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언제나 평범한 하루, 내가 담당하는 회사에서 메일이 왔다. 작년에 하던 작업에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 했다. 원래 본업무는 따로 있고 다른 업무인데, 올해부터 특정 회사 운영 담당자를 나로 지정했다. 나에겐 권한이 없다. 수행사 직원이 하라고 하면 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 업무를 잘 몰랐다. 해당 업무는 비수기가 많아서 1년에 큰 작업 3개 정도만 하면 되는데 현재로서 내가 아는 작업은 1개밖에 몰랐다. 몰랐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기존 담당자(프리랜서)가 철수하면서 업무에 대해 설명을 안 해주고 그냥 매뉴얼과 엑셀 파일만 던져주고 갔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런가?"란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해야 하기 때문에 매뉴얼과 문서를 거의 500번은 넘게 보았다. 개발이 아닌 SAP 업무라서 답답함과 막막함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메일 내용을 보고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해당 업무를 잘 아는 분에게 물어보니 이래저래 해서 불가하다고 해서 불가하다고 현업에 답변을 했다. 내가 겪어보질 않아서 들은 그대로 답변 메일을 보냈다. 계속 같은 내용으로 답변이 온다. "내가 설명이 부족한가?"란 생각에 더 자세히 물어보고 더 자세히 답변 메일을 보냈다. 또다시 같은 내용의 요청 내용이 왔다. 특유의 갑질하는 느낌이 들었다. "응 이런 거 저런 거 난 모르니 해줘~" 나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저 "아 몰라 우린 불편하니까 해줘"로 밖에 생각이 안 들었다. 만약 내가 개발한 화면이었으면 이미 해줬을 것 같지만 SAP모듈을 우리가 마음대로 변경할 수가 없다. 같은 내용으로 거의 다섯 번의 메일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현업에서 발작버튼이 눌렸다.
갑자기 현업에서 전화가 와서 그 특유의 갑의 말투로 나에게 쏘아붙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사실 이 업무를 잘 모릅니다"라고 할 순 없으니 메일로 답변드린 것처럼 이래저래 해서 불가합니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그 당시 협의했던 현업 담당자가 누구였느니 그 당시의 담당자는 누구였느니 스피커 폰으로 현업 세 명이서 쏘아붙이니 정말 당황했었다. 그러던 중 작은 소리로 "이 사람은 업무를 잘 모르나 봐~" 이런 소리가 들리면서 우리 쪽 리더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리더랑 통화하겠다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바로 리더님 자리에 가서 해당 상황을 얘기하고 내가 다시 한번 설득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현업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SaaS(Software as a Service)는 클라우드 기반의 소프트웨어 제공 모델은 우리도 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현업 요구사항에 대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개발한 프로그램이라면 공수를 잡아서 변경 작업을 하겠지만 SaaS 프로그램은 제약이 많다.
현업과 다시 한번 얘기를 해서 해당 사항은 불가한 거로 결론 내렸다. 여전히 갑질에는 내성이 없다. 나도 이 업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당당하지 못한 걸 들킨 것 같다는 부끄러움도 있었다. 멘털에 타격이 컸는지 퇴근하고 집에서 잠을 자려 누웠는데도 계속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계속 두근거린다. 계속 꿈에서도 그 일을 하면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살펴보는 장면을 꾸었다.
토요일 주말, 잠에서 깼을 때 순간 예전 재밌게 정주행 했던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할머니께서 해주시던 명대사 중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가 생각이 났다. 나도 마음속으로 "어제는 지났다. 오늘을 살자"란 생각이 들면서 어제 있었던 일은 이미 지나갔고 오늘을 잘 지내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어제 마음고생했던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어제는 지났으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드라마 명대사가 나에게 이렇게 크게 위안이 될 줄은 몰랐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토요일을 보내게 되었다.
항상 매주 일요일 밤에 자기 전에 유튜브로 동기부여 영상을 보고 일주일을 버티려는 각오를 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란 다짐을 항상 한다. 요즘은 이렇게 하루가 지나면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뭐가 남아 있나란 생각이 들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의미 부여를 하기보단 그냥 하루를 잘 보내는 거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마음에 드는 드라마 명대사들을 찾아서 따로 메모를 하고 심적으로 힘들 때 찾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