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없던 단어 "중2병"이 쌔게 걸렸던 나는 공부가 하기 싫어서 공고를 들어갔다.
그래도 내 백분율의 맞는 학교에서 3번째로 높았던 건축과를 들어갔다.
건축과에 갔으니 나의 꿈은 건축사가 꿈이었다.
고등학교 때 아무래도 인문계와 비교하면 공부는 정말 안 했지만, 우리 과 친구들은 건축 실습에는 진심으로 열심히 했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일주일에 실습시간만 10시간이 주어졌다.
매주 화요일 오후, 수요일 종일 10시간 풀로 건축 실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제도, 의장(스케치), 목공, 재료, 캐드 참 열심히 했었다.
몇몇 친구들은 건축 학원을 다니면서 제도 기능사, 실내건축 기능사를 취득하고,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독학을 해서 필기, 실기를 보았다.
제도 시험은 필기에서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지고, 실내건축 기능사는 필기를 붙고 방과 후에 실기 시험 준비를 했었다.
만약 제도 기능사 필기를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실기도 붙고 건축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도는 말 그대로 제도판에서 자를 대고 선을 그어서 도면을 그리기 때문에 재능과는 무관했다.
하지만 실내건축 기능사는 실기 시험이 입면도, 투시도를 그리고 커튼이나 장식 같은 것들을 스케치도 해야 하고 파스텔로 색칠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스케치에 재능이 없었다.
그리고 방과 후에 남아서 실기시험 준비를 할 때 색칠까지 다 마무리 지은 도면을 선생님께 보여드리면 "음.. 너는 색감이 없구나 허허"라는 말씀을 들었다.
스케치도 어울리는 색감도 없던 그냥 재능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
실기시험만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시험을 볼 때 바로 전날에 연습했던 부엌이 나왔다.
드디어 붙겠구나 생각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떨어졌다.
그때는 어린 나이에 진짜 좌절을 한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난다 세 번째 실내건축 기능사 실기 시험을 떨어지고 친구 앞에서 펑펑 울면서
"나 건축 안 해!!!!!"라고 고성을 질렀다.
그 이후 매주하는 실습시간에도 대충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한 문제 차이로 필기시험 떨어진 제도 기능사 자격증이라도 따놓고 떨어졌다면 건축을 포기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공고였지만 독서실 다니며 공부를 했고, 내신 성적이 좋아서 참 운이 좋게 수시로 대학을 전산과로 가게 되었다.
원래는 전공과목만 지원 가능했지만 특정 대학 하나만 다른 과도 지원이 가능했다.
이렇게 전산과가 붙어버렸다.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을 만나면 "기능사 따위에 건축 포기한 너도 참 웃기다"며 놀리지만 그때 나는 정말 답이 없어 보였다.
그 이후 애매한 3년제 전산과를 졸업하고 바로 2007년에 중소기업에 개발자로 취업을 했다.
매일 열심히 밤새고 일하던 2010년, 나의 아내의 이야기다.
아내는 2010년 노량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세대이다.
2010년 그 당시 아내는 20대 초반이었다.
인서울 4년제를 다니다가 중퇴를 하고 공시생으로 노량진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때 반에서 3등 안에 들었던 성적으로 처음 시도는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그다음 7급, 그다음 9급을 공부했다고 했다.
현실은 쉽지 않았고 공부를 3년째 하던 날 9급 공무원 시험에서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고 했다.
영문학과여서 영어를 조금 가볍게 생각했는지 영어에서 한 문제 차이로 커트라인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 이후 23살 되던 해에 공무원 공부를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31살 여전히 개발자를 하고 있었고, 편입을 해서 대졸 졸업장을 받고, 오래 연애한 여자친구가 바람이 나서 이별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였다.
매일 술독에 찌들어 살고 있던 나에게 고등학교 친구 와이프가 여자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원래 소개해주려 한 여자가 헤어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 같다며, 친구 와이프는 소개해준다고 약속은 했으니 직장 신입 사원을 데리고 나왔다.
