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상해 여행기: 명주 미술관(Pearl art museum)
약 10년 전 기억을 떠오르면 무얼 먼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실, 기억이 많지는 않다. 당시 대학생활에 갓 익숙해진 20살에게 핑계를 주자면 워낙에 기억력이 얕은 머리다.
어쨌든, 그럼에도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한 달간 방문하여 미술을 공부하고 애니메이션 워크숍을 다녀온 경험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국가에서 대학의 여러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정책들 덕분에 좋은 행운을 인생에 새길 수 있던 것이다. 첫 해외여행이 유럽이었던 데다 동경하던 모네의 수련 시리즈와 요하네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으니 꿈을 꾸었다고 착각할 만했다. (그리곤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그 흔한, 워킹 홀리데이, 여행도 가보지 못했으니)
https://www.introducingprague.com/mucha-museum
그 클라이맥스에는 체코를 대표하는 예술가 알폰스 무하가 있었다. 당시, 나는 그 신비스럽고 신화스러운 그림들을 담고 싶어 큰 마음을 먹고 10유로짜리 책갈피를 샀다. 지금 생각하면 조악 하디 그지없는 그 플라스틱에 나는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을 쏟았다. 누구에게나 마음속 최애를 품는 것처럼.
그리고 10년 뒤, 뒷모습만 아련하게 간직하던 그 무하를 상해에서 다시 만났다. 여름마다 상해에서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다니다 보니 벌써, 여권에 찍힌 상해 푸동 공항 출입 도장이 열 손가락으로도 세기 힘들 때였다. 어쩌면 그만큼 일상적인 공간이 되어버린 상해에서 나는 무얼 해야 좋을지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니 상해 지하철 광고판이 내뿜는 빛을 바라보다 우연하게 발견한 그것은 잃어버린 기억을 만지듯, 무뎌진 감각을 갈아내듯, 불쑥 마음을 들쑤셨다. 그때 그 책갈피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광고판 속 무하의 그림처럼 여전히 빛났을 텐데, 곱씹으며 말이다.
상해 지하철 10호선 라인이 지겨워진 때쯤 도착하는 龙柏新村站 (Longbai newly state station)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가면 Agean place라는 거대 쇼핑몰이 보인다. 그곳 8층 명주미술관(pearl art museum)에서 무하가 기다린다.
(상해에서는 예술 창작 센터, 특히 미술관이 많으며 자본력이 풍부해서 그런지 엄청난 전시들이 곳곳에서 열린다. 이번 여행에서는 무하 외에도 폐공장을 재활하여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웨스트 번드 아트센터에서 열린 샤넬 마드모아젤 전시를 보았고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모간산루 50호, 상해의 MOMA인 당대 미술관을 방문했다. 동시에 쿠사마 야요이 전시도 와이탄 끝자락에 있는 Fosun Foundation에서 열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상해는 예술 여행을 위한 도시가 된지 오래다.)
고작 상해 지하철 광고판을 주시한 대가는 예기지 않은 만남을 만들었고 뻔한 패턴에 익숙해진 여행도 설레게 했다. 즐거운 사고의 연속이었다. 그래, 이게 여행이지!
입장료는 120위엔. 한국 돈으로도 2만 원이다. 상해에 위치한 미술관 중에서도 꽤나 비싼 축에 속하는 티켓값이라 '갈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여행을 기억하는 가치는 무한대이니 그냥 저지르자 싶었다. 어쩌면 프라하까지 가는 비행시간을 줄여준 것이니 매우 싼 축에 속한다고 하자!
개인적으로 무하가 좋은 이유를 말하자면 이렇다. 1.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는 낭만. 간단히 말하자면 1890년대부터 1차 대전이 끝나고도 유럽은 혼란스러웠고 체코와 오스트리아는 제국 해체와 독립 국가 설립이라는 상황에 있었다. 독립과 자유, 생존과 번영을 위한 욕망이 거미줄처럼 이어져있던 이야기들. 100년이 넘어 평화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상상하건대 그 시대의 사람들은 흔들리는 촛불마저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슬픈 역사다...) 2. 물론 무하는 젊은 시절에 프랑스,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많은 활동 (요즘 식으로 하면 광고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 포스터 아티스트 등)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3. 말년에는 돈보다는 종교와 철학을 주제로 모국의 국민들을 계몽하기 위해 예술 활동을 했다. 민족주의자 알폰스 무하! 그러다 프라하를 점령한 독일군의 고된 심문을 받고는 죽었다. 그의 생일을 앞둔 시점에서 말이다. 4.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모든 작품은 아름답고 아름답다. 아르누보와 무하스타일을 완성.
먼 상해까지 가서 무슨 미술관이냐고 말한다면 굳이 반박은 못한다. 무하의 작품은 프라하에 가서도 볼 수 있고 언젠간 한국에서도 다시 전시회를 열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빠듯한 일정 중에서 잠시 여유를 내서 미술관에 방문하길 추천한다. 중국의 어마 무시한 현재 진행형 진화 과정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작품을 직접 골라와 거대한 양의 컬렉션을 보여주니 일종의 '차이나 머니'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이번에 방문한 명주 미술관은 중국 현지 전화번호가 필요 없는 오픈 와이파이에다 영어로 설명하는 오디오 가이드가 무료로 제공되고 사진 촬영도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조용한 카메라로 다른 관람객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거기에 무하의 매력적인 그림이 인쇄되어 있는 기념품 부채까지! 상해의 습기를 잊혀주겠다고 작정한 에어컨마저 시원하게 가동되고 있으니 2시간은 가볍게 흘러간다. 관람을 위해 내가 준비해야 하는 건, 오직 무하를 마주할 마음뿐이었다.
***전시는 7월 21일까지니 상해에서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추천!
http://pearlartmuseum.org/en/index/exhibition-program/mu-xia