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개발자의 삶
프리랜서라고 하면 "프리해서 프리랜서 아니야?"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물론 정직원보다 일을 관두는 건 쉽다. 프로젝트에 투입돼서 자의적으로 나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정말 힘들어도 무조건 마무리 짓고 연장을 하지 않거나 특정 대기업 프로젝트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가끔 말도 안 되는 개발일정을 보고 도망하는 분들도 계신다. 몸이 안 좋아져서 관둔다고 하지만 도망간 걸 모를 리 없다.
프리랜서 개발자들이 계약해지 당하는 케이스 크게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트러블이다. 프로젝트 PM(Project Manager), PL(Project Leader)은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프리랜서 개발자가 투입 전에 인터뷰(면접)를 PL과 진행한다. 인터뷰에 통과하면 PL이 내 소속 업체와 계약을 하면 개발자도 업체와 계약을 하고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PM이나 PL의 지사항이나 회의를 할 때 싸우거나 말다툼을 자주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잘릴 수 있다. PL이 업체에 연락해서 "계약 오늘까지만 합시다"라고 하면 당장 내일 짐을 싸서 철수를 해야 한다.
프로젝트 룸에서 말다툼하는 큰소리가 나면 그다음 날 누군가 한 명은 짐을 싸서 사무실에 나가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프리랜서 개발자는 갑(현업), 을(수행사), 병(계약 업체), 정(개인) 정의 입장이다. 갑질하면 참고 버티거나 크게 한번 화내고 잘리는 게 현실이다.
두 번째, 개발일정 내 개발지연 (개발 퍼포먼스)이다. 개발 못하는 사람은 가차 없이 잘린다. 업무에 대한 이해도, 개발스킬, 문제해결능력 부족해서 계약해지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전에 물류 프로젝트에 땜빵(개발자 이탈)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입고, 출고 개발하던 부장급 개발자가 두 달이 돼 가도록 개발을 못하고 불평, 불만만 늘어놓다가 PM이 잘라버렸다고 한다. 물류에서 입고, 재고, 출고가 핵심 프로세스인데 입고, 출고가 개발이 안되니 개발자 한 명 때문에 30명이 넘는 개발자들이 손 놓고 기다리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개발일정을 못 지켜서 계약해지 당하는 개발자들도 생각보다 많다. 프로젝트를 들어갈 때마다 3~5명 정도 짐을 챙기고 자기 모니터를 박스에 넣고 철수하는 분들을 항상 보았다. 나는 중간에 잘리는 분들이 결코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임을 전가해서 잘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세 번째, 근무태도이다. 자주 지각을 하거나, PM, PL에게도 미리 연락도 안 하고 잠수를 타거나 계속 자리를 비우는 사람들은 계약해지 될 수 있다. 일이 있건 없건 자리를 지켜야 한다. 예전 프로젝트 때 여자 대리 한 명이 일주일에 두세 번 오후에 출근하던 분이 있었다. PL에게도 연락도 안 하고 연락도 안 받고 PL이 딱 3번만 눈감아주고 바로 계약 해지를 했었다. 그리고 어떤 차장님은 오후에 수첩을 가지고 회의 가는 척하고 퇴근하는 분이 있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우연히 PL이 차 타고 나가는 걸 목격해서 그분도 그다음 날 계약해지가 되었다. 나도 현재 프로젝트에서 오전에 같은 업체 소속 개발자들과 한 시간 커피타임을 가진 적이 있다. 어느 날 커피를 마시고 올라왔는데 파트장님이 "책임님 제가 모르는 회의가 있나요?!"라고 말씀하신 이후로 오전 커피타임에서 빠졌다. 같은 업체 개발자분들은 발끈해서 우리한테 근태 가지고 터치하면 우리가 매일 야근하고 늦게 가는 건 왜 보상 안 해주냐고 하시는데 어쩔 수가 없다. 갑의 말이고 SM(운영, 유지보수)에서는 파트장도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글의 첫 문장처럼 프리랜서가 프리하지 않은 제일 큰 이유는 레퍼런스체크이다. 프리랜서 개발자의 프로필(이력서)은 양식부터 다르다. 기본적인 인적사항, 자격증 사항, 이후로 프로젝트 이력을 적는 부분이 있다. 프로젝트명, 고객사, 수행사, 개발 web, 개발언어, 개발툴, 개발 특이사항, 프로젝트에 했던 업무에 대해 기술한다. 수행 사라고 하면 고객의 프로젝트를 수주받는 대기업 IT이며 삼성 SDS, LGCNS, GSITM, 롯데정보통신, SK네트웍스, 한화시스템 기타 등등이 있으며 수행사 PL 님들이 하는 말은 "두 다리 건너면 레퍼런스 체크 가능하다"였다. 인터뷰(면접)를 보고 마음에 들면 레퍼런스체크를 무조건 한다. 프로젝트 이력을 보고 자기 관리자에게 물어보든 수소문하여 프로젝트를 했던 직원을 찾아 연락해서 "ㅇㅇㅇ 개발자 어때요?"라고 물어본다. 5번이든 10번이든 한 번이라도 "별로야"라는 대답을 들으면 탈락하게 된다. 평판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젝트에서 중간 이탈 없이 무조건 끝내야 한다.
