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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08. 2019

달리는 마음. 시작

2019. 10. 3. 목

2019. 10. 3. 목. 개천절. 오후 6시. 7.02킬로. 24도. 미세먼지 좋음.



같은 길을 달려도 매번 다른 풍경이다. 모니터만 보다가 하늘을 보면 항상 좋다. 벅찬 기분. 달리기 일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한쪽 구석에 계속 방치해두고 있었다. 나이키 러닝 앱으로 달린 거리와 속도가 풍경과 함께 기록되어 있지만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날이 어떻게 안녕했나 하는.


그런데 살다 보면 나를 몰아치는 일은 많고 그 정신없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달리는데 달리고 나면 모든 게 깔끔히 리셋되고 그러면 기록해야지 하는 마음도 잊어버렸다. 한편으론 소중한 취미인 달리기까지 기록해야 하는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달리기를 하라고 누구를 부추길 생각도 설득할 마음도 크게 없다만. 달리기는 '그저 좋은 것'이고, 일기는 '그저 재밌는 것'이라. 좋은 건 자꾸 꺼내보고 싶은데 달리고 나면 사라지는게 아까워서. 그래서.  


*

친구 정 씨가 있다. 주말에 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같이 뛰는 친구다. 근데 그렇게 같이 뛴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었다고 어느 날 브런치 글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알려줬다. 우리라고 하는 건 작년 가을부터 함께 뛴 박 씨도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계기 없이 달리기 기록을 시작하기 쉽지 않았는데 출발의 총성을 정 씨가 쐈다. 딱- 하는 소리가 들리면 이러나저러나 달려야한다. 처음엔 천천히 스텝을 떼면서. 나는 글 쓰는 게 매우 느린 편인데 슥슥 써 내려간 정 씨의 글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앞장서서 시원하게 나아가면 뒤따라가는 사람도 훨씬 달리기 편해진다. 정 씨는 달리기 속도가 나보다 빨라서 대개 나는 그녀의 등을 보고 뛴다. 이번에도 정 씨의 발걸음을 잘 따라가면 될까. 출발에 흥분해서 빨리 뛰면 얼마 못 가 힘이 빠진다. 터놓은 길을 따라가며 나의 페이스를 찾아야겠다.


*

이번 여름은 작년만큼 잔혹하진 않았지만 습하고 공기가 무거워 밤에도 달리기 어려운 날씨가 많았다. 그래서 달리기를 한동안 쉬었더니 몸 상태가 달리기 처음 시작할 때처럼 돌아갔다. 체력이 느는 건 더디면서 다시 줄어드는 건 어쩜 이렇게 금방인지 내 몸뚱이지만 정말 너무하구나 싶었다. 달리기하지 않으면 나는 평상시에 거의 움직임이 없는 건가. 산책도 날이 좋아야 가능하지, 흥. 내 유전자와 날씨 핑계를 실컷 했다. 김연수 작가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마음으로 달렸더니 폭우, 폭설에도 뛸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일까 매우 의심스러웠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해야 러닝용 미끼로 만들 수 있는지······.


*  

아무튼 오늘의 달리는 동안 나의 마음.

저녁 6시 노을 지는 하늘의 그라데이션과 맑은 초승달이 아름다웠던 날. 공기도 깨끗하고 웬일로 두 발이 가벼웠다. 24도. 여름밤 같은 느낌. 한낮엔 볕이 뜨거웠다. 낮에 많이 걸었는데도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페이스가 빠르다. 가을이 되어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서 몸이 무거워 페이스는 8, 9분 대로 천천히 뛰었는데 오늘은 7분대로 진입한 것 같다. 정 씨에게 평소보다 덜 뒤처지고 가까운 거리에서 나란히 뛸 수 있었다. 그래도 5킬로가 넘으니 확 지치는 게 느껴졌다. 다리가 묵직해지면서 달리기 싫은 마음이 작게 하나 삐죽 올라왔다. 총 7킬로를 뛰었다. 허벅지가 땅땅해지는 느낌. 땀이 확실하게 나는 꽤 성취감이 드는 거리다. 불광천에서 시작해서 한강을 거쳐 합정에 있는 단골 카페까지 갔다. 처음 같이 뛰기 시작하면서 일요일 아침 자주 뛰었던 길이다. 우리에겐 클래식 코스. 이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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