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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un 16. 2022

생활의 무게

가벼운 생활 2

대학에 들어가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매년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할 때마다 겪는 큰 난관은 미술 재료와 도구들을 옮기는 일이었다. 혹시나 전공에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모아둔 잡동사니들이 한가득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던 물건들이 나갈 때는 쉽지 않아서 처음에 몇 박스로 시작했던 서울살이가 나중에 트럭을 불러 꽉꽉 채워야 할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혼자 살면서 무슨 짐이 이렇게 많냐고 매번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다 필요한 거라면서 입을 삐죽이며 박스를 잘라 수납공간을 만들고 짐을 차곡차곡 테트리스처럼 정교하게 쑤셔 넣었다. 


예쁜 음료수병이나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패키지, 이국적인 느낌의 박스와 잡지에서 발견한 자료들을 모아 두고 책상은 물론, 벽면까지 빼곡히 채웠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과 구제 스타일의 독특한 옷, 다양한 액세서리들이 서랍과 옷장에 가득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이십 대 초반의 스타일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어딘가를 쏘다니며 무가지, 스티커, 맘에 드는 로고가 찍힌 티슈까지 나의 여정을 드러내는 별별 물건들이 쌓였다. 처음으로 독립해서 살며 ‘나만의 취향’으로 작은 방을 채워나가는 게 즐거웠었다. 


서울에 살면서 열 손가락 모자랄 정도로 이사를 하고 나니 어느 순간 원룸을 전전하며 옮겨 다니는 삶에 질려 버렸다. 바쁘기만 하고 나아지는 게 없는 생활이 의문스럽기만 했다. 그때 즈음부터였을까. 방에 있으면 즐거움보단 불안감이 들었다. 쌓인 물건들은 해결 못 한 일거리로 보이고 이내 숨이 막혔다. 내가 가진 짐은 곧 내가 책임져야 할 생활의 무게로 다가왔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었던 이십 대였는데, 마음만 급했었다. 밀린 학습지처럼 서두르는 만큼 내가 소화하지 못한 물건들이 쌓여 있었고 볼 때마다 나의 민낯을 보는 듯해서 부끄러웠다. 서른이 다가오는데 내가 가진 건 잠재력과 물건뿐이라니. 이제는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보다 할 수 있는 일에 좀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무엇을 선택하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골똘히 생각하다 ‘에잇’ 하며 복잡한 머릿속과 함께 방을 포맷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온갖 욕망이 뒤엉켜 있는 물건들, 어떤 건 시간이 지나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가능성을 위해 움켜쥐고 있었던 물건들을 이제는 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도 받아 들어야지. 물건에 붙은 미련을 지우고 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명확하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짐 정리부터 하자!’

생활의 무게를 덜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미래를 맞이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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