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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pr 01. 2021

나의 구멍

황집중의 단련일기 5호

나에겐 나를 겪어본 사람들만이 아는 구멍이 있다. 예를 들어 한 번도 지각하지 않던 애가 시험 날 늦잠을 자서 시험을 놓친다거나 하는 일(다른 애들은 당연히 내가 수업에 온 줄 알고 아무도 연락을 안 한다).


‘너는 그냥 네가 알아서 잘할 것 같아.’


정확하게 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 이런 말을 종종 들으며 자랐다. 나를 신뢰하는 말인지, 내게 관심이 없다는 표현인지, 아니면 내가 조언을 해봤자 듣지 않을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건지, 늘 아리송한 말. 하지만 그들의 기대만큼 난 그냥 알아서 잘하지 못한다. 때때로 나의 구멍은 개그로 승화되어 그들과 마주 보고 깔깔 웃는다. 사람들이 ‘의외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면, 뒤돌아서 구멍을 수습하는건 오롯이 혼자의 몫이다.


혹시 [단련일기]를 열심히 읽으신 분들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여기 황집중이라는 인물이 삼 년 다이어리도 꾸준히 쓰고, 필사에 도전하고, 단식까지 했다는 글을 읽으며 나라는 사람을 상당히 하드코어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부끄럽게 이름도 ‘집중'이다. 사람마다 각자 어울리는 옷이 있듯 집중이라는 이름은 나와 썩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어느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 목록 중에 우연히 발견한, 무릎을 '탁' 치는 이름이었는데, 그분 모르게 어쩌다 내가 쓰고 있다. 


난 작심삼일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계속 좋아하기 위해선 세 번 연속으로 해선 안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매일매일 하기보다는 퐁당퐁당 건너뛰며 한다. 뭐 사람마다 색연필을 괜히 빨주노초파남보로 배열한다든지 보도블록의 금을 밟지 않는다든지 하는 귀여운 강박 하나쯤 있지 않나. (없다고요?ㅜㅜ) 나는 맛있는 것도 연이어 두 번까지만 먹고, 맘에 드는 카페도 두 번 이상 연달아 가지 않는다. 세 번 하면 분명 질려버릴 게 뻔하다. 급하게 빠지고 쉽게 식는 마음보다 서서히 물드는 걸 이상적이라 여긴다. (어쩌면 이름을 '황집중'이 아닌 '황시나브로'라고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고로, 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부러 새해 다짐을 완벽하게 지키고 있지 않아요, 라고 말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고 그냥 단지 1분기가 끝나는 시점에 다짐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에 당황하여 아무 말이나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이가 들수록 구멍 앞에서 점점 뻔뻔해지는 건지 떨어지는 체력만큼 후회와 반성도 덜 한다. 하지만 이런 나를 고백하는 건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속으론 부디 누군가 내 구멍을 발견하고 틈을 메워주길 바라며, 손을 뻗는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아침 요가를 온라인으로 함께 해준 정수련과 박연습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박연습은 요즘 실제론 참여 안 해도 상징적으로 함께 하고 있다.) 비록 지금 새해 다짐이 뭐였나, 지난 뉴스레터를 다시 뒤져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 덕에 무의미하게 지나가진 않은 듯 하다. 아침을 함께 여는 친구들이 있어 나의 하루가 덜 불안하다. 그리고 나의 구멍이 [단련일기] 친구들과 함께 조금 작아진 기분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 계속해봅시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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