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 Jun 23. 2022

글로 배운 정리

가벼운 생활 3

가득 쌓인 짐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우선 도서관에 가서 ‘정리’에 관한 책을 빌려 읽기로 했다. 어떤 책은 하루에 몇 분씩 시간을 정해 물건을 정리하라고 하고, 다른 책은 하루에 모든 물건을 다 꺼내어 모아놓고 필요한 것만 남기고 버리라는 조언을 했다. 실로 다양한 방법의 정리가 있었지만, 공통적인 건 모든 정리에 ‘비움’의 과정이 필수라는 거였다. 무슨 당연한 말을 하나 싶지만 난 여태껏 물건의 배치를 바꾸고 수납함을 새로 마련하는 ‘정돈’만 알았지 정리를 하려면 ‘버려야’ 한다는 걸 몰랐다.


한동안 책을 읽으며 글로 ‘정리’를 익히면서 대리 만족했다. 엄두가 나지 않아 막상 방 정리를 시작하진 못 했지만, 정리에 관한 책만 봐도 머릿속이 환기되는 듯해서 좋았다. 마치 인테리어 잡지를 보듯. 책에서 ‘미니멀리즘’이란 단어를 배웠고, ‘단샤리’라는 열풍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유난히 정리에 관한 일본인 저자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솔직히 정리에 관한 책을 볼 때마다 모델하우스같이 정갈한 집의 모습을 보며 100퍼센트 믿기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 ‘러브하우스’나 ‘신박한 정리’와 같은 집이 변신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저 모습이 과연 얼마나 유지될까, 의심을 쉬이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미니멀리즘 도서와 같은 칸에 꽂혀 있었던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라는 책을 만났다. 그런데 쓰레기 없이 산다는 저자가 1리터 병에 모은 일 년 치의 쓰레기의 양을 보고 뜨악했다. 텅 빈듯한 미니멀리즘 방은 많이 봤어도 이렇게 생활의 흔적이 유리병 하나에 담긴 건 처음이라 더 놀라웠다. 이런 삶이 정말 가능한 건가? ‘제로 웨이스트’가 뭐길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삶의 방식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 내가 갖고 있던 삶의 방식에 조금씩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활의 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