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 Jun 30. 2022

이제 필요한 건 용기

가벼운 생활 4

빵 끈을 무의식적으로 모아두었는데, 몇 주 안 돼서 수북이 쌓였다. 지옥의 형벌소에 '내가 버린 쓰레기'의 방이 있다면, 나는 분명 빵 봉지와 빵 끈이 가득한 방에 가게 될 거야. 반짝거리는 빵 끈들을 보며 죄책감에 휩싸인다. 이걸 어떻게 사용할 방법이 없을까. 분리배출할 때마다 큰 봉투에 가득 찬 각종 비닐과 플라스틱 통들을 보면 내가 바로 환경오염의 주범인 듯하다. 나 같은 사람이 몇 명만 모이면 플라스틱 산은 순식간일 텐데.

대안을 찾다가 안 입는 티셔츠로 비닐 대용으로 사용할 빵 주머니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방을 둘러 막는 간단한 바느질이라 생각했지만 크기가 제법 커서 손끝이 저렸다. 뭉친 어깨에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이렇게 까지 할 일인가 싶어서 재봉틀이 갖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러면 봉지를 아끼는 것보다 더 큰 탄소 배출이 되려나, 그래도 하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갸우뚱 거리는 동안 손은 부지런히 움직여 주머니를 완성했다.


자, 이제 필요한 건 '용기'와 '빵'이다. 과연 빵 주머니에 빵을 담아 올 수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동네 빵집으로 갔다. 아직 비닐 포장 전인 빵 하나를 골라 트레이에 담았다. 그리고 최대한 담담하게 얘기했다. 빵집 주인이 수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            비닐봉지 말고 여기 넣어주세요.

장전해둔 총 마냥 가방 속으로 쥐고 있던 빵 주머니를 얼른 꺼내 내밀었다. 빵집 주인은 처음에 장바구니로 생각했는지 비닐을 가지고 와 빵을 담으려고 하셨다. 비닐로 빵을 담아 주머니에 넣어줄 생각이었는 듯하다.

-            아니... 아니요, 비닐 말고 여기 바로 담아주세요.

-            음... 빵가루 묻을 텐데, 괜찮아요?

-            네!

약간 긴장한 탓인지, 평소보다 언성이 높아졌다. 휴. 미션 클리어. 빵집 나오면서 이렇게 스릴 있기는 처음이네. 


주머니를 만들고 나서 자신감이 붙었는지 내친김에 구멍 나거나 보풀이 일어나 못 입는 티셔츠, 안 입는 타이츠와 스타킹을 모두 꺼냈다. 그리고 유튜브를 틀었다. ‘티셔츠로 실 만들기’. 티셔츠를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고 죽죽 잡아당겨 실로 만드니 검은색, 회색, 커피색 실타래가 생겼다. 그리고 다음 날 난생처음 뜨개방이란 곳을 찾았다. 실로 뭔가를 짜려면 코바늘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하고 머쓱하게 들어서니 아주머니들이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작은 가게 안엔 수세미부터 시작해 옷, 가방, 커튼 등 뜨개로 만든 물건들로 가득해서 이런 걸 보고 없는 것 빼곤 다 있다고 말하는구나 싶었다. 바늘과 실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을 거 같은 곳이다. 고구마를 까먹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비범해 보였다. 집에 돌아와 한번 더 유튜브의 도움을 받으며, 손동작을 더듬더듬 따라 했다. 영상을 계속 멈춰가며 힘겹게 완성한 티코스터는 어딘가 각이 맞지 않고 비뚤배뚤 했다. 그렇지만 이런 게 손맛이 아니겠어. 코스터에 올려둔 컵이 살짝 기우뚱한 건 기분 탓일 거야. 나의 첫 작품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instagram @mindful.table

매거진의 이전글 글로 배운 정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