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련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 Oct 08. 2019

달리는 마음. 한강, 불꽃, 수프

2019. 10. 5. 토

오후 6시. 5.06km. 18도. 바람 3m/s(예보). 미세먼지 좋음.



날도 흐리고 달리러 나가기 전에 나른하고 졸렸다. 같이 달리는 친구들이 없었으면 분명 뛰지 않았을 날이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가 살갗에 닿는 느낌이 서늘했다. 긴팔 옷을 꺼내 입었다. 티셔츠 안에는 폴리로 된 나시를 입었다. 면 재질의 옷은 달리고 나서 땀을 머금고 있어서 체온을 더 떨어뜨리는 거 같았다. 예전에 러닝 후 땀이 식는데도 추위를 참고 놀다가 뒷날 몸살감기에 걸려 심하게 아팠던 경험이 있다. 그 뒤로는 까먹지 않고 손수건을 항상 챙기려고 한다. 나에게 손수건은 달리는 도중 땀을 닦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달리고 나서 체온 유지를 위한 응급처치 도구인 셈이다.

*

오늘은 조금 뛰기 싫은 날이니 나가기 전에 새로운 음악을 다운로드했다. 음악의 힘으로 달려봐야지. 다행히 오전보다 날씨가 맑아지고 미세먼지도 좋음으로 바뀌었다. 집에서 보이는 북한산이 선명해졌다. 날씨가 좋으면 달릴 기운이 저절로 난다. 러닝을 시작한 이후로 날씨에 더 민감해져서, 미세먼지, 강풍, 습도, 온도를 확인하는 게 이제 익숙하다.   

*

요새 해가 6시 반쯤 진다. 해가 지는 하늘의 색을 보기 위해 달리기를 한다. 남색, 보라, 핑크, 주황, 노랑. 일몰 시간이 나름 나의 베스트 러닝 타임인데, 그 시간대를 놓치면 달릴 의욕을 조금 상실해버린다. 오늘은 해질녘 하늘을 배경으로 유유자적 날아가는 왜가리 한 마리와 바삐 이동하는 청둥오리 두 마리를 봤다.

*

나는 새절역에서 출발하고 정 씨와 박 씨는 망원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중간쯤 월드컵경기장 근처에서 만나 한강 쪽으로 같이 뛰었다. 발밑으로 그림자 세 개가 나란히 어른거렸다. 주말 저녁이라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 사람들 사이로 요령 있게 뛰어야 했다. 어떤 자전거 탄 남학생 무리가 반대편에서 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 '미쳤구나.'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내가 왜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돌발행동에 경계하는 게 나았으려나. 잠시 후 보행로 중간에 갑자기 나타나서 질주하는 사람을 봤다.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달려갔다. 그러다 이어폰이 빠졌는지 잠시 멈춰 서서 귀에 뭔가를 다시 꼽았다. 서 있던 그 사람과 달리던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는데 위치가 거의 비슷해졌을 때 그분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초등학생 때 수영 시합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저 사람보다 빨리 달려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렇지만 그때 이미 그는 필사적으로 뛰어가 버린 뒤였다. 같은 학년 남자아이에게 지기 싫어서 숨도 안 쉬고 팔을 휘둘러 자유형을 했었는데. 왜 그랬을까.

*

한강에 도착했다. 반달이다. 말끔하고 예쁘다. 오늘은 5킬로 정도만 뛰기로 했다. 뛰고 나니 덥다. 긴 소매가 성가셨다. 페이스는 7분 16초. 뛰기 싫었던 마음에 비해 속도가 꽤 괜찮았다. 함께 뛰는 효과가 상당하다. 정 씨와 박 씨 덕분이다.

*

망원지구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요새 피크닉 도구도 대여를 한다고 한다. 세트 구성품에 네온사인도 있는지 어두운 잔디밭에 파인애플, 하트, 선인장 모양이 선명하게 보였다. 망원지구 '체험' 현장에 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남들 하는 거 한번 해보는 재미가 있겠지. 나는 부끄러워서 못 할 것 같지만.  

*

오늘은 여의도 불꽃 축제를 한다고 한다. 이왕 한강에 온 김에 잠시 구경하기로. 7시쯤 한강에 도착했으니 불꽃 축제까지 20분 정도가 남았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꼬마가 날리는 연이 높이 올라갔다. 추워서 바람막이 지퍼를 끝까지 채워 올렸다. 파바박- 하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불꽃 축제가 시작했다. 벤치 위에 올라가서 멀리서 터지는 폭죽을 봤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으려고 시도했으나 예쁜 모양이 일그러져 사진은 원폭 현장처럼 보였다. 폭죽이 터질 때마다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함성은 파도타기 같았다. 반짝이며 동그랗게 폭발하는 것에 이유 없이 아름다움을 느꼈다.  

*

추워서 돌아오는 길에 야미요밀에 들려 채식 수프(토마토 렌틸 수프)를 먹었다. 속이 따듯해져서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는 마음.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