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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ul 28. 2022

만들어볼까요?

가벼운 생활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걸 찾다가 오래된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한 방송에서 강산에에게 지금 아내는 뭘 하고 있나요, 물어보니 천연 화장품을 만들고 있다고 답하는 티브이 속 장면. 카메라는 앵글을 옆으로 돌려 꾸밈없는 차림새에 재료 몇 가지를 두고 슥슥 무언가 만들고 있는 사람을 비추었다. 그 장면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을 줄은 몰랐지만, 아마도 화장품을 만들어 쓰는 것에 대한 로망이 그때부터 생겼을 거라 추측한다. 전에는 화장품을 만들어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화장품은 통에 담겨 있었고, 로션은 무엇으로 만들며 어떻게 생산되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공장을 거쳐 포장된 결과물이 당연한 모습인 줄 알다가, 만드는 과정을 보니 너무나 신기하고 재밌었다. 


기본 도구인 비커와 저울, 온도계를 주문하려 하니 과학 실험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미니멀리즘을 하자 해놓고 물건이 더 늘어나는 꼴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장기적으론 불필요한 화장품 소비와 쓰레기가 줄어들 거야, 자신을 다독이며 시약 스푼, 실리콘 주걱 등을 추가로 장바구니에 넣었다. 화장품 재료들도 담다가 요리할 때 쓰는 올리브나 코코넛 오일로도 로션을 만든다는 걸 알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소스를 얼굴에 바르는 기분이 든 달까. 어쨌든 레시피에 있는 내용에 따라 주문을 완료했다. 


도착한 재료들로 화장품 만드는 방법을 하나씩 따라 했다. 이게 과연 로션이 될까,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만드는 내내 의심스러웠다. 한번은 계량 실수로 물(수상층)과 기름 성분(유상층)이 잘 섞이지 않아 두 층으로 분리된 로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칠팔 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젠 꼭 레시피대로 하지 않아도 원하는 재료를 골라 대략 비율을 맞춰 만들 수 있다. 그래도 비율을 계산하고 온도를 체크하는 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여전히 신경이 곤두선다.


화장품을 담을 땐 되도록 플라스틱 대신 알루미늄이나 유리로 된 통을 쓰고, 다 쓴 화장품 통은 깨끗이 씻어 에탄올로 소독하고 재사용한다. 2~3개월에 한 번씩 화장품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 통씩 꺼내 쓰는데, 김치 냄새가 배지 않으려면 밀폐용백으로 몇 겹을 꽁꽁 싸 둬야 한다. 화장품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때론 함께 만들기도 하는데 반응이 좋다. 이렇게 늘 만들어 쓰다 보니 이제는 시중에 파는 화장품 가격도 생각나지 않는다. 로션 하나가 얼마였더라? 


instagram @mindful.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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