친구 와이프는 신입 사원한테 "맛있는 거 사줄게~ 그냥 열심히 먹어~"라며 꼬셔서 데리고 나왔다.
이렇게 나온 그 신입사원과 나는 24살, 31살에 연애를 시작하고 1년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알고 보니 서비스 직이라서 잘 웃었던.. 하하 예뻤다.
만약 그 한 문제 차이로 아내가 공무원이 되었다면 나를 만날 인연이 있었을까, 전혀 접점이 없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한 회사를 다니며 회사가 망해가는 시점에 퇴사를 하고, 회사 동료가 사이버수사대 경찰되어서 나도 경찰 경력채용에 관심이 생겼다.
개발자도 경찰이 될 수 있는 자격 요건에 신기해하면서 경찰이 된 회사 선배를 만나서 이런저런 많은 것들을 물어봤다.
그 당시 자격요건이 IT실무경력 4년 이상, 정보처리 기사 또는 산업기사 자격증 보유자였다.
나는 한 회사를 다니면서 자격증에 대한 의미가 없었다.
이미 경력은 11년이고 자격증이 없어도 이미 고급 개발자였기 때문에 자격증을 취득할 생각도 안 했었다.
하지만 자격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그 당시 4살이었던 첫째 아들과 야근하며 못하던 육아도 하고, 추억도 쌓으며 자격증 공부를 하자 생각하고 6개월을 쉬었다.
정보처리 기사, 정보처리 산업기사 둘 중에 하나만 취득해도 지원이 가능했기에 인터넷강의를 보고 공부를 했다.
공부하는 시점에 나의 입사동료인 형님도 사이버수사대 경찰이 되었다.
나는 조급함이 들었다.
공부를 해도 불안했다.
만약 자격증을 따도 경력채용 필기시험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놀면서 가능한 일인지도 감이 안 왔다.
인생이 참 얄궂다.
인터넷강의 강사님이 찍어준 문제들이 필기시험에 아예 안 나왔다.
이렇게 정보처리 기사 필기는 불합격하고, 정보처리 산업기사 필기는 합격이었다.
그래도 산업기사라도 취득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실기를 봤었다.
실기시험 중 USB의 약자를 풀어서 쓰시오란 문제가 나왔는데,
USB : Universal Serial Bus을 Sereal로 적은 것 같아서 계속 불안했는데 역시나 이 한 문제 차이로 불합격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고 슬프다..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났고 더 이상 일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다 예전 같이 일했던 과장님의 추천으로 계약직 면접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계약직이 개발자 프리랜서였다.
경력은 이미 고급 개발자(경력 9년 이상) 였지만 우물 안에 개구리였기 때문에 중급(5년~8년) 개발자로 프로젝트를 시작을 했다.
정직원일 때 연봉 5000이 넘었지만 월급은 세후 300 후반 대였다.
프리랜서로 첫 프로젝트 때 통장에 급여로 500만 원이 들어왔다.
참 신기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이렇게 받을 수 있다고?! 란 의문이 더 컸다.
물론 직무상 야근은 언제나 항상 했었다.
이렇게 6년간 프리랜서로 대기업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지금은 억대연봉이 되었다.
물론 정직원이 아니라서 불안정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흘러온 것도 참 신기하다.
그 한 문제 차이가 실패가 아닌 인생이 참 재밌게 흘러간 것 같다.
한 문제 차이로 건축에서 개발자가 되었고,
한 문제 차이로 아내를 만났고, 한 문제 차이로 경찰의 꿈은 접었지만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 문제 차이로 실패했다면, 너무 낙담하지 말고 그 한 문제로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다 보면 인생의 진짜 길을 보여줄 때도 있는 것 같다.
아쉽게 놓친 그 한 문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 버릴 수도 있다.
실패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