시지!"


"그래... 언젠간 아시겠지! 아빠처럼.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 엄마가 우리 딸한테 부끄럽다. 미안하고 고마워!"


솔직히 너무 너~무 통쾌했다. 아무리 위아래가 없는 나지만 어머니가 살아오신 삶을 알고 나니 더는 미워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 서운한 말씀을 듣고 살아갈 수는 없어서 나대로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를 풀고 있는 양 마음을 수련하고 있었다. 이제는 친정이 부자거나 좋은 학교로 아이를 진학시킨 지인들의 며느리와 비교하시며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나에 대한 불평은 얼마든지 웃으며 넘길 수 있다. 심지어 나도 부럽다며 맞장구칠 수 있다. 그러나 내 아이들이 창피하다는 말씀만은 참아지지 않았다.




나와 별개로 딸은 이번 일로 자신을 둘러싼 유리알을 깨트렸다. 깊은 우울을 통과하는 지난 3년 동안 저도 모르게 쌓였던 울분과 눌러놓았던 인내의 감정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꽃을 피웠다. 어느새 색색으로 만발한 유리알 속은 비가 내려 물기로 가득 찼다. 그것을 밖에서 지켜보는 나는 어떠했을까! 안에서 알을 깨는 아기새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어 밖에서 같이 쪼아주고, 혹여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지울 수 없는 생채기가 남을까 온종일 그 곁을 맴도는 어미새의 마음처럼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 아이를 제대로 케어했는지 자문하는 시간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T(나)가 F(딸)를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섬세하지 못한 내가 우울증을 앓는 아이의 보호자라니... 결국 아이는 스스로의 의지로 발가락을 펴고 무릎을 세우더니 마침내 허리를 폈다. 마지막 머리를 들기까지가 오히려 더 길고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세상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간절하면 뜻하지 않은 때에 뜻하지 않는 계기가 찾아오니까.


2월 초 졸업식에서 동네 언니를 만났다. 언니의 딸과 우리 딸은 초등학교 때 단짝친구였다. 그 사건 이후로 아이들은 아예 연락조차 안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지만 우리는 계속 만나고 있다. 언니의 딸도 우울증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모처럼 한 화장이 지워질 정도로 울고 또 울었던 유일한 학부모였다. (이유는 스스로가 너무 대견해서... 하하!) 서로를 보고 민망해서 커피나 마시러 가자고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왔다. 근황을 주고받던 중 암묵적으로 하지 않았던 그 사건에 대해 언니가 말을 꺼냈다.


"그때 피해를 본 애들 모두 우울증으로 너무 힘든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


총 다섯 명의 아이들이었다. 그중 둘은 중학교를 자퇴했고, 하나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가해자라 하긴 그렇지만 그 사건의 요주 인물이었던 아이는 중학교 때 일진이었다가 고등학교는 들어가자마자 자퇴했다는 소문은 들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어난 일이 그 후 10년의 시간을 앗아갔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못한 불행한 사건이었다. 물론 그 사건이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근거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시작이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 아이와 맞섰던 친구의 엄마가 그랬단다. 만일 그때 그러지 말고 최대한 피했다면 괜찮았을까 후회한다고… 특정할 수 없는 연민과 불편함과 안도감이 비처럼 내려왔다. 집에 오자마자 딸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딸은 방문을 닫고 오랫동안 키보드를 두드렸다. 며칠 뒤 딸에게 물었다. 혹시 그 사건이 너의 우울에 영향을 주었는지.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은 했었어. 근데 그때 친구들 모두 아프다니까 '이게 우울증에 걸릴만한 일이었구나' 싶어 좀 위로가 되네."




나는 여전히 우울증을 모른다. 아이가 괜찮다면 그런 줄 알고 힘들다면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며 가만히 지켜보는 일. 아무리 화가 나도 나 이외엔 누구에게도 속의 말을 한 적 없는 아이가 할머니께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어쩌면 우울증 걸릴 만한 일이었다는 공감이 아이의 머리를 들게 한 응원이 아니었을까 나는 짐작해 본다.


딸은 재수학원을 등록했다. 나는 2주일째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이가 공부하는 틈틈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싼다. 남편은 출근시간을 30분 앞당겨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회사로 향한다. 남들 다 하는 일상을 나도 남편도 딸도 하고 있다. 알이 깨졌다고 다음 알이 오지 않겠냐만은. 그래서 함부로 '행복하다'는 말은 하지 않으려 하는데…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늘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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