예전에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을 때 특정 수행사 PM님이 우리 개발자들에게 "여러분들 고생 너무 많았습니다. 제가 인재풀에 추천 인재로 등록해 놓을게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블랙리스트도 관리한다는 뜻으로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를 알아보는 시점에 친한 부장님과 식사를 했는데 부장님께서 "너 ㅇㅇ프로젝트 가? 너 레퍼런스 체크 와서 내가 그저 빛이라고 말해놨어 하하하"라고 하셨다. 나는 인터뷰도 보지 않았는데 레퍼런스 체크를 했다는 부분에서 기분이 확 상해서 해당 프로젝트에 가지 않았다.
작년에 나를 여기 프로젝트로 추천해 주셨던 부장님께서 철수를 하게 되었다. 말이 철수지 잘리셨다. 파트장을 하고 계셨는데 진행되는 일이 6~8개가 동시에 진행되니 너무 힘들어하셨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계속 일하시고 부장님은 나날이 살이 쭉쭉 빠지고 계셨다. 얼굴색도 잿빛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다 마무리 짓고 나니 위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부장님은 오히려 잘됬다고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나갈 것 같다고 철수를 하셨다. 그렇게 다른 프로젝트로 가시고 저녁식사를 한번 했었는데 얼굴색도 큰 풍채도 돌아와 계셨다. 한 가지 일만 하니까 마음도 편하고 거기가 지옥이라는 걸 새삼 느끼신다고 했다. 나는 부장님이 오히려 나가신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SI(시스템 개발) 설계자분과 대화 중에 부장님 얘기가 나왔는데 부장님이 너무 까칠하고, 너무 네거티브해서 윗선들에게 평판이 많이 안 좋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났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내가 아는 부장님은 그렇게 몸과 시간을 갈아 넣으면서 주말도 안 쉬고 개고생을 하셨는데.. 여기서도 갑들과의 입장차이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예전 MES(제조 실행 시스템) 프로젝트 때 함께 개발했던 차장님께서 나에게 "항상 긴장해야 해. 이 바닥은 언제 잘릴지 몰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러면서 예전에 프로젝트를 들어갔는데 1달 만에 잘렸다고 했다. 그때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고 멘털과 자존감이 박살이 나서 3달 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하셨다. 너무 상처받았고 그래도 집안에 가장이니까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개발 잘하는 사람도 이렇게 하루아침에 잘릴 수 있구나" 란 생각이 들면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요즘은 당장 내일 잘려도 이상할 거 없는 살얼음판에서 일하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 업체들에게 프로젝트 관련 메일이 오는데 여전히 프로젝트가 없다. 주위에 6개월 이상 쉰 개발자들도 많고 프리랜서는 일을 안 하면 수입이 0원이다. 점점 쉬는 프리랜서 개발자들은 많아지고 수행사에서 적은 단가를 불러도 무조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자 단가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고 한다. 예전엔 철수 한 달 전에 3개 정도 프로젝트 인터뷰를 보고 골라갔었지만 지금은 프리랜서 개발자들끼리 경쟁 면접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도 슬슬 내 업으로 생각한 개발자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24살부터 42살까지 개발자로만 살아왔는데 개발 말고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는데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둘째가 이제 4살인데 25년은 더 일해야 하는데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