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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 년 만이다.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에세이 모임을 그만둔 지.
3주 전 '기다림이 없는 삶은 참 낙이 없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모임과 비슷한 결을 가진 모임을 찾아 결제버튼을 눌렀다. 생각이 결제로 이어지는데 단 10분.
‘모임 예정일까지 언제든 환불이 가능하다니까 이제부터 천천히 충동의 결과를 생각하지. 뭐!’
느긋한 기분에 취한 지도 잠시 그날부터 모임장이 추천한 책을 읽고 그 책과 연관된 에세이 한편을 뚝딱 쓰고는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다 지쳐버렸다.
모임이 일주일 전으로 다가오자 멤버들의 글이 하나씩 올라왔다. 일 년을 쉬는 새 세상은 달라졌다. 얼굴도 모르는 멤버들 글의 수준이 예전 모임을 능가했다.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다시 내 글을 들여다보며 또 고치고 새로 쓰고 다듬다 지쳐버렸다.
제출 마감일 이틀을 남겨두고 글을 올렸다. 모처럼 진한 시험준비를 치렀다.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이 이틀이나 남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시험지를 제출하고 정답을 채점하지 않는 건 나의 오랜 습관이자 삶의 태도니까.
합평에서의 피드백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 연장자 찬스도 한몫을 했고 4시간이 넘어가는 시점에 내 차례가 된 것도 한 몫했다. 다들 눈이 풀려 더는 평할 기운이 없어 보였고 나 역시도 어서어서 다음 차례로 넘어가길 바랐다.
마침내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어 끝이 났다. 누군가 뒤풀이가 있다며 소매를 잡아당겼다. 나는 그런 일정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는 듯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보이며 졸졸 따라갔다. 뒤풀이에 참석한 멤버는 9명. 장소가 바뀌고 조금 더 가까워진 거리를 두고 마주 앉으니 약간 친밀해졌고 다시 활기가 돌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한 멤버가 내게 물었다.
"언제부터 글을 쓰셨나요?"
"꽤 오래전부터 글을 쓰긴 했어요. 치유적 목적이 8 할인 글쓰기였죠. 근데 글을 쓴다고 나아지지는 않더라고요. 3년 전에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했어요. 글을 올리면서 어느 순간 알았어요.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줄 때 비로소 치유가 된다는 걸. 이제야 진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가끔 머리보다 입이 먼저 생각을 정리할 때가 있다. 이런 말을 하고 나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스타트업 회사에 다닌다는 멤버가 왜 지난번 에세이 모임으로 가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 모임은 평일 저녁인데 회사 일이 바빠져 평일은 어려워졌다. 대신 토요일에 하는 모임을 찾으려 했다고 마치 준비한 멘트인양 술술 답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다시 그 모임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음... 왜 엄두가 나지 않았을까? 뒤풀이가 끝나고도 그 의문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그 답을 깨달았다. 일 년이나 지나서 말이다.
그 모임은 글에 너무 진심이어서 매회마다 댓글과 좋아요가 멤버 수 이상으로 쌓였다. 댓글의 양과 수준도 에세이만큼이나 정성스럽다. 모임을 어쩌다 빠져도 그 댓글만으로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니까. 한 달의 반은 그들에게 내보일 에세이를 쓰느라 들떠있고 나머지 반은 다른 멤버들의 글에 댓글을 쓰고 내 글에 달린 댓글에 대댓글을 달면서 뭔지 모를 희열과 도파민이 치솟는 기분을 느꼈었다. 아마도 나는 모처럼 만난 글동무를 잃고 싶지 않아 그들에게 더 더 인정받고 싶어 졌고 결국 모든 일상이 글에 잠식되어 버렸다. 다시 말하자면 중독인 줄 모르고 너무 애를 쓰다 나가떨어진 것이다.
이번 모임은 제출시간 내에 글을 올리고 나면 내 글을 들여다볼 일이 없다. 댓글과 좋아요도 없고 멤버들의 글도 편하게 훑어보기만 하면 된다. 내 글에 대한 사전 평가가 없으니 모임 때까지 잊어버리고 하고 싶은 말은 만나서 하면 되니 얼마나 편한 지 모르겠다. 하고픈 일을 하는데 일상이 무척 가벼워진 느낌이다. 게다가 모임장의 북토크를 위한 책선정과 발제문도 맘에 들었다.
눈치 없이 조카뻘 아들뻘 되는 이들 틈에 낀다고 불편해할까 봐 잠시 그만둘까도 했지만.
일단 생기발랄한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이 즐겁고 같은 책과 글을 읽고 여러 감상평을 들어보는 시간이 너무나 그리웠으니… 그것만 생각하며 없는 듯 잘 버